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민성금에까지 손댄다고?'…발칵 뒤집힌 구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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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홍수, 지진 등 자연재해 이재민을 돕기 위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성금인 '의연금'의 관리방안을 놓고 정부와 관련단체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의원시절 만든 재해구호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에 상정되면서부터다.
이재민 성금 관리·감독 강화한다는데…
의연금 배분할때 행안부 장관 지명 인사 포함하고
협회 예산 사전승인·의연금 이월 한도 등 규제 강화
작년 의연금 450억 모여 10년내 '최대'
개정안에는 의연금을 나눠주고 관리할 때 정부가 개입·감독할 수 있는 각종 장치가 담겼다. 국민성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의연금 모금단체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구호협회)는 "민간이 모금한 성금을 정부가 통제하려는 과잉 규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 개입·감독 강화한 재해구호법안 상정
4일 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모인 의연금 규모는 총 447억원으로 2019년 57억원의 7.8배에 달했다. 우면산 산사태 등 폭우 피해가 극심했던 2011년 566억원이 모인 이후 10년만에 최대치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작년 여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며 전국에 피해가 커지자 이를 십시일반 돕기 위한 손길이 이어진 영향이다.포털에 공시된 의연금은 행안부가 허가한 의연금 모집기관 세 곳 중 구호협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두 곳이 모금한 성금이다. 허가기관 중 나머지 한 곳인 대한적십자사는 최근 몇 년간 모집내역을 공시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한정애 대표발의) 의원들은 이 같이 모인 의연금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내용의 재해구호법 일부개정안을 지난 달 국회 행안위에 상정했다. 규제대상은 행안부 소관인 구호협회에 맞춰져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대한적십자사는 보건복지부 관할이다.
행안부 장관이 배분委 인사 지명..협회 '반발'
개정안을 둘러싼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성금 배분을 결정하는 배분위원회 구성에 정부를 개입시키는 내용이다. 현행법상 의연금은 민간단체인 구호협회가 구성하는 배분위원회를 통해 이재민들에게 나눠주도록 했는데, 여기에 행안부 장관이 지명하는 인사를 참여토록 한 것이다.행안부 관계자는 "현재 배분위원회는 구호협회 이사회로만 구성돼 있어 다른 성금 모집기관이나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할 수 없다"며 "이번 개정안은 의연금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구호협회는 "민간에서 모은 성금을 정부가 입맛대로 쓰기 위한 포석"이라며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애초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인사를 배분위원회에서 배제한 것은 국민 성금이 정치적 목적으로 특정지역에 투입되지 않도록 막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구호협회 관계자는 "의연금 뿐 아니라 기부금과 관련된 법 어디에도 공무원이 직·간접적으로 배분에 개입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고 주장했다. 개정안에서는 배분위원회 위원을 20명 이내로 구성하며 구호협회 지명 이사, 여타 모집기관 대표, 행안부 장관 지명 이사가 각각 과반이 넘지 않도록 했다. 행안부가 현재 허가한 모집기관은 총 3곳으로 개정안을 적용할 경우 행안부 장관이 배분위원회 위원 20명 중 최소 8명을 지명하게 되는 구조다.
"성금 투명 운영위한 것" vs "민간단체 과잉규제"
행안부가 구호협회를 통제하는 각종 수단을 개정안에 포함한 것도 협회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구호협회는 사업결산 보고서를 행안부에 사후보고하고 있는데, 개정안에는 의연금 운용계획과 예산안을 행안부 장관에 사전 승인 받도록 했다. 개정안에는 행안부가 구호협회에 대해 임직원 징계 처분이나 사업 시정·정지 명령을 할 수 있는 근거도 새로 도입한다. 구호협회는 "행안부가 민간 단체를 사실상 정부 산하 기관처럼 통제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쓰고 남은 의연금을 일정 규모 이상 다음 해로 넘기지 못하게 막은 조항도 논란이다. 개정안에는 의연금의 3분의 1 이상을 이월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성금을 쌓아두지 말고 소진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모집하는 성금 규모가 매년 편차가 크고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이월 여부를 제한하는 것은 과잉 규제라는 의견이 나온다. 구호협회 관계자는 "매년 어떤 자연 재해가 어디서 일어날 지, 국민들이 얼마나 성금을 내줄지 미리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의연금 예산안 사전승인이나 일정금액 이월 금지와 같은 규제는 구호 현장을 전혀 이해못한 탁상행정"이라고 토로했다.
법률 검토를 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수석전문위원도 개정안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정성희 수석전문위원은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배분위원회 구성을 다양화하려는 취지는 타당하다"면서도 "행안부 장관이 전문가를 지명하도록 하는 것은 배분의 공정성 논란 등의 측면을 고려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