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AI 어디까지 왔나<10>건양대의료원,AI기반 녹내장 선별 진단 알고리즘 개발

김종엽 건양대학교의료원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장
김종엽 건양대의료원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장
인공지능이 떠들썩해진 건 벌써 오래전 일이다. 그 관심의 불씨가 의료계로 옮겨붙은 지도 이미 몇 해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식약처의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 인허가를 받은 제품이 곧 100개에 이른다. 큰 투자를 받은 기업 소식도 간간이 들려오고, 상장한 기업도 생겼다. 그런데 기대에 부응하는 매출 소식이 아직 없어 많은 사람의 애를 태우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건양대의료원은 두 가지 이슈에 주목하고 있다.
첫 번째는 기업이 과연 의료현장의 미충족 수요(unmet needs)를 제대로 겨냥한 제품을 만들었느냐는 이슈다. 선정 평가를 들어가 보면, 제목에서 'AI' 단어가 빠진 제안서를 볼 수가 없을 정도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지나쳐 이제는 선후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고식적인 기술로 해결되지 않던 난제를 인공지능을 통해 개선해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문제나 인공지능으로 해결하겠다는 건 옳지 않은 순서다.
아무리 마음이 급하고 인공지능이 대세라 해도, 현장의 문제부터 정의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며, 바로 이것이 건양대학교의료원이 스타트업들의 초기 컨설팅에 집중하는 까닭이다.
우리 의료원은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와 의료기기중개임상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많은 기업과 직접 만나 문제를 찾는 과정부터 함께 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가 얼마 전 의료기기 3등급 허가를 받은 녹내장 진단보조 소프트웨어 '아이뷰(Eye View)'다.
건양대의료원 안과 정재훈 교수와 (주)에임즈(AIMS)는 안과 전문의 사이에서도 녹내장 세부전공이 아니면, 초기 녹내장의 조기 진단이 어렵다는 문제에 주목했다. 이후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는 의료원에 기구축되어 있던 안저촬영영상을 가지고 인공지능 모델 학습을 위한 데이터셋을 구축했다. 이 데이터셋을 활용, 정 교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공동연구로 AI 기반 녹내장 선별 진단 알고리즘을 개발해 특허를 취득하고 이를 (주)에임즈에 기술이전했다. 이후 해당 알고리즘이 담긴 소프트웨어의 식약처 허가를 위한 임상 시험은 의료원내의 의료기기중개임상지원센터에서 또 한 번 도왔다. 의료 현장의 아이디어가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로 세상에 소개되기까지는 실상 이와 같은 의료기관의 전주기 지원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건양대의료원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의료데이터의 품질 관리 이슈다.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의료 AI 개발을 위해서는 고품질의 학습용 데이터가 필요하다. 의료인들은 고품질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엑스레이나 CT의 해상도 정도를 떠올리지만, 이건 큰 오산이다. AI 학습을 위한 고품질의 데이터란 개발하고자 하는 모델을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준비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의료기관에서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데이터만을 활용했기 때문에 AI 모델 성능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건양대의료원에서는 전국 최초로 헬스케어데이터품질센터를 오픈했다. 이 센터에서는 연구자(또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요구에 맞춰 데이터의 품질요구사항을 정의하고 협의를 거친 뒤, 데이터 구축을 체계적으로 시작한다.
원시데이터를 취합할 때 개인민감정보 등의 법적 이슈에 대한 검토와 더불어 전향적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IRB 심의를 거쳐 동의서 기반의 데이터 구축도 고려한다. 원시데이터에서 원천데이터로의 정제에 있어서도 환자 중복에 대한 검토뿐 아니라 동일 환자의 반복 검사결과에 대한 부분까지 세심히 검토한다. 라벨링과 어노테이션은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에서 자체 개발한 모바일용 툴을 활용한다. 기존 진료실 컴퓨터를 활용한 작업에 비해 모바일 툴을 도입 후 의료진의 피로도는 급격히 감소했고, 덕분에 작업능률은 3배 가까이 향상되었다. 이렇게 구축된 데이터는 전국 최대 규모의 원내 폐쇄 연구망을 통해 외부 연구자들과의 협업으로 이어진다.
이 공간에서 데이터의 활용에 대한 보안관리와 더불어 공동연구 종료 후 데이터의 폐기까지 책임진다. 지금보다 더 진화된 의료 AI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Bigdata'가 아닌 'Good data'가 필요하다는 게 건양대의료원의 인공지능 개발에 대한 방향성이자 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