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가 4800억원 마진콜을 당했다고? [파생시장의 기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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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편집자 주: 파생시장 전문가 K씨와 이상은 기자가 파생상품의 다양한 구조와 시장의 흐름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파생시장의 기억'을 마켓인사이트에 매달 연재합니다. 앞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ELS, 원유시장선물, DLF 등 다양한 파생상품에 얽힌 한국 시장의 이야기를 소개할 예정입니다.]2020년 3월 13일 금요일, 서울 여의도. 모니터를 바라보던 A증권사 B팀장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전날 밤 유럽장이 급락하면서 거래하던 외국계 증권사에서 EuroStoxx50이 전날 -12.4% 떨어졌으니 추가 증거금 4억달러(약 4800억원)을 납부하라는 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이다.굴지의 증권사인 A사는 그 정도 자금을 마련하지 못할 회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B팀장이 받은 마진콜 통보가 이것 하나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EuroStooxx50 다음으로 포지션이 큰 Nikkei225 지수는 전일 -4.4% 하락하였고, 오늘도 -5% 넘게 하락 중이었다. 모든 해외지수 거래로부터 비슷한 마진콜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추가 증거금은 달러로 내야 했다. 당연히 보유하고 있는 달러가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태부족이었다. 증권사들은 보유 자산을 팔기 시작했다. 팔 수 있는 자산들은 팔고, 모자라는 금액은 단기자금시장에서 조달했다. 그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달러 매수에 나섰다.이날 모든 증권사들이 한꺼번에 외환시장에 달려가면서 시중은행의 외환 트레이더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봐야 했다. 대체 무슨 일이 터진 거지?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달러 환전에는 응해주었지만, 여러 증권사로부터 동시에 수천억원 규모의 대규모 환전 요구가 쏟아지자 더 이상 대응을 하지 못했다. 증권사들은 애가 탔다. 달러 환전을 할 수 없으면 마진콜에 대응할 수가 없고, 반대매매를 당할 참이었다.가지고 있는 자산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국고채와 은행채 등의 우량채 말고는 현금화할 수 없었다. 현금화 해도 달러를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달러표시 채권에도 '급'이 있다. 종전에 받아들여지던 낮은 등급 채권은 더 이상 증거금으로 효력이 없었다.
전 세계가 "달러 현금만이 왕(king)!"이라고 외치던 날이었다. 상대방(미국 증권사)은 미 국채 등 우량 자산만 증거금으로 낼 수 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A증권사만이 아니라 국내 모든 증권사가 같은 처지였다. 나아가 전 세계 투자자들 중 상당수가 이날은 모두 달러를 구하지 못해 패닉에 빠졌다. 'OO 증권사가 마진콜을 얼마 받았다', '△△ 증권사가 휘청거리고 있다'는 루머가 카카오톡을 타고 빠르게 시장에 돌았다. 증권주는 급락했다.
증권사들은 금융당국에 사안의 시급성을 호소한 뒤에 급한 불을 껐다. 그래도 소문은 잡히지 않았다. 증권사 발 위기설이 끊이지 않았다. 3월19일, 한국은행은 증권사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사 주는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했다. 두 차례에 걸쳐서 총 3.5조원이 증권사 RP 매입에 사용됐다. 이어 3월26일에는 석달동안 '무제한' RP 매입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추가 위기 가능성을 차단했는데, 대상 기관에 증권사를 대거 포함시켰다. SOS에 대한 화답이었다.◆증권사를 코너에 몰아붙인 달러 마진콜
국내 증권사들이 이런 처지에 몰린 원인은 바로 '마진 콜'이다. 마진 콜은 추가 증거금(margin)을 내라는 요청을 뜻한다. 선물·옵션과 같은 파생상품은 상품을 거래할 때 거래대금을 100% 내지 않는다. 전체 거래금액의 10~20% 증거금(마진) 만으로 투자할 수 있다. 그래서 5~10배의 레버리지 효과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KOSPI200 선물의 명목금액은 지수가치 400pt X 승수 25만원 = 1억원이지만, 20%인 2,000만원 수준의 증거금만 있으면 투자할 수 있다.
