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0주년 부부가 들려준 행복 비결 5가지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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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제 삶의 전부입니다. 젊은 날 가난에 허덕일 때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은 이보다 더 클 수도 있으니 힘내세요. 당신 아내가 여기 있잖아요. 늘 긍정의 마음을 호주머니에 넣고서 저를 생각하세요. 사랑합니다’라며 격려해 주었지요. 일이 안 풀려 힘들어할 때는 따뜻한 위로와 희망으로 저를 북돋워 주었습니다.”
한 부부가 오늘 결혼 50주년을 맞았습니다. 가방 수출기업 MH인터내셔널 창립자 박문호 회장과 부인 김혜숙 씨입니다. 박 회장은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나 6·25 때 어머니, 누나와 함께 월남한 분입니다. 3대 독자인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를 마친 뒤, 같은 직장에 다니던 김씨와 결혼했습니다. 아들 둘, 딸 둘을 잘 키우며 독창적인 상품 개발로 해외 시장을 개척했지요.
그 바쁜 중에도 틈만 나면 부부가 함께 사진 찍는 즐거움을 공유해왔습니다. ‘길 위의 인문학’ 등 문학기행에 동행해 시인 작가들과 문향(文香)을 나누기도 했지요. 그때마다 두 분은 늘 함께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찍은 사진으로 책도 냈습니다. 박 회장은 2016년에 출간한 포토에세이집 『사계(四季)』에 ‘무심히 넘기는 달력처럼 해마다 맞이하는 사계의 순환이지만 사랑이 있으니 늘 새롭고 또 경이롭다’고 썼습니다. 봄 햇살을 뚫고 나온 여린 새순, 나뭇가지에 잠시 매달렸다 가면서도 온 세상을 담아내는 빗방울, 물 따라 바람 따라 낯선 여행을 시작하는 낙엽, 겨울 숲에 내리는 눈꽃 송이들…. 이런 장면 사이에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여행길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는 고백도 덧붙였지요.
그 길을 함께 걸어온 지 50년. 박 회장은 금혼식(金婚式) 기념으로 아내에게 순금 한 냥으로 만든 꽃을 선물했습니다. 자녀들과 손주들은 사돈 가족까지 초대해 깜짝 파티를 열었습니다. 부모님께 드리는 기념패도 준비했더군요.
‘반백 년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두 분의 사랑, 그 큰 사랑이 우리 삶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젊은 날 우리 가족을 위해 남몰래 흘린 눈물에 감사하며,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결혼 50주년을 기념하며…….’ 두 분의 행복한 결혼 생활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비결이랄 게 뭐 따로 있나요. 살아보니 무슨 거창한 것보다 일상의 작은 것들이 더 소중하더군요. 굳이 꼽자면 다섯 가지 정도 됩니다.”
첫 번째는 ‘매일 잠자리에 나란히 누워 서로의 손을 잡아라’입니다.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손이 얼마나 거칠어졌을지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아내가 차려 준 밥상에서 반찬투정을 하지 마라’입니다. 사랑의 두레밥상에 마주앉으면 무엇이든 다 맛있다는 얘기죠. 아내의 손맛에 칭찬을 아끼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서로의 실수를 탓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위로하라’, 네 번째는 ‘날마다 일정 거리를 손잡고 걸으며 서로를 돌아보라’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섯 번째 비결 ‘부부의 삶에 대해 항상 긍적적으로 생각하라’로 수렴됩니다.
여기에다 “가끔씩 시집에서 건진 시 구절 하나를 얹어서 들려주면 더욱 좋다”는 조언도 곁들입니다. 가령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참 좋은 당신’을 인용하며 “나에겐 ‘참 지혜로운 당신’ 김혜숙입니다”라고 말이지요.
이는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원리 같습니다. 미국 미네소타 주의 존과 이비 부부는 결혼 75주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라. 자기 전에는 키스해 줘라. 화난 채로 잠자리에 들지 말라. 친한 친구가 되어라. 상대를 웃게 하라. 손을 잡아라. 서로에게 잘 맞춰 줘라.”
잡지 ‘레드북 매거진’이 소개한 ‘행복한 부부의 비결’도 이와 비슷합니다.
“서로 애칭을 부르며 사랑을 표현해라. 함께 할 일을 공유해라. 부부싸움을 양가 부모에게 이르지 말라. 자녀보다 배우자를 더 사랑하고 자주 칭찬하라. 소모적인 얘기 대신 건설적인 얘기를 하라.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기쁘게 하는 법을 터득하라. 유머를 잃지 마라.”
한 가지 더 주목되는 얘기가 있습니다. 결혼 80년을 맞아 세계 최장수 부부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영국 부부는 자신들의 숨은 비결을 두 단어로 요약했습니다. 그건 바로 “Yes, Dear”, 우리말로 “그래, 여보”였습니다. 언제나 즐거이 ‘맞장구’를 쳐 주는 게 가장 큰 비결이라는 거죠.
