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 알렉산더 "더 많은 퀴어 아티스트들이 목소리 냈으면"

커밍아웃 후 성소수자 인권 활동…'전설' 엘튼 존과 합동무대도
"BTS, 세계 음악 팬에게 좋은 영향…지민과 작업해보고파"
'성소수자 인권의 달'(Pride Month)인 6월이면 영미 팝계는 무지갯빛으로 물든다. 팝스타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소수자들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거나 기념 공연을 하는 등 연대 행렬을 펼치기 때문이다.

대중 앞에 성 정체성을 밝힌 일부 가수들은 이런 움직임의 선봉에 서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영국 일렉트로닉 팝 밴드 이어즈&이어즈(Years&Years)의 보컬이자 배우인 올리 알렉산더(Olly Alexander·31)가 그중 한 명이다. 지난 4월 밴드를 1인 체제로 개편하고 첫 싱글 '스타스트러크'(Starstruck)를 낸 그를 최근 유니버설뮤직 코리아를 통해 화상으로 만났다.

"(성소수자 활동에 대한 생각은) 천천히 단계적으로 발전해온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일상에서 제 개인적인 성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걸 중요하게 여겼어요. 그리고 좀 더 많은 퀴어 아티스트들이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언제나 해왔죠."
알렉산더는 과거 한 레이블과 계약을 맺었을 당시 미디어 담당 직원으로부터 "벽장 속에 있으라"며 성 정체성을 공개하지 말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지만, 그는 "이봐 우리는 더는 숨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자로부터 성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받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당당히 커밍아웃했다.

이후 여러 인터뷰와 공연, 성소수자 혐오 반대 캠페인 등을 통해 꾸준히 '스피커' 역할을 해오고 있다.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것과 정신 건강의 상관관계를 담은 BBC 다큐멘터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알렉산더는 "이런 활동 덕분에 드라마 '이츠 어 신'(It's A Sin)을 제작한 러셀 T 데이비스와 가수 엘튼 존 등 평소 존경하는 상징적인 아티스트들과도 작업할 기회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이츠 어 신'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 사랑으로 삶을 지키는 동성애자 이야기를 그린 영국 드라마로 알렉산더가 주인공인 리치 토저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영국의 전설적인 가수 엘튼 존의 마음마저 울렸다.

그는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었던 시절인 1976년에 양성애자임을 고백한 바 있다.

알렉산더는 "엘튼 존 경이 나를 포함한 모든 출연자에게 전화해 드라마가 매우 감동적이었고 1980년대의 자기 모습을 떠올리게 해줬다고 얘기했다"며 "이 일을 계기로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쇼에도 출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알렉산더는 존의 제안으로 지난달 열린 영국 음악 시상식 '브릿 어워즈'에서 드라마와 동명 주제곡의 무대를 함께 선보였다.

일흔을 넘긴 존의 관록 넘치는 연주와 노래는 알렉산더의 매혹적인 퍼포먼스, 기교 섞인 보컬과 어우러져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무엇보다 수십 년 터울의 두 아티스트가 한목소리로 대중에게 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이르는 말) 커뮤니티를 기념하는 합동무대를 꾸몄다는 것, 엘튼 존 경처럼 전설적인 사람과 무대에 함께 섰다는 것이 모두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지만 자랑스럽고 뿌듯했죠"
알렉산더가 속한 밴드 이어즈&이어즈는 한국과도 나름대로 인연을 맺어왔다.

국내 팬들 사이에서 '년앤년'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들은 2017년 첫 내한을 시작으로 여러 번 한국을 방문해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알렉산더는 "한국 팬들을 정말 사랑한다"며 "얼른 한국에 다시 가서 팬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2018년에는 이어즈&이어즈의 히트곡 '이프 유어 오버 미'(If You're Over Me) 리믹스 버전 피처링에 보이그룹 샤이니 키가 참여하며 K팝 아티스트와 협업한 경험도 있다.

그는 "키와는 지금도 종종 연락하고 지낸다.

그는 정말 다정한(sweet) 사람"이라며 "함께 다시 작업해도 좋을 것 같다.

최근 컴백한 것도 알고 있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알렉산더는 현재 K팝을 대표하는 두 아티스트인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역시 좋아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BTS 지민을 정말 좋아한다"며 "그래서 같이 음악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알렉산더는 BTS가 그동안 영미 팝 시장에서 비주류로 분류됐던 K팝 가수이고, 소위 '전통적인 남성성'을 내세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제패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는 듯했다.

"BTS가 세계 음악 팬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팝 음악 자체가 원래 정해진 기준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에서 출발했잖아요.

데이비드 보위나 프린스만 생각해 봐도 그래요.

"
그는 "더 흥미로운 음악과 재미있는 아티스트들이 나타나려면 편견은 없앨수록 좋다"며 "과거의 규칙과 양식이 사라지는 시기에 활동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알렉산더는 '퀴어 아이콘'이나 배우 커리어로도 유명하지만, 그의 음악 실력 역시 높이 평가받는다.

2010년 밴드에 들어가게 된 이유도 멤버인 마이키 골드워시가 우연히 샤워하며 노래하는 알렉산더의 목소리에 반해 합류를 제의하면서다.

그는 밴드에서 작사·작곡을 도맡으며 프로듀싱 능력도 입증했다.

유려한 멜로디 라인과 과감하고 도발적인 가사에서 알렉산더만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2015년 데뷔 앨범 '커뮤니온'(Communion)에 수록된 '킹'과 '샤인'은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에서 각각 1·2위에 오르는 등 대중적으로 흥행했다.

이후 이어즈&이어즈는 BBC '2015년의 소리'(Sound of 2015)에 선정됐고 여러 차례 '브릿 어워즈' 후보에도 올랐다.

알렉산더는 1인 체제로 발표한 곡인 '스타스트럭스'를 두고 "앞으로 나올 노래들도 이와 비슷한 느낌일 것"이라며 "어떻게 보면 환상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팝 음악이란 내게 그런 존재"라고 말했다.

"이제는 좀 더 자유롭게, 저와 다른 사람들 모두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치 새로운 '챕터'를 맞이하는 기분이에요.

음악 속 DNA는 같아도, 새로운 에너지를 얻은 느낌이거든요.

많은 분이 제 새 음악도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