그런데 시장가격이 급락할 때는 기존에 넣어 놓은 증거금이 부족해질 수 있다. 예컨대 KOSPI200이 10% 하락하면 1000만원(=400pt X 10% X 25만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그만큼을 그날 즉시 정산(정산차금)해야 하고, 2000만원 수준의 증거금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일일정산(daily settlement)이라 한다. 거래소(청산소)가 해당 투자자와 거래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조건이다. 다음날까지 정산되지 않으면 투자자는 보통 정오까지 추가 증거금을 납입하라는 전화를 받는다. 마진콜이다. 납입하지 못하면 청산매매가 발생한다.그런데 여기서 잠깐. 마진 콜이라는 말을 들으면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귀하의 증거금이 부족하므로 추가로 돈을 넣으시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이날은 왜 증권사들이 전화를 받는 쪽이 됐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증권사가 해외 거래소의 선물·옵션에 투자하는 '투자자'였기 때문이다. 이날 국내 증권사에 마진 콜을 한 상대방은 해외 거래소의 회원사인 글로벌 증권사(또는 투자은행)들이었다.
국내 증권사는 그러면 왜 해외 거래소의 상장 선물·옵션에 투자했을까. 국내 투자자들에게 익숙한 주가연계증권(ELS)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해외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때문이다.
◆ELS 운용에서 달러 마진콜이 발생하는 이유
저금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른바 '중위험·중수익'을 노릴 수 있는 ELS는 '국민 재테크 상품'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일반 투자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증권사들이 발행한 ELS(ELB 포함)의 전체 규모는 99조9011억원으로 집계됐다. 거의 100조원이다.
ELS 발행잔액은 50조원 규모이고, 이중 절반은 국내증권사가 자체 운용하고1, 나머지 절반은 해외 증권사에 맡긴다. 국내 증권사들의 자체운용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삼성증권 약 6조원, 한국투자증권 약 5조원, 미래대우증권 약 3조원, KB증권 약 3조원 등 약 20조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2. 20조원 규모의 자체운용 ELS가 대부분 해외지수 ELS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EuroStoxx50, Nikkei225, S&P500 등의 해외지수를 추종하기 위하여 각각 유럽거래소(Eurex), 오사카거래소,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상장된 선물옵션을 거래한다. 증거금은 대부분 달러로 납부한다.그런데 ELS에 투자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어떤 조건에서 얼마를 받는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어떻게 운용되는지는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ELS는 주식과 채권이 주가에 반비례해서 자산 배분되도록 설계한 상품이다. 주가가 높은 초기엔 투자금액의 약 3분의 1을 주식에, 나머지는 채권에 투자하다가 주가가 하락하면 채권 비중을 낮추고 주식 비중을 높인다. 만약 주가가 엄청나게 하락하면? 채권을 전부 팔고 주식에 100% 투자할 수도 있다. 주식이 싸니까 주식에 100% 투자한다는 뜻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제가 충격을 받은 지난해 3월, 증권사들이 달러 마진콜을 받은 원인은 ELS였다. 사실 마진콜은 ELS 운용과정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통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문제는 글로벌 증시가 동시에 급락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마진콜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앞서 밝혔듯, ELS는 주가에 반비례해서 자산 배분 비중을 조정한다. 주가가 급락하면 채권을 팔고 주식을 더 사게 돼 있다.
이날이 그런 날이었다. 원래는 주가지수 투자 비중이 30%였다가 70%로 높이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주가지수를 사는 데 따른 추가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통상 그러하듯이 주가지수를 선물로 투자하고 있다면 기보유 포지션에 대한 손실분을 정산하고(정산차금), 추가 포지션 매수를 위한 증거금을 납부해야 한다. 게다가 시장이 폭락하는 와중에는 거래소도 더 높은 증거금률을 요구하곤 한다. 세상이 불안하니 담보를 좀 더 잡고 싶은 것이다. 주가지수를 더 많이 사느라 증거금이 더 필요하고 게다가 증거금률도 높아졌으니 필요한 총 증거금의 규모가 급증한다. 그걸 더 내놓으라는 연락이 바로 마진콜이다.
◆글로벌 유동성 부족 사태에 휩쓸린 달러 마진콜
사실 교과서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 고객에게 20조원의 투자금액을 받아 놓았고 대부분 채권으로 운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보유한 채권을 팔아 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달러로 환전하여 마진콜에 대응'하는 통상적인 절차를 따르면 된다.
주가지수와 채권 간 리밸런싱의 문제이므로 채권을 팔아서 주가지수 선물 포지션을 늘리기 위한 증거금을 대면 되는 문제다.
그렇지만 시장이 요동을 치는 상황에서는 채권을 팔고 싶다고 팔 수 있는 게 아니다. 증권사들은 국고채보다는 캐피탈사가 발행하는 여전채라든가 회사채 같은 종류의 자산을 주로 가지고 있었다. 이날은 이게 팔리지 않았다. 여전채/회사채 시장의 유동성은 하루에 수백억원 정도인데 그나마도 다 사라졌다.
