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희망브리지 사무총장 "국민 성금은 정부 예산 아냐"

민간 구호 단체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국회 발의된 구호재해법 개정안 둘러싸고 행안부와 '갈등'
올해 설립 60주년을 맞은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가 국회에 발의된 재해구호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여당 및 행정안전부와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달 말 주요 일간지엔 '국민 성금을 정부 예산처럼 사용하려는 재해구호법 개정을 즉각 중단하기 바랍니다'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달 1일에는 송필호 재해구호협회장(전 중앙일보 대표· 전 한국신문협회 회장)이 개정안 발의에 참여한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찾아 개정안 공론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한정애 의원(현 환경부장관)과 박 의원 등이 발의한 재해구호법 개정안은 희망브리지 배분위원회에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명하는 사람 등이 참여하고, 희망브리지의 사업 계획과 예산안을 회계연도 시작 2개월 전까지 행안부 장관에게 제출해 승인받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6일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김정희 사무총장을 만났다.

▶희망브리지는 어떤 단체입니까.

“2006년 재해구호법 개정으로 의연금을 나눠 집행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받은 순수 민간단체입니다. 의연금이란 홍수, 지진 등 자연재해 피해를 입은 이재민을 돕기 위해 국민이 자발적으로 내는 성금이에요. 재해구호법은 모금단체가 각자 기부금품을 모아 단체 설립 목적에 따라 사용할 수 있게 한 기부금품법과 다릅니다. 협회는 의연금 모금에 앞장선 언론사들과 사회단체들이 모여 1961년 출범했습니다. 애초 언론사가 주축이 된 것은 국민 성금 모금 창구가 과거엔 대부분 신문사와 방송사였기 때문이죠. 태풍이나 홍수뿐 아니라 연평도 포격 사건, 세월호 참사, 강원도 산불,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사회재난으로 실의에 빠진 이웃들을 돕는 데 앞장서 왔습니다."

▶재해구호법 개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간단체이지만 국민과 기업이 자발적으로 보내주시는 성금을 모금하고 집행하는데 있어 이미 엄격한 법적 통제와 정부의 감독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 시민단체 일부가 회계처리를 부정확하게 했던 사례와 잘못된 선입견을 앞세워 행안부가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연금품 배분, 회계 감사 보고 등 모든 업무는 이미 행안부와 일일이 협의해서 진행 중입니다. 그동안 수시로 사무검사도 받았습니다. 최근엔 2018년, 지난해 7월 집중 검사가 진행됐습니다. 과잉 입법입니다.”

▶개정안은 정부의 개입을 강화하는 내용인데 반대하는 이유가 뭔가요.

“성금 배분을 결정하는 구호협회내 배분위원회 구성에 행안부 장관이 지명한 인사와 다른 모집기관 대표자들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평이해 보이지만 행안부가 희망브리지를 산하기관처럼 만들 수 있는 조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분위 자체가 행안부 출신 등 행안부쪽 사람들로 채워지고 대표도 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순수 민간 구호 단체가 왜 정부부처 산하기관이 돼야 하나요?”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인사가 배분위에 참여하자는 의도 아닌가요.

“현재 희망브리지 재해구호협회 배분위원들은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회 저명인사들뿐 아니라 KBS, 연합뉴스, YTN, 한겨레신문, 중앙일보, 국민일보 등 언론사 사장들도 다수 포진해 있습니다. 애초 재난 성금 모금이 신문·방송사들의 주도로 시작된데다, 언론사 대표들의 경험과 연륜, 균형 잡힌 시각과 판단력이 국민 성금을 올바르게 쓰이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어서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의 판단력은 믿지 못하겠으니 행안부 장관이 지명한 사람들이 맡아야 전문성과 투명성이 보장된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힘듭니다.”

▶의연금 배분과 집행에 정부가 참여하면 안되는 이유가 뭔가요.

“국민 성금을 정부 입맛대로 쓸 수 우려 때문입니다. 국민 성금 사용 규모와 대상, 시기 등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죠. 성금을 집행하다보면 재난을 당했을 때 받는 돈이 무조건 정부에서 주는 것으로 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부나 여당으로서는 되도록 신속하게, 많은 액수를 재난 피해자들에게 줘 생색도 내고 민심도 달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입니다. 반면 민간 협회는 특정 지역 등에 치중하는 식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 집계부터 정해진 절차를 꼼꼼히 지킵니다. 정부에서는 그것이 못마땅하고 협회가 소극적이라고 생각할 순 있어요. 그래도 이미 정부와 협의하고 있는데 ‘협조나 동의’가 아니라 정부가 지시하면 군소리 없이 따르라는 ‘지시-이행’ 구조로 제도화하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개정안에는 협회의 예산안 사전 제출, 의연금의 3분의 1 이상을 잉여금으로 이월할 수 없도록 한 조항도 담겼습니다.

“민간단체의 예산권을 정부가 가져가야 하나요? 회계 투명성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우는데, 이미 사업계획과 예산안 작성 등 모든 업무는 행안부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예 예산권을 가져가겠다는 뜻입니다. 국민 성금은 세금이 아닙니다. 국민 의연금의 모집과 관리, 배분에 정부가 관여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애초부터 정부가 예산처럼 쓰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국민이 낸 귀중한 성금을 ‘선심성 행정’에 사용하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입니다. 과거 행안부 고위 관료는 비무장지대 내 정부가 조성한 전략촌이 잦은 수해를 겪자 마을 전체를 이주하는 데 의연금을 사용하자는 제안을 한 적도 있습니다.”

▶자연재해가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점점 다양해지고 강해지는 각종 재해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민·관 협력 체계를 더 정교하게 손보고, 자연재난 여파로 기간시설이 파괴되는 등의 ‘복합재난’에 대한 대책 마련에 민간과 정부가 머리를 맞댈 때입니다. 재난은 피할 수 없고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재난을 예방하고 피해를 효율적으로 복구하는 데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함께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지난달 말 이사회에서 연임(3년 임기)됐습니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갑니까.

“재난 피해자들을 돕는 성금처럼 값진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에 선뜻 손을 내밀어 성금을 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아름다운 마음을 정성스럽게 전달해 피해 이웃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것이 저희에게 부여된 사명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단체 명칭 그대로 재난에서 희망으로 향하는 다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문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