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인플레 피크 지났다? S&P 500 사상 최고 돌파

10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5.0%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8년 이후 거의 13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오른 겁니다. 특히 에너지와 음식을 제외한 근원 CPI는 3.8%에 달해 1992년 이후 최고로 치솟았습니다. 모두 월가 예상(4.7%, 3.5%)를 훌쩍 웃돌았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놀라지 않았습니다. 뉴욕 채권시장에서 금리(전날 1.489%)는 잠깐 연 1.535%대로 올라가더니 오후 들어선 급락해 1.439%로 마감됐습니다. 한 때 1.435%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는 지난 7년물 입찰 실패(2월25일)로 금리가 1.4%대에서 1.6%대로 수직상승하기 직전인 2월24일 수준으로 돌아간 겁니다.
금리가 내리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이 앞장서면서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도 모두 올랐습니다. 다우는 0.06%, 올랐고 나스닥은 0.78% 상승했습니다. S&P 500 지수는 0.47% 오른 4239.18을 기록해 종전 사상 최고치(5월7일 4238.04)를 넘어섰습니다.

높은 CPI에도 주식과 채권 가격이 모두 상승한 이유는 무엇일가요?

먼저, 물가의 세부 내용을 따자면 '일시적' 요인이 많았습니다. 5월 근원 CPI는 전월 대비로 보면 0.74% 상승했습니다. 중고차 가격은 전달보다 7.3%(전년대비 29.7%) 상승해 지난 4월에 이어 CPI 상승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월보다 1.3% 오른 신차 가격과 12.1% 뛴 렌트카 가격까지 포함하면 차량 관련 요인이 근원 CPI의 상승폭 0.74% 중 절반인 0.37%를 차지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반도체 공급 부족에 다른 신차 생산 부족이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겁니다. 월가 관계자는 "중고차가 모자라긴 하지만 작년 대비 벌써 30% 가량 올랐는데 계속 이런 식으로 더 오르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고차 가격이 지난달에는 10% 올랐던 걸 감안하면 상승세의 폭이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운송비가 전월 대비 1.5%(전년 대비 11.2%) 올라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다. 작년 팬데믹 때 급락했던 항공권 가격이 5월에도 6.98% 회복했고 렌트카도 12.1% 오른 탓입니다. 이들도 일시적 가격 회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구겐하임파트너스의 스콧 마이너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5월 CPI는 인플레가 일시적이라는 걸 증명하는 증거다. 가장 큰 상승은 중고차와 렌트카, 항공권, 그리고 호텔비에서 나타났다. 이들이 전체 CPI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밖에, 안되지만 전월 대비 근원 CPI 상승폭의 절반을 차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백악관 경제자문회의는 기저효과를 빼면 근원 CPI가 2.6%에 그친다는 친절한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높은 것이지만 경제 회복에 따른 일시적 요인을 감안하면 괜찮다는 겁니다.
이렇게 일시적 요인, 기저효과가 많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자 5월 물가가 정점을 찍은 게 아니냐는 추정이 잇따랐습니다. 6월은 기저효과도 감소할 뿐 아니라 병목 현상도 조금씩 개선되면서 5월보다 내려갈 것이란 것이죠. 사실 5월 근원 CPI는 전년 대비로는 지난 4월의 3.0% 상승을 웃돌았지만 전월 대비로는 4월의 0.9% 상승을 밑돌았습니다.

사실 CPI가 지금보다 높았던 2008년, 근원 CPI가 이번보다 높았던 1992년은 모두 만연한 인플레이션가 시작되던 때가 아니라, 경제 회복의 초기였습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미국의 인플레는 5월에 피크를 쳤을 가능성이 크다 △(몇 달간 높은 수준은 유지하겠지만) 올해 남은 기간 조금씩 내려갈 것이다 △다만 2% 수준에서 계속 머물 것이고 △내년 4~5월엔 올해 높았던 역기저효과로 인해 낮아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이에 채권 시장의 트레이더들이 일제히 "사자"에 나선 것입니다. 이날 30년물 국채 입찰도 대성공은 아니었지만 괜찮게 진행됐습니다. 응찰률은 2.29배(전달 2.22배)로 보통 수준이었고 낙찰금리는 2.172%였습니다. 주목되는 건 해외 투자자가 가져간 간접수요가 64%에 달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고문은 "채권 금리가 내려가고 주가가 상승한 것은 얼마나 투자자와 트레이더들이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Fed의 '주문'(呪文)을 잘 따르고 있는 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주문'은 금세 쉽게 바뀌진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Fed의 채권 매입과 낮은 기준금리에 대항하는 건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인플레가 일시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해도, 일시적이라고 가정하고 행동하는 게 지금 시장에선 편안하다는 얘기입니다.

