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전' 롯데 정훈, 서른 넷에 잔치가 시작됐다

이대호·안치홍 부상 속에서 거인 4번 타자로 우뚝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정훈(34)의 '반전 스토리'에는 한계가 없다. 지난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두산 베어스전은 정훈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경기였다.

거인의 4번 타자로 나선 정훈은 5타수 4안타(1홈런) 5타점으로 대폭발하며 팀의 18-9 대승을 이끌었다.

정훈은 메이저리그를 열광시킨 KBO리그 '빠던(배트 던지기)'의 대표 주자 격이다. 남다른 예술점수를 자랑하는 그 '빠던'을 정훈은 안타를 생산하는 데 활용했다.

가히 신기에 가까웠다.

정훈은 1회말과 5회말 두 차례나 배트를 거의 던져서 연달아 안타로 연결했다. 한 번이면 어쩌다 맞은 거겠지 생각할 텐데, 두 번이나 반복됐다.

어떻게든 쳐내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만들어낼 수 없는 안타였다.

정훈은 두 번의 '빠던타'에 만족하지 않고 7회말 무사 만루에서 그랜드슬램을 터트린 뒤 진정한 '빠던'을 선보였다. 정훈의 한 경기 5타점은 커리어 최초다.

정훈은 인간극장에 나와도 될 정도로 굴곡이 많은 선수다.

그는 2010년 신고선수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2006년 히어로즈 전신인 현대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지만 그해 말 방출 통보를 받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야구를 포기한 뒤 일반 보병으로 군대를 다녀왔다.

초등학교에서 코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시 롯데의 문을 두드렸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2010년 4월 퓨처스(2군)리그 경기를 보다가 호쾌하게 배트를 돌리는 정훈에게 반해 곧바로 1군에 콜업했다.

정훈은 2013년부터 거인의 주전 2루수로 중용됐다.

'영원한 2루수' 조성환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고질적인 수비 불안이 발목을 잡았다.

2017년부터 외국인 2루수 앤디 번즈가 들어서면서 정훈은 졸지에 자기 포지션을 잃었다.

떨어진 자신감 속에서 타격에서의 장점까지 잃었다.

트레이드 마크인 극단적인 '어퍼 스윙'을 바꾸라는 압력까지 받았다.

정훈은 생존을 위해 멀티 플레이어로 거듭났다.

2017년부터는 외야수, 2018년에는 1루수도 맡으며 활용도를 넓혔다.

지난해 이대호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훈의 1루수 출전 비중은 점차 높아졌다.

또한 민병헌이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면 중견수 글러브로 자주 꼈다.

그러면서 정훈은 지난해 5년 만에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달성해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훈은 지난해 득점권 타율 0.357로 팀 내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리그 전체로 봐도 규정타석을 소화한 타자 중 전체 3위의 기록이었다.

내야와 외야를 떠돌던 선수가 어느덧 팀 최고의 해결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올해 정훈은 이대호, 안치홍의 연쇄 부상 속에 4번 타자 자리를 꿰찬 뒤 눈빛이 더욱 매서워졌다.

지난 6일 수원 kt wiz전에서 연장 10회 결승타를 쳐낸 데 이어 8일 부산 두산전에서는 개인 첫 5타점 활약으로 '인생 경기'를 했다. 숱한 시련 속에서도 간절함을 무기로 잡초처럼 살아남은 정훈은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나이에 화려하게 기량을 꽃피우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