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강국의 비결, 산학연 협력 생태계

김석인 KT 경제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김석인 KT 경제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지금 세계는 AI 패권 다툼 중이다. AI가 인간의 지적 기능도 수행하는 수준까지 발전함에 따라 AI는 산업과 사회 모든 영역에 걸친 패러다임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AI는 그 자체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인 동시에 산업의 근본적 혁신을 가져오며, 일자리 변동 등 사회의 변화도 유발하고 있다. 세상을 변혁시키는 ‘게임 체인저’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미국 인공지능국가안보위원회(NSCAI)는 지난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AI를 인류 문명의 근본적 변혁을 이끌 혁명적 기술이자 경제·안보의 글로벌 주도권을 좌우할 핵심 범용기술로 평가했다. 특히 AI는 2차 산업혁명을 추동한 ‘전기’와 같은 핵심적 기술이라는 평가다. 그러면서 압도적 AI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가 역량의 총동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위원회는 강조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각 국가들은 AI를 새로운 국가 경쟁력으로 인식하고 국가 성장의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해 AI 국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지금의 대응 노력에 따라 미래 세대의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에 세계 각 국가들 간 AI 주도권 확보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KAIST 혁신전략정책연구센터와 학술정보·특허솔루션 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가 공동으로 발간한 ‘글로벌 AI 혁신경쟁: 현재와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0~2019년 총 6317건의 AI 특허를 출원해 특허 수 세계 4위에 올랐다.하지만 특허 활용도를 나타내는 특허영향력지수(CPI·Combined Patent Impact)에서는 상위 10개 국의 CPI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AI 기술이 양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질적인 측면인 AI 활용도에서는 아쉬운 결과에 그친 것이다. 미국은 AI 특허 수에서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하였고 AI 활용도 측면에서는 압도적인 1등을 차지하면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명실상부한 AI 선도 국가로 분석됐다.
주목할 국가는 캐나다와 영국이다. 최근 10년간 캐나다의 AI 특허 건수는 960건, 영국은 971건에 그쳤지만 영향력은 캐나다 2위, 영국 3위이다. 두 국가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유기적으로 결합된 AI 산학연 협력 생태계가 그것이다.
캐나다 정부는 2018년부터 5년 계획으로 지역별 산학연 협력 클러스터를 적극적으로 조성·지원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AI 클러스터가 퀘벡주를 중심으로 하는 ‘Scale AI’다. AI 및 로봇공학을 활용하여 지능형 공급망(intelligent supply chain)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 협력 클러스터에 약 120여 개의 기업, 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14개의 프로젝트가 선정돼 재정 지원과 연구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캐나다 통신회사인 Bell이 주도하고 있는 ‘통신망 현장 서비스 관리 효율화’ 가 이 클러스터의 대표 프로젝트다. 현장 유지 보수 및 인력 관리 복잡성 예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에어 캐나다(Air Canada)는 화물 운항에 AI 솔루션을 구현하고 머신러닝 및 최적화 기법을 수익관리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AI 통합 프로세스 구축’ 프로젝트의 리딩 기업으로 참여하고 있다.
캐나다 AI 협력 클러스터의 특징은 정부가 산학연의 참여와 운영 방식을 제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캐나다 정부는 AI 협력 클러스터의 필수 요건으로 산업계 주도의 컨소시엄 구성, 1개 이상의 대학교 또는 비영리 연구기관 포함을 규정으로 정했다. 클러스터 별 프로젝트는 리딩 기업이 주도해야 하며 포함하여야 하는 대기업, 중소기업의 수도 정해져 있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계를 강조하고 있다. 캐나다의 클러스터 정책은 정부와 산업계의 동반자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클러스터는 정부지원금과 산업계 자금을 일대일 동률로 매칭하는 매칭 펀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국은 국책 AI 연구소인 앨런 튜링 연구소가 구심점이다. 학문적인 AI 연구뿐만 아니라 기업, 공공조직과 협력해 실제 산업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는 응용 연구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앨런 튜링 연구소는 협력 파트너십의 기본 원칙으로 산업계의 실제 데이터 활용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앨런 튜링 연구소는 공공기관이나 산업계가 데이터 문제를 제시하면 함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이터 스터디 그룹을 운영 중이다.
앨런 튜링 연구소는 설립 초기 민간 기업과 기관을 초청해 주제별 워크숍을 열어 중점 연구 영역을 정의한 후 각 영역별로 관심 있는 기업의 연구 신청을 받아 협력 연구를 시작했다. 인텔과 시작한 고성능 컴퓨팅을 위한 알고리즘 개발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인텔과 앨런 튜링 연구소의 협력은 워윅(Warwick) 대학으로까지 확장되어 AI를 이용한 암 사전진단 분석 협력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Warwick 대학은 인텔 Xeon 프로세서에서 실행되는 TensorFlow와 같은 AI 프레임 워크를 사용하여 다양한 유형의 폐암과 관련된 세포 구분을 컴퓨터에서 인식하도록 모델을 개선하는 협력 연구를 추진했다.
또한 앨런 튜링 연구소는 브리티시 에어웨이(British Airways)와 협력하여 항공편 승객 수요를 정확하고 역동적으로 예측(dynamic forecasting)하는 머신 러닝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도요타와는 AI를 활용해 최적의 교통 흐름을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AI는 기술 그 자체보다는 활용이 중요하다. AI를 바라보는 관점이 과거 추상적인 요소 기술에서 지금은 실제 적용 사례 중심 비즈니스 모델로의 연결, 일상생활 속 AI로 이동하고 있다. AI 기술의 본질은 기존 산업과의 융합을 통한 디지털 전환에 있으며 접점에 있는 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의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AI 혁신 서비스를 재창출하는 것이다. AI 활용도를 높이려면 산학연 협력을 통해 산업계의 니즈가 연구에 반영되고 실제로 활용되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한 국가는 다른 국가의 AI 역량을 흡수하면서 성장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AI 인재들은 우수한 AI 생태계를 가진 국가로 이동하고 있다. 우수한 생태계 구축 여부가 미래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판가름할 것이고 국가 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한국에서는 2020년부터 AI 산학연 협력의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AI 산학연 협력의 움직임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정부가 2019년 12월 ‘AI 국가전략’을 발표하면서 내걸었던 목표인 ‘2030년 디지털 경쟁력 세계 3위, AI 기반 지능화 경제효과 최대 455조원 창출, 삶의 질 세계 10위 달성’을 든든하게 뒷받침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