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법보전의 문을 여니 팔만대장경의 세계가 펼쳐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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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개방 앞두고 취재진에 장경판전 내부 공개…600년 세월 속 원형 그대로
19일부터 사상 첫 일반 공개…현응스님 "코로나에 대장경 보고 큰 힘 내시길" 직접 마주한 팔만대장경은 실로 장엄했다. 600년이 넘는 세월 속에 해인사 장경판전의 품속에서 호흡해온 팔만대장경판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10일 해인사는 장경판전 4개 동 중 법보전 내부를 공개하고 대장경판을 가까이서 취재할 기회를 제공했다.
오는 19일부터 일반 국민을 상대로 사상 처음 시행하는 '사전예약 탐방제'에 앞서 취재진이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사찰의 정문 격인 일주문을 출발한 취재진은 장경판전 남쪽 건물인 수다라장의 출입문을 통과해 마당을 지나 법보전 출입문에 도달했다.
판전 안으로 발을 내딛자 5개 층으로 구분된 판가(板袈·경판꽂이)에 촘촘히 꽂혀 있는 대장경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도서관의 서고와 빼닮은 모습이었다. 대장경판은 고려 고종 19년인 1237년 몽고의 침임을 불력(佛力)으로 막고자 조성이 시작돼 1248년까지 12년간 각수(刻手)에 의해 판각됐다.
준비기간까지 합하면 완성까지 16년이 걸린 것으로 전해진다.
대장경판은 총 8만1천258장, 5천200만자가 경판 앞뒤로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경(經)·율(律)·논(論) 등 삼장(三藏)으로 불교 경전 전체를 모았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조성 당시 강화도 대장경판당에 보관돼 있던 것을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 경남 합천 가야산 남서쪽에 있는 해인사로 옮겨와 600년 이상을 이곳에서 보존돼 왔다.
법보전에는 화엄경 등 대승불교 경전이 주로 있다면, 수다라장에는 아함경과 사분율 등 근본불교라 불리는 소승불교 경전이 보관돼 있다.
대장경판 보존소임을 맡은 일한스님은 법보전 내부를 손전등으로 비추며 제1판가, 팔만대장경판의 처음인 '대반야바라밀다경'부터 취재진에 소개했다.
대장경판은 가로 약 70㎝, 세로 약 24㎝ 크기로, 두께는 어른 손가락의 한두 마디 정도다.
목판 양쪽 끝에는 손잡이 역할을 하는 마구리가 두툼해 글자가 새겨진 부분과 두께가 차이가 난다.
이는 판가에 꽂힌 경판들이 서로 밀착해있어도 통풍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 대장경 연구원이 장갑을 낀 채 판가에서 '광명경'의 내용이 적힌 경판 하나를 꺼내 앞으로 내보이자 취재진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나왔다.
국보 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눈앞에서 본 이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기자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경판을 들여다보니 손잡이에는 옻칠이, 경판에는 경전의 원음이 한자씩 양각돼 있었다.
600년이 넘는 세월에도 먼지가 뿌옇게 낀 모습이 아닌 보존의 미학이 두드러진 느낌이었다.
해인사 주지 현응스님은 "21세기까지 대장경판이 해인사에서 훼손 없이, 원형의 변동(화) 없이 그대로 모셔져 있는 것은 수천, 수백 가지의 기적이 있어서다"며 "전쟁기간에 5천200만자를 새긴 것도, 이를 해인사로 모셔온 것도, 국가,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넘은 것도 모두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경판은 지금도 먹을 발라 한지에 찍으면 글자 한 자 한 자가 판각 당시처럼 또렷이 나타난다고 한다.
대장경판이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도 이같이 온전하게 보존돼 온 배경으로는 과학적으로 지어진 장경판전 구조에서 그 답을 찾는다.
목조건물인 장경판전 전·후면으로는 붙박이 살창이 나 있는데, 건물 내 환기와 온도·습도 조절 등 대장경판의 장기 보존에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살창도 북향과 남향, 건물 상단과 하단에 따라 크기가 달라 통풍을 용이하도록 했다.
또 진흙과 횟가루, 숯 등이 섞인 바닥은 계절에 따라 습기를 머금거나 내보내며 습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밖에 가야산 중턱 해발 700m에 자리잡은 해인사 위치, 한국전쟁 와중에도 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새웠던 해인사 스님들의 노력 등이 오늘의 대장경판을 있게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인사 스님 150여명은 이날 법보전의 문을 열기에 앞서 팔만대장경을 민간에게 개방하는 것을 부처님에게 알리는 '고별식'을 경내 대적광전에서 봉행했다.
현응스님은 고불문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지구적 감염사태는 2년째 계속되고 있고,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 사람들이 유례없는 대재앙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팔만대장경에 담겨 있는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 팔만대장경을 조성할 당시의 호국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어려운 시기에 해인사는 국민에게 팔만대장경을 개방해 직접 참관하게 하는 결정을 내렸다"면서 "코로나 사태에 힘들고 지친 우리 국민이 위안과 치유를 얻고 큰 힘과 감동을 마음속에 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바랐다. 스님들은 팔만대장경 봉찬게로 대장경이 역사 속에서 지혜와 자비, 국난 극복에 큰 역할을 했던 일을 찬탄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19일부터 사상 첫 일반 공개…현응스님 "코로나에 대장경 보고 큰 힘 내시길" 직접 마주한 팔만대장경은 실로 장엄했다. 600년이 넘는 세월 속에 해인사 장경판전의 품속에서 호흡해온 팔만대장경판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10일 해인사는 장경판전 4개 동 중 법보전 내부를 공개하고 대장경판을 가까이서 취재할 기회를 제공했다.
