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part.6] ‘탈(脫) 도파민’의 시대,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최근 알츠하이머병의 약물 개발 트렌드가 ‘탈(脫) 아밀로이드 베타’라면 파킨슨병 약물 개발은 ‘탈 도파민 약물’이다. 파킨슨병은 도파민을 분비하는 ‘도파민작동성 뉴런’에 알파시누클레인이라는 단백질이 쌓이면서 발생한다. 알파시누클레인이 타우 단백질, 유비퀴틴, 신경섬유 단백질 등 여러 단백질과 엉겨붙으면서 루이소체(lewy body)를 형성하고, 결국 신경세포 사멸로 이어진다.

1950년대에 파킨슨병을 앓는 환자의 뇌 흑색질에서 도파민이 매우 적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본격적인 치료법 개발이 시작됐다. 1967년 조지 코트지아스 박사가 도파민의 전구체인 레보도파를 이용한 약물로 파킨슨병 환자의 운동 능력을 다소 높이는 데 성공하면서 이른바 ‘도파민의 시대’가 열렸다.기존에 개발돼 사용되던 파킨슨 약물은 크게 6가지 종류다. 도파민의 전구체인 ‘레보도파’, ‘도파민 유사체’, 도파민 분해 효소를 억제하는 ‘MAO-B 억제제’, 레보도파 분해 효소를 억제하는 ‘COMT 억제제’, 아세틸콜린의 길항제인 ‘항콜린성 제제’, 도파민 신경 말단에서 분비를 촉진하는 ‘아만타딘’ 등이다. 레보도파와 도파민 유사체는 직접적인 도파민계 약물로 주로 중증환자들에게 처방된다. 나머지 4개 약물은 간접적인 도파민계 약물로 파킨슨병 초기 환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사용된다.

도파민계 약물은 환자의 운동 능력 향상에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내성이 생긴다는 점, 도파민 조절장애증후군(DDS)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좀 더 안전하고 근본적인 치료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는 국내외 많은 기업이 비도파민계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많은 연구자들이 도파민 뉴런이 사멸해가는 메커니즘을 연구한 덕이다. 앞으로의 10년은 새로운 타깃의 약물들이 대거 임상에 진입하거나 가시적인 성과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명확하게 원인 밝혀진 유전자 변이에 집중하는 경향 보여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들의 청사진을 보면 과거에 비해 좀 더 근본적인 원인에 집중하고 있다. 파킨슨병 환자의 10~15%는 유전적인 원인에 의해 발병한다. 나머지 85~90%는 산발성 파킨슨병으로, 발병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존재하지만 아직 명확하게 증명된 것은 없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이 유전적 변이에 집중해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

유전자 변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리소좀 관련 유전자(GBA·LRRK2 등)다. 파킨슨병 연관 유전자 중 최소 20개 이상의 유전자가 리소좀과 관련돼 있다. 리소좀은 세포 내 청소부와 같은 존재로 불량 단백질이 생겨났을 때 이를 제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리소좀에 문제가 생기면 알파시누클레인이나 아밀로이드 베타 등을 제때 분해하지 못해 그대로 세포에 축적된다.

GBA와 LRRK2는 모두 리소좀의 활성과 연관돼 있지만, 둘의 역할은 정반대다. GBA는 리소좀의 활성을 돕는 반면 LRRK2는 과도한 활성을 유도해 리소좀의 기능을 망가뜨린다. 업계에서는 이런 메커니즘에 기반해 GBA 활성제, LRRK2 억제제를 개발하고 있다. 우선 GBA는 글루코세레브로시데이즈(GCase·glucocerebrosidase-1)의 유전자다. GCase는 리소좀 효소 중 하나로 글루코실세라마이드(GL-1)를 당과 세라마이드로 분해시킨다. 세라마이드는 리소좀이 단백질을 분해시키는 오토파지 기전에 관여한다. 프리베일테라퓨틱스의 ‘PR001’, 라이서소멀 테라퓨틱스의 ‘LTI-291’ 등이 GBA 변이에 대응하는 파이프라인이다.

두 파이프라인은 모두 GBA를 활성화 시키지만 접근방식에 차이가 있다. 프리베일은 바이러스 벡터를 이용해 정상 GBA 유전자를 세포로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 라이서소멀은 GBA 활성인자를 이용한다. 사노피 역시 GBA 활성인자(벤글루스타트)를 이용해 임상 2상을 진행했지만, 올해 2월 1차 평가변수를 달성하지 못해 임상을 중단했다.

