ESG 재무전략으로서 스팩의 가치에 대하여 [자본시장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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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최근 미국에선 스팩(SPAC)과 합병상장된 주식들이 크게 조정을 받으며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금융당국은 스팩과 관련해 워런트 회계처리 및 투자자 보호를 위한 견제장치를 강화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미국 스팩시장의 열풍이 단기간의 붐으로 끝날지, 아니면 파이낸싱의 주류로 자리잡을 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여전히 한국 자본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석봉 씨티글로벌마켓증권 전무 sukbong.kim@citi.com
미국 스마트팜 기업 에어로팜이 스팩을 통해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이 회사는 에어로포닉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식물을 재배하는데 기존의 수경재배 방식보다 40% 정도 물을 적게 사용한다고 한다. 전기차 기업들은 최근 스팩의 가장 인기있는 합병 대상으로, 미국 전기버스 기업 프로테라 역시 스팩을 통해 합병됐다. 이 회사는 친환경 교통수단을 만드는 것을 표방하며, 전기차 관련 기술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자체 배터리 플랫폼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차종에 적용이 가능하다. 배터리팩의 분리가 용이해 재활용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스팩을 통한 합병상장은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과도 관련이 있다.ESG 테마가 주목받는 사회적 분위기는 스팩의 활용 가치를 증대시키고 있다. ESG 가치를 표방하는 스타트업 기업이나 성장기업들은 전통적인 벤처캐피탈(VC)의 투자나 상장(IPO)을 통한 자금조달 이외의 대안으로서 스팩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ESG 가치를 옹호하는 투자자들 역시 상당한 자본을 ESG 스팩에 투자하고 있다. ESG 스팩의 합병대상기업은 전통적인 스팩의 합병대상 기업보다 지배구조가 우수하고, 투명하며, 환경 친화적이어서 기업에 특화된 위험이 낮다. 실제로 ESG 스팩의 합병 발표 후 일정기간 동안의 주가수익율은 전통적인 스팩들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스팩이 ESG 파이낸싱의 일환으로 자리잡지 못했을 뿐 아니라, 스팩의 활성화를 위한 토양이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2009년에 국내에 스팩이 도입된 이후 아직까지 우회 상장하는 수단으로서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는 데다 스팩을 통해 상장된 사례가 많지 않고, 소규모 기업들에 국한된 것이 표면적인 이유로 보인다.
최근 미국에서 스팩이 재조명 받고있는 주된 이유는 새로운 기술과 혁신의 확산을 지원하는 시대적 배경에 기인한다. 미국의 경우 벤처투자가 훨씬 활성화돼있고, 스타트업 기업들이 사업 규모나 가치 측면에서 빠르게 커가는 풍토가 자리잡았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금융업계 큰 손뿐만 아니라 투자에 대한 전문성을 보유한 기관, 개인들이 스팩의 설립에 스폰서로서 참여하고 있다. 스폰서들의 사업가정신을 고양하고 이들의 동기부여를 극대화하기 위해 스팩과 합병회사의 일정지분을 '프로모트'라는 형태의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요소이다.비상장기업의 상장 추진 관점에서 스팩의 합병 절차인 디스팩 (De-SPAC)은 IPO보다 장점이 많다. 일반 IPO 대비 디스팩의 가장 큰 차별화 요소는 보다 장기간 투자자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고, 투자자 마케팅 시 재무 추정치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IPO 추진 시 투자설명서 및 기타 투자자 대상 마케팅 자료에 회사의 향후 실적 추정치를 담을 수 없는 반면, 디스팩을 위한 마케팅 절차에서는 실적 추정치 제시가 허용된다. 물론 실적추정치의 신뢰성 문제는 향후 미국 금융당국의 투자자보호 조치와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디스팩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자세한 정보를 갖고 보다 오랜기간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력이 좋고 미래 시장 기회가 크며 고속 성장이 가능한 기업들은 회사의 내재가치를 보다 잘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아직 매출 규모가 미미하거나 적자를 시현 중이지만 디스팩 절차상의 이점을 활용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나아가 디스팩은 전략적으로, 또는 대형 기관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는 거래구조 측면에서도 일반적인 IPO 대비 훨씬 유연성이 있다. 일반 IPO의 경우 수요예측을 통해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공모 물량 배정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보다 장기간의 투자 검토가 요구되는 전략적 투자자를 유치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다만 최대주주가 복수의결권 주식을 통해 경영권을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IPO가 보다 적합하며, 디스팩의 경우 스폰서 프로모트에 따른 주식희석화 정도가 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스팩의 활성화를 위해 스팩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제도적인 수정 및 지원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스팩과 관련된 투자자 보호장치를 더욱 강화하는 토대 위에 투자구조나 절차적인 측면에서 IPO와 차별되는 유연성을 부여한다면 스팩을 통한 기업들의 자금조달은 활성화 될 것이다. 특히 ESG 가치를 옹호하는 투자자들과 ESG 가치를 강화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스팩을 새로운 투자의 영역 및 자금조달의 창구로 활용하게 된다면, 주식시장의 호황을 바탕으로 한 기업들의 우회상장보다 장기적인 ESG 재무전략 차원의 중요 전략으로 스팩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