이날 유럽에서도 유럽중앙은행(ECB)이 통화정책 회의를 갖고 금리 동결, 양적완화 지속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올해 유로존의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지난 3월 1.5%에서 이날 1.9%로 올려 잡았습니다. 그러나 2023년은 1.4%로 변화를 주지 않았습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근원 인플레이션은 점진적으로 올라가고 헤드라인 인플레이션 역시 향후 몇 개월 동안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요인 때문이며 상승세는 점진적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5월 CPI를 잘 보면 불안한 요인도 있습니다. 중고차 항공권 렌트카 가격 등이 오른 것은 지난 4월과 같습니다. 눈에 띄게 달랐던 건 주거비(Shelter)에 포함되어 있는 자가주거비(OER)입니다. 구조적 인플레이션 요인인 OER과 렌트의 상승폭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OER은 집주인이 월세를 내고 살고있다고 가정해 환산하는 겁니다. 주거비 항목은 CPI에서 가장 큰 비중(30% 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OER은 지난 4월에는 전월대비 0.2%였지만 5월엔 0.31%로 높아졌습니다. 그 전 3개월 평균이 0.23%인 점을 감안하면 점점 더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의 집값을 보여주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전국주택가격지수는 지난 3월 전년 동월보다 13.2% 오른 것으로 집계되는 등 집값 상승세가 거셉니다. 이런 상승세가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하면 CPI가 내려오기는 쉽지않을 것이란 지적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한 달은 트렌드는 아니지만, 이건 분명 더 강하고 지속적인 상승 신호"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은행은 일시적 요인이 점점 사라지는 내년에도 근원 물가가 Fed의 목표인 2% 이상에서 머물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런 핵심 이유가 바로 OER과 렌트 가격의 상승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란 주장의 강력함을 무시할 수 없지만, 일시적 인플레가 강하고 지속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지 지켜보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다음 나올 물가지표는 오는 25일 발표될 5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입니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근원 PCE가 5월 3.6%에 달해 1990년 이후 처음으로 3%대로 높아질 것이지만 이후 차차 낮아져 내년에는 2.5% 수준으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시장은 인플레이션에 어느정도 편안한 상태로 바뀌었습니다. 다만 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면 안됩니다. 월가에선 시장이 너무 안주(complacent)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날 발표된 CPI가 가장 많이 오른 게 자동차 때문이라고 전해드렸습니다. 자동차는 지금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로 인해 생산이 제대로 안돼 신차부터 중고차, 렌트카까지 다 다 오른 겁니다. 그럼 이런 상황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최근 국내 대표 전자회사 고위관계자들을 여러 명 만났습니다. 이들은 자동차 반도체 부족 사태가 내년, 내후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부족 사태는 두가지 원인 때문에 불거졌는데, 이게 잘 풀기 어렵다는 겁니다.

먼저 미·중 갈등이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시스템 반도체는 대부분 최첨단 제품이 아닙니다. 회로선폭 120nm 등 구식(legacy) 제조 라인에서 생산됩니다. 반도체 회사들은 그동안 비용 절감을 위해 이런 구식 생산 설비를 중국으로 많이 옮겨놓았습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부터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와 관련 장비, 소재 등의 수출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국내 생산 시설은 새로운 장비 입고뿐 아니라 수리, 보수도 제대로 안됩니다. 소재도 수입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들 공장을 다시 중국 밖으로 이전해야하는 상황인 겁니다. 그러니 차량용 반도체 생산량을 정상화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자동차 회사들의 '갑' 마인드가 지적됩니다. 자동차 회사들은 그동안 공급망의 가장 위에서 부품사들을 지배해왔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팬데믹으로 수요가 줄자 바로 주문을 감축했습니다. 당시 반도체 회사들은 IT 관련 주문이 늘면서 그 쪽으로 생산라인을 돌렸습니다. 미국의 경기가 회복되자 작년 말부터 자동차 회사들이 다시 반도체 주문에 나섰지만 반도체 회사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IT 수요만 해도 넘치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 주문을 줄였던 자동차 회사들을 무리해 도와줄 이유는 많지 않습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자동차 회사들이 부품사와 상생하겠다는 정신이 없이는 이런 사태가 또 재발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업계에서 모자라는 건 반도체뿐 아닙니다. 한 업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하는 일의 90%가 구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소재와 자재들이 가격이 뛰었을 뿐 아니라 구하기도 어려워 생산을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구매를 CEO가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는 "모든 게 올랐고 우리도 벌써 작년 말부터 제품 값을 몇 차례 올렸다"면서 "인플레이션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프록터&갬블(P&G)은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물류와 원자재 비용이 6억 달러 가량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회사는 그동안 올해 물류비 2억 달러, 원자재 비용 1억2500만 달러를 예상해왔는데 거의 두 배 이상 들어갈 것이란 뜻입니다.

대표적 원자재인 국제 원유의 상승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33센트(0.5%) 오른 배럴당 70.29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전날 70달러 밑으로 떨어졌었지만 하루만에 회복한 겁니다.

과연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일까요?
이날 원유 시장에선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CPI 상승세에서 경기 회복 추세가 확인되면서 유가는 이날 오전까지 7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오께 갑자기 68달러 후반대로 뚝 떨어졌습니다. 미 언론들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에 대한 석유 수출 제재를 해제했다"고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몇 분 뒤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의 석유 수출을 풀어준 게 아니라 이란 전 당국자와 에너지 기업 관계자 10여 명에 대한 제재를 해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유가는 다시 70달러 선 위로 회복됐습니다. 미국과 이란 당국자 간의 핵 합의 복원 협상은 이번 주말 빈에서 재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