LRRK2는 인산화효소(키나아제)의 일종으로, 다수의 LRRK2 억제제 파이프라인이 치열한 경주를 하고 있다. 선두를 달리는 것은 바이오젠이다. 바이오젠은 지난해 디날리 테라퓨틱스의 LRRK2 억제제 파이프라인인 ‘DNL151’의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만 10억2500만 달러(약 1조1413억 원)의 빅딜이다. 이 외에도 RNA 치료제 개발 기업인 아이오니스로부터 LRRK2의 단백질 발현을 억제하는 RNA 치료물질 ‘BIIB094’를 사들였다. 다양한 타깃과 모달리티의 파이프라인을 확보함으로써 뇌질환 분야의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알파시누클레인을 암호화하는 ‘SYNA’를 타깃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업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아노비스바이오의 ‘ANVS-401’은 저분자 화합물로 SYNA의 번역 과정을 막는다. mRNA의 비번역 부위에는 번역을 조절하는 인자가 존재하는데, ANVS-401은 이런 인자에 작용해 단백질의 발현을 방해한다. 아노비스는 지난 5월 21일, ANVS-401이뇌의 염증 수치를 낮추는 데 유의미한 효과를 보인다는 임상 2상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아멕스(AMEX)에 상장한 아노비스의 주가는 이날 2배 이상 뛰었다. 전체 연구 데이터는 오는 7~8월에 나올 예정이다.

알파시누클레인을 잡아라! 다양한 메커니즘 등장해
유전적 변이 이외에 파킨슨병 치료제를 이끄는 또 다른 흐름은 알파시누클레인 타깃이다.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들은 알파시누클레인의 이동이나 응집을 막고, 알파시누클레인의 양을 줄여나가는 등 여러 방식으로 알파시누클레인을 공략한다.

알파시누클레인의 이동을 막는 데에는 주로 항체나 백신이 사용된다. 2003년에 설립된 오스트리아 바이오텍 아피리스는 알파시누클레인에 대한 펩타이드 백신 ‘PD01’을 개발해 지난해 임상 2상에 진입했다. 알파시누클레인을 구성하는 일부 펩타이드를 체내로 전달해 면역시스템이 알파시누클레인에 대한 항체를 생성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임상 1상 결과, 고용량의 백신을 투여한 환자의 뇌척수액에서 알파시누클레인 올리고머가 약 51%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회사는 이 결과를 지난해 국제학술지 <란셋 뉴롤로지>에 발표했다.

알파시누클레인 항체를 이용하는 로슈는 지난해 4월 파킨슨병 파이프라인 ‘프레시네주맙(PRX002)’의 임상 2상의 중간 결과가 1차 충족점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안전성과 일부 효능을 확인해 임상 2b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알파시누클레인의 응집을 막는 방식을 택한 기업도 있다. 가장 흥미로운 접근 방식을 취한 곳은 알테리티테라퓨틱스다. 루돌프 탄지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설립한 기업으로, 철 킬레이트 성분을 이용한다. 철 킬레이트는 철 이온과 결합력이 매우 높은 물질로, 체내 철 농도를 낮춰준다. 철 이온은 활성산소(ROS)를 발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2년 브렌드 스톡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페롭토시스(ferroptosis)’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제안했다. 페롭토시스는 세포가 스스로 사멸하는 아폽토시스나 유비퀴틴-프로테아좀(UPS)과 같은 세포 사멸 경로가 아니라, 철 이온이 축적되면서 사멸하는 세포사멸 형태다. 세포 내 철 이온이 쌓이고, ROS가 과도하게 발생하면서 세포가 사멸에 이르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뇌에서도 페롭토시스에 의한 뇌세포 사멸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실제 탄지 교수는 페롭토시스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인 1994년 철, 아연, 구리 등 금속 물질이 루이소체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철은 알파시누클레인이 축적되는 속도를 높여주고, 결국 뇌세포 사멸로 이어진다. 현재 임상 1상에 진입한 알레리티의 ‘PBT434’는 전임상 단계에서 알파시누클레인보다 철 이온과 더 잘 결합하고, 크기가 작아 뇌혈관장벽(BBB)을 원활히 통과하는 것을 확인했다.

줄기세포, 마이크로바이옴 등 새로운 모달리티를 이용한 파킨슨병 치료제도 연구개발 중이다. 시장에 다양한 타깃의 약물이 등장하는 만큼, 미래를 예측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과연 어떤 타깃이, 어떤 약물이, 어떤 기업이 시장을 장악할 것인가. 대다수의 파이프라인이 임상 2상에 돌입하는 3~4년 안에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인다.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