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예산 사과밭까지 옮겨간 과수화상병…전국 방제 초비상

5개도 313농가 152.5㏊ 확산…조기차단 못 하면 과수산업 붕괴
치료제 없는 '과수 에이즈'…신속 진단·매몰만이 유일한 대안

불에 탄 것처럼 나무가 시커멓게 말라 죽는 과수화상병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경기와 충남북, 강원 중심으로 발생했지만 올해는 사과 주산지인 경북으로 번지면서 방제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9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전날 기준 전국 5개 도, 19개 시·군의 농가 313곳에서 과수화상병이 발생했다.

피해 면적은 152.5㏊에 달한다. 작년에는 744곳 394.4㏊에서 피해가 났는데, 이 병이 가을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초기방제에 실패하면 그 피해가 작년 수준을 훌쩍 넘어설 수도 있다.

지역별로 보면 충북이 181곳으로 가장 많고 경기 62곳, 충남 58곳, 경북 8곳, 강원 4곳이다.

이 병은 예방·치료용 약제가 없다. 일단 발병하면 나무를 뿌리째 뽑아 땅에 묻기 때문에 '과일나무 에이즈'로 불린다.
국내에서는 사과밭을 중심으로 발병 중인데, 해를 거듭할수록 발생 지역이 확대되는 추세다.

충북의 경우 충주·제천·진천·음성을 중심으로 퍼지던 화상병이 최근 괴산·단양으로 확산했다. 경기 남양주·여주, 강원 영월, 충남 당진·예산에서도 올해 처음으로 화상병이 발생했다.

특히 경북 안동에서 지난 4일 첫 발생 후 나흘 만에 확진 농가가 8곳으로 늘자 방제당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지역의 다른 농가 3곳도 이상 증상을 발견했다고 신고해 정밀검사가 이뤄지고 있다.

경북의 사과밭은 작년 기준 1만8천705㏊로 전국(3만1천598㏊)의 59.2%를 차지한다.

방제당국은 과수화상병이 경북을 중심으로 확산한다면 우리나라 과수산업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매몰과 주변 예찰을 확대하고 있다.

문제는 화상병 세균이 이미 퍼졌을 수 있다는 점이다.
화상병은 올해 감염됐다고 해서 즉시 시커멓게 말라 죽는 게 아니다.

짧게는 3년에서 최장 20년의 잠복기를 거쳐 발현된다.

이 병을 퍼뜨리는 매개체로는 꿀벌이나 비바람 등이 꼽히지만 전지가위나 예초기 등 작업 도구를 통해 이미 수년 전 화상병 세균이 퍼졌을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지는 것도 이런 점에서다.

충남 예산도 우리나라의 사과 주산지로 꼽힌다.

이 지역의 사과밭은 973ha로 충남 전체의 58%나 된다.

지난 4일 이곳에서 화상병이 발생하자 예산군은 과수농가에 철저한 방역·방제를 주문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방제당국도 안동·예산 발생지 주변 2㎞ 내 농가를 예찰 중이며, 향후 두 지역 전역으로 범위를 넓혀가기로 했다.

화상병이 창궐한 충북 충주도 사과 산지인데 이곳에서도 농가 123곳, 48.4㏊에서 병이 발생했다.
10년 넘게 키워온 사과나무 수백 그루를 뿌리째 뽑아 묻었다는 이 지역 농민은 "허허벌판으로 변해버린 과수원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미칠 지경"이라며 "3년간은 다시 심지 못한다는데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캄캄하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화상병은 세균성 병으로 조기 발견이 어렵고 치료제가 없어 신속한 진단과 매몰이 중요하다"며 "적과, 봉지 씌우기 등 농작업 때 증상을 발견하면 즉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올해부터는 효과적인 방제약재나 저항성이 큰 품종, 진단 기술 등 근본적인 기술 연구를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심규석, 양영석, 최수호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