행복한 결혼은 이런 맞장구처럼 서로를 건강하고 활기차게 해 줍니다. 함민복 시인의 ‘부부’에도 나오지요. 결혼 생활은 긴 상(床)을 같이 들고 높낮이를 조절하며 보폭을 맞춰 가는 과정이라고.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금슬 좋은 부부는 말투와 걸음걸이, 얼굴 표정까지 닮는다고 합니다. 톨스토이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듯이, 행복한 부부는 모두 ‘사랑·배려·헌신’이라는 덕목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지요. 오늘 금혼일을 맞은 두 분의 표정도 닮았습니다. 60주년이 되는 회혼식(回婚式) 때는 또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박 회장은 “앞으로 10년간의 일상을 매년 한 권씩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꿈 덕분에라도 지금 같은 환한 모습이 오래도록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한 부부가 오늘 결혼 50주년을 맞았습니다. 가방 수출기업 MH인터내셔널 창립자 박문호 회장과 부인 김혜숙 씨입니다. 박 회장은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나 6·25 때 어머니, 누나와 함께 월남한 분입니다. 3대 독자인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를 마친 뒤, 같은 직장에 다니던 김씨와 결혼했습니다. 아들 둘, 딸 둘을 잘 키우며 독창적인 상품 개발로 해외 시장을 개척했지요.
그 바쁜 중에도 틈만 나면 부부가 함께 사진 찍는 즐거움을 공유해왔습니다. ‘길 위의 인문학’ 등 문학기행에 동행해 시인 작가들과 문향(文香)을 나누기도 했지요. 그때마다 두 분은 늘 함께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찍은 사진으로 책도 냈습니다. 박 회장은 2016년에 출간한 포토에세이집 『사계(四季)』에 ‘무심히 넘기는 달력처럼 해마다 맞이하는 사계의 순환이지만 사랑이 있으니 늘 새롭고 또 경이롭다’고 썼습니다. 봄 햇살을 뚫고 나온 여린 새순, 나뭇가지에 잠시 매달렸다 가면서도 온 세상을 담아내는 빗방울, 물 따라 바람 따라 낯선 여행을 시작하는 낙엽, 겨울 숲에 내리는 눈꽃 송이들…. 이런 장면 사이에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여행길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는 고백도 덧붙였지요.
그 길을 함께 걸어온 지 50년. 박 회장은 금혼식(金婚式) 기념으로 아내에게 순금 한 냥으로 만든 꽃을 선물했습니다. 자녀들과 손주들은 사돈 가족까지 초대해 깜짝 파티를 열었습니다. 부모님께 드리는 기념패도 준비했더군요.
‘반백 년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두 분의 사랑, 그 큰 사랑이 우리 삶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젊은 날 우리 가족을 위해 남몰래 흘린 눈물에 감사하며,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결혼 50주년을 기념하며…….’ 두 분의 행복한 결혼 생활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비결이랄 게 뭐 따로 있나요. 살아보니 무슨 거창한 것보다 일상의 작은 것들이 더 소중하더군요. 굳이 꼽자면 다섯 가지 정도 됩니다.”
첫 번째는 ‘매일 잠자리에 나란히 누워 서로의 손을 잡아라’입니다.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손이 얼마나 거칠어졌을지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아내가 차려 준 밥상에서 반찬투정을 하지 마라’입니다. 사랑의 두레밥상에 마주앉으면 무엇이든 다 맛있다는 얘기죠. 아내의 손맛에 칭찬을 아끼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서로의 실수를 탓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위로하라’, 네 번째는 ‘날마다 일정 거리를 손잡고 걸으며 서로를 돌아보라’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섯 번째 비결 ‘부부의 삶에 대해 항상 긍적적으로 생각하라’로 수렴됩니다.
여기에다 “가끔씩 시집에서 건진 시 구절 하나를 얹어서 들려주면 더욱 좋다”는 조언도 곁들입니다. 가령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참 좋은 당신’을 인용하며 “나에겐 ‘참 지혜로운 당신’ 김혜숙입니다”라고 말이지요.
이는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원리 같습니다. 미국 미네소타 주의 존과 이비 부부는 결혼 75주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라. 자기 전에는 키스해 줘라. 화난 채로 잠자리에 들지 말라. 친한 친구가 되어라. 상대를 웃게 하라. 손을 잡아라. 서로에게 잘 맞춰 줘라.”
잡지 ‘레드북 매거진’이 소개한 ‘행복한 부부의 비결’도 이와 비슷합니다.
“서로 애칭을 부르며 사랑을 표현해라. 함께 할 일을 공유해라. 부부싸움을 양가 부모에게 이르지 말라. 자녀보다 배우자를 더 사랑하고 자주 칭찬하라. 소모적인 얘기 대신 건설적인 얘기를 하라.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기쁘게 하는 법을 터득하라. 유머를 잃지 마라.”
한 가지 더 주목되는 얘기가 있습니다. 결혼 80년을 맞아 세계 최장수 부부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영국 부부는 자신들의 숨은 비결을 두 단어로 요약했습니다. 그건 바로 “Yes, Dear”, 우리말로 “그래, 여보”였습니다. 언제나 즐거이 ‘맞장구’를 쳐 주는 게 가장 큰 비결이라는 거죠.
행복한 결혼은 이런 맞장구처럼 서로를 건강하고 활기차게 해 줍니다. 함민복 시인의 ‘부부’에도 나오지요. 결혼 생활은 긴 상(床)을 같이 들고 높낮이를 조절하며 보폭을 맞춰 가는 과정이라고.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금슬 좋은 부부는 말투와 걸음걸이, 얼굴 표정까지 닮는다고 합니다. 톨스토이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듯이, 행복한 부부는 모두 ‘사랑·배려·헌신’이라는 덕목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지요. 오늘 금혼일을 맞은 두 분의 표정도 닮았습니다. 60주년이 되는 회혼식(回婚式) 때는 또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박 회장은 “앞으로 10년간의 일상을 매년 한 권씩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꿈 덕분에라도 지금 같은 환한 모습이 오래도록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