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판매' 개선될까…유통시장 개혁나선 日 대형 출판사들 [김동욱의 하이컬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부터 '진격의 거인'같은 만화까지 두루 출판해온 일본 고단샤는 푸른색 표지의 '고단샤 학술문고'시리즈로도 유명하다.
지난달 중순 일본 3대 출판사로 불리는 고단샤(講談社)와 슈이에샤(集英社), 쇼가쿠칸(小学館)의 3사가 종합상사 마루베니와 손잡고 연내에 출판유통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매년 급속히 위축되는 출판시장에서 대형 출판사들이 손을 잡고 생존을 모색하고 나선 것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고단샤 등 3개 출판사는 지난달 14일 도서유통시장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이들 출판 3사는 공동 발표문을 통해 "출판유통 공급망을 최적화해 판사와 서점의 유통비용을 줄이고 반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초기 자본금은 2억 엔(약 20억 원)이지만 2년 뒤엔 100억엔(약 1000억 원) 수준으로 키운다는 계획입니다. 자사 출판물 외에 중소 출판사들의 출판물 유통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입니다.
고단샤가 초대형판으로 선보였던 만화 '진격의 거인'
새로 설립되는 회사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업무 효율화 사업과 RFID 활용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 출판계에선 출간 서적의 40%가량이 팔리지 않고 반품이 되는 등 후진적인 유통구조가 고질병처럼 업계의 발목을 잡아 왔다고 합니다.

일본 출판사들은 서점과 직거래를 하는 대신 중개업체에 출판물을 위탁해 전국의 서점에 유통해 왔습니다. 중개업체들은 수십 년간 출판유통 시장을 과점하고 위탁 재판매제도를 바탕으로 획일적으로 배송을 했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는 수고를 덜어주지만, 소비자의 수요와 출판사의 책 공급이 잘 맞지 않으면서 반품률이 높은 단점이 있었습니다.
16년 연속 위축된 일본 종이 출판물 시장/니혼게이자이신문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일본의 종이 출판물 시장 규모는 1조2237억엔(약 12조4000억 원) 규모로 16년 연속으로 시장이 줄어들었습니다. 오프라인 서점수도 1만1024개로 20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대형 출판사들은 유통시장 개혁으로 더 시장 위축을 막아보겠다는 각오입니다.이에 새로 설립되는 출판유통회사는 AI를 활용해 서점의 판매면적과 과거 판매 데이터, 지역성 등을 바탕으로 각 서점에 맞는 출판물의 종류를 가려내고, 판매 수량을 예측해 이를 바탕으로 출판물을 발행·배본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미 미국과 유럽의 대형 출판사들은 수년 전부터, 출판 기획단계에서부터 판매량 등의 기본 데이터를 이용해 도서출판과 유통에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RFID 사업은 IC 태그를 서적과 잡지에 부착해 실시간으로 재고를 관리하고, 매장에서의 도서 추천 서비스, 도난 방지 시스템 등을 구축하는 내용으로 알려졌습니다.

새로 설립되는 출판 유통회사는 마루베니가 과반을 출자하고 나머지를 출판 3사가 분담하는 구조입니다. 마루베니는 출판사에 오랫동안 인쇄용지를 공급해오며 출판계와 인연을 맺어왔다고 합니다.다만 초대형 출판 3사의 이 같은 행보를 경계의 눈초리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3사의 출판시장 점유율을 합치면 일본 종이 출판물의 30%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특이 이들 3사는 종이 출판물 물류의 70~80%가량을 담당하는 닛판과 토한의 대주주이기도 합니다.
고단샤 학술문고
최근 한국 출판업계에서도 정부 주도 출판유통통합전산망 구축과 관련해 각종 잡음과 마찰음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모두 후진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는 출판 유통구조가 산업발전의 발목을 잡는 모습입니다.

사회의 지성과 지식 확산을 주도해야 할 출판산업이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지는 행태를 보이는 현실이 무척이나 갑갑하다는 느낌입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