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지켜봐달라"…첫 공개행보서 대권 도전 의지

"국민의 기대·염려 다 안다"
尹, 사실상 정치 데뷔

독립운동가 행사를 등판 무대로
보수 정체성 분명히 했다는 분석
국민의힘 입당 질문엔 여지 남겨
"걸어가는 길 보면 아시게 될 것"
< 이회영 선생 손자와 대화하는 윤 前 총장 >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이 9일 서울 예장동 남산예장공원에서 열린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윤석열을 구속하라!”

유세전을 방불케 하는 수많은 보수·진보 진영 시민의 격한 외침 속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찰총장 퇴임 후 석 달 넘게 이어진 잠행 끝에 참석한 첫 공식행사다. 윤 전 총장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된 대권 도전과 관련해 “(앞으로 행보를) 지켜봐 달라”고 했다. 사실상 본격적으로 대선 경쟁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대선후보 지지율 1위인 윤 전 총장의 등판이 임박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尹,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강조

윤 전 총장은 이날 서울 남산예장공원에서 열린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 직전 기자들과 만나 대선 출마와 관련한 질문에 “국민 여러분의 기대 내지는 염려를 다 경청하고 있고, 알고 있다”며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수많은 취재기자와 지지자에 유튜버들까지 모이면서 ‘윤석열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 행사에 이렇게 취재 열기가 뜨거운 적은 처음”이라며 “윤 전 총장을 환영하고 앞으로 자주 모셔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윤 전 총장은 이회영 선생을 언급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우당의 삶을 듣고 강렬한 인상을 많이 받아왔다”며 “우당과 그 가족의 삶은 곤혹한 망국의 상황에서 정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생하게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나라가 어떤 인물을 배출하느냐와 함께 어떤 인물을 기억하느냐에 의해 그 존재가 드러난다”고 했다. 앞서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하고 K-9 자주포 폭발사고 피해자와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장을 잇달아 만나면서 자신의 보수 성향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과 궤를 같이하는 행보라는 평가다.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오늘 처음으로 제가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났다. 앞으로 제가 걸어가는 길을 보면 잘 아시게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장모 관련 논란’과 ‘제3자를 통한 메시지 전달 방식’에 국민이 피로감을 느낄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후 공식 출마 전망

윤 전 총장은 총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즐겨 해온 강아지와의 동네 산책까지 자제하며 한동안 잠행을 이어왔다. 대신 대선 의제 발굴과 간접적 ‘메시지 정치’에 집중했다. 경제, 외교·안보, 노동, 블록체인, 복지 등 대선 국면에서 정책 경쟁이 벌어질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났고, 이에 관한 견해를 제3자를 통해 알리는 방식을 써왔다.윤 전 총장이 이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이제는 나서야 한다”는 야권의 목소리에 어느 정도 응답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윤 전 총장은 그간 제3자를 통해 매우 정제된 형식의 메시지를 전달해 실언을 피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여론의 관심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잠행 기간이 길어지면서 대중적 피로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시점이었다.

윤 전 총장의 최측근이자 이회영 선생의 증손자이기도 한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전 총장이 이회영 기념관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 내가 ‘이왕이면 개관식에 오면 좋겠다’고 해서 행사에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개관식에 단순히 참석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사실상 ‘메시지 정치’를 이어온 윤 전 총장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는 평가다.

윤 전 총장 관계자들은 윤 전 총장이 지난 7일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얼마간 외부활동을 자제할 것 같다고 전했지만 예측을 깨고 이날 행사에 등장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판단이 선 것 같다”고 말했다.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대선 열차’에 올라설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국민의힘 입당이나 장모 관련 논란과 같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것이란 전망이다. 윤 전 총장의 메시지를 전담할 ‘메시지 공보팀’도 전당대회 직후 꾸려질 예정이다. 윤 전 총장 관계자는 “현재 공보팀 구성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