오는 19일부터 일반 국민을 상대로 사상 처음 시행하는 '사전예약 탐방제'에 앞서 취재진이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사찰의 정문 격인 일주문을 출발한 취재진은 장경판전 남쪽 건물인 수다라장의 출입문을 통과해 마당을 지나 법보전 출입문에 도달했다.
판전 안으로 발을 내딛자 5개 층으로 구분된 판가(板袈·경판꽂이)에 촘촘히 꽂혀 있는 대장경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도서관의 서고와 빼닮은 모습이었다. 대장경판은 고려 고종 19년인 1237년 몽고의 침임을 불력(佛力)으로 막고자 조성이 시작돼 1248년까지 12년간 각수(刻手)에 의해 판각됐다.
준비기간까지 합하면 완성까지 16년이 걸린 것으로 전해진다.
대장경판은 총 8만1천258장, 5천200만자가 경판 앞뒤로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경(經)·율(律)·논(論) 등 삼장(三藏)으로 불교 경전 전체를 모았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조성 당시 강화도 대장경판당에 보관돼 있던 것을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 경남 합천 가야산 남서쪽에 있는 해인사로 옮겨와 600년 이상을 이곳에서 보존돼 왔다.
법보전에는 화엄경 등 대승불교 경전이 주로 있다면, 수다라장에는 아함경과 사분율 등 근본불교라 불리는 소승불교 경전이 보관돼 있다.
대장경판 보존소임을 맡은 일한스님은 법보전 내부를 손전등으로 비추며 제1판가, 팔만대장경판의 처음인 '대반야바라밀다경'부터 취재진에 소개했다.
대장경판은 가로 약 70㎝, 세로 약 24㎝ 크기로, 두께는 어른 손가락의 한두 마디 정도다.
목판 양쪽 끝에는 손잡이 역할을 하는 마구리가 두툼해 글자가 새겨진 부분과 두께가 차이가 난다.
이는 판가에 꽂힌 경판들이 서로 밀착해있어도 통풍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 대장경 연구원이 장갑을 낀 채 판가에서 '광명경'의 내용이 적힌 경판 하나를 꺼내 앞으로 내보이자 취재진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나왔다.
국보 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눈앞에서 본 이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기자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경판을 들여다보니 손잡이에는 옻칠이, 경판에는 경전의 원음이 한자씩 양각돼 있었다.
600년이 넘는 세월에도 먼지가 뿌옇게 낀 모습이 아닌 보존의 미학이 두드러진 느낌이었다.
해인사 주지 현응스님은 "21세기까지 대장경판이 해인사에서 훼손 없이, 원형의 변동(화) 없이 그대로 모셔져 있는 것은 수천, 수백 가지의 기적이 있어서다"며 "전쟁기간에 5천200만자를 새긴 것도, 이를 해인사로 모셔온 것도, 국가,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넘은 것도 모두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경판은 지금도 먹을 발라 한지에 찍으면 글자 한 자 한 자가 판각 당시처럼 또렷이 나타난다고 한다.
대장경판이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도 이같이 온전하게 보존돼 온 배경으로는 과학적으로 지어진 장경판전 구조에서 그 답을 찾는다.
목조건물인 장경판전 전·후면으로는 붙박이 살창이 나 있는데, 건물 내 환기와 온도·습도 조절 등 대장경판의 장기 보존에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살창도 북향과 남향, 건물 상단과 하단에 따라 크기가 달라 통풍을 용이하도록 했다.
또 진흙과 횟가루, 숯 등이 섞인 바닥은 계절에 따라 습기를 머금거나 내보내며 습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밖에 가야산 중턱 해발 700m에 자리잡은 해인사 위치, 한국전쟁 와중에도 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새웠던 해인사 스님들의 노력 등이 오늘의 대장경판을 있게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인사 스님 150여명은 이날 법보전의 문을 열기에 앞서 팔만대장경을 민간에게 개방하는 것을 부처님에게 알리는 '고별식'을 경내 대적광전에서 봉행했다.
현응스님은 고불문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지구적 감염사태는 2년째 계속되고 있고,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 사람들이 유례없는 대재앙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팔만대장경에 담겨 있는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 팔만대장경을 조성할 당시의 호국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어려운 시기에 해인사는 국민에게 팔만대장경을 개방해 직접 참관하게 하는 결정을 내렸다"면서 "코로나 사태에 힘들고 지친 우리 국민이 위안과 치유를 얻고 큰 힘과 감동을 마음속에 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바랐다. 스님들은 팔만대장경 봉찬게로 대장경이 역사 속에서 지혜와 자비, 국난 극복에 큰 역할을 했던 일을 찬탄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