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韓 74번 언급한 美 공급망 전략, 경제·안보 다 잡을 기회다

미국이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대 핵심 산업에서 중국의 부상을 막고,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보고서를 발표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100일 동안 만들었다는 보고서 주요 내용은 한국 유럽 일본 대만 등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 위주의 글로벌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완전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250쪽 분량 보고서 곳곳에 한국과 한국 대표 기업 이름이 비중 있게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총 74회 언급돼 있고, 삼성(35회) SK(14회) LG(9회) 등 대표 기업 이름도 구체적인 협력 내용과 함께 적시돼 있다. 유럽 일본 등 다른 동맹국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다. 경제·안보 협력뿐 아니라 민주주의 가치동맹의 복원을 추구하고 있는 미국이 동맹국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이번 보고서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발표된 점도 눈길을 끈다. 회의의 핵심 주제는 ‘3C(중국·코로나 바이러스·기후변화)와 2D(민주주의·디지털)’다. 동맹국들이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중국 견제전략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회의에 초청된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견제를 주문받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한·일 간 관계 개선, ‘쿼드(미·일·인도·호주 안보협의체) 플러스’ 참여 등도 요구받을 수 있다.

현 정부는 그동안 전략적 모호성을 근간으로 한 균형자 외교로 동맹국들과 마찰을 빚어온 게 사실이다. 4년간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외치다 남은 것은 미국의 의심, 중국의 홀대, 북한의 무시, 일본과의 갈등이다. 우리 기업들은 당장 미국과의 협력이 시급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미국에 400억달러(약 44조원) 투자를 결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국민들도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77%)고 인식한다. 이번 정상회의를 우방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안보 성과를 극대화하는 ‘외교의 장’으로 활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중국 견제를 논의할 G7 정상회의를 코앞에 두고 중국 외교당국자와 먼저 통화한 것은, 현재 상황의 엄중함을 정부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 국제질서 대전환기에 한국이 어떤 위치이고, 어떤 스탠스가 국익에 부합하는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미·중 간 진영 경쟁이 본격화하는 중대 기로에서 어쭙잖은 줄타기 외교로 국익과 신뢰를 다 놓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