시장에서 팔려고 해도 이날은 모두가 달러 현금이나 안전한 미 국채만을 원했기 때문에 사주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증권사가 똑같은 상황으로, 제각기 비슷한 종류의 여전채를 들고 시장에서 '팔아요!' '팔아요!' 소리를 치며 흔드는 꼴이었다. 마진콜에 대응하지 못하면 해외 거래소에서 반대매매가 나갈 참이었다.
시장은 어느 정도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지만, 유동성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날은 채권 시장과 원달러 시장의 유동성이 마진콜 요청을 받은 증권사들의 발목을 잡았다. 유동화에 문제가 생기면 땅이 있어도 현금이 없어 세금을 못 내는 사람 같은 처지가 된다.
ELS 운용자금을 ELS 운용부서가 아닌 채권운용부서나 투자금융부서에서 운용하는 까닭에 원활한 의사소통과 신속한 대응이 어려웠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여전채 금리는 상승하며 크레딧 스프레드가 확대되었다. 증권사들은 크레딧 스프레드로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원달러 시장도 유동성이 마르며 스왑포인트가 확대되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6일 0.50%포인트 인하(연 1.25%->0.75%)했지만 파는 사람이 많은 여전채 금리는 되레 상승(채권가격 하락)했다. (증권사들은 이것 때문에도 손실을 입었다.)◆달러 마진콜, 약 5조원 규모 추산
달러 마진콜의 규모가 얼마나 됐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정확한 숫자를 외부에서 파악하긴 쉽지 않지만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국내 증권사의 해외지수 운용 규모는 약 20조원 수준이었다.
이 중 3분의 1 정도인 35%를 주가지수로 운용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주가지수 운용 규모는 약 7조원이고 증거금은 7조원의 10%인 0.7조원 수준이었을 것이다. 10%를 증거금률로 잡은 것은 증권사들이 평소에는 신용도가 높은 '기관고객'이기 때문이다. 개인들의 증거금률은 대개 이보다 높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되며 주가가 30% 급락했다고 치자. 그러면 주가지수 운용 규모가 급격히 불어난다. 원래는 20조원의 35%만 주가지수로 운용했는데, 이제 70%가 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주가지수 운용 규모는 약 14조원이 된다. 변동성이 확대되며 해외 거래소들이 증거금율을 기존 10%에서 20%로 높였다고 가정하자. 먼저 국내 증권사들은 정산차금으로 해당기간 평균 운용규모(7조원과 14조원의 평균인 10.5조원)에 주가 하락률(-30%) 만큼, 약 3조원을 납부해야 한다. 또한 늘어난 운용규모(14조원)에 변경된 증거금율(20%)을 곱한 2.8조원을 증거금으로 쌓아야 한다.
운용규모가 늘어난 가운데 주가가 하락해 정산차금이 3조원이 된 데다, 증거금률이 높아져서 2.8조원이 추가로 요구됐다. 원래는 0.7조원을 넣어두고 있었는데 5.8조원이 필요하니 약 5조원 규모의 마진콜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 달러가치가 급격히 상승(약 10%)한 것까지 감안하면, 총 5.5조원어치의 달러를 갑자기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됐다고 계산할 수 있다.
◆위기를 교훈 삼아 시스템 업그레이드 노력이 필요
만약 국내 증권사들이 달러 마진콜을 해결하지 못하고 반대매매가 일어났었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상상하기는 싫지만, 증권사들이 부도 위기에 몰리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로 인한 국내 금융시장의 신뢰도 상실과 기존 프로젝트 중단 위기 등 엄청난 후폭풍이 닥쳤을 가능성이 있다.
ELS 달러 마진콜 사태를 되짚어보면, ELS 100조원 투자 시대에 걸맞는 유동성 확보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LS 운용은 언제든지 채권을 팔고 주식으로 갈아타야 한다. 그러려면 위기 시에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우량채권을 충분히 보유해야 한다.
시장이 얼어붙는 위기 상황에서는 외환시장에도 충격이 온다. 기초자산이 해외지수라면 미 국채도 일정부분 보유해야 할 필요가 있다. 100% 유동성 채권으로만 운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지만, 시장에 충격이 올 때 버틸 수 있을 만큼 충분해야 한다. 아울러 증권사들은 위기 상황에서의 유동성과 손익변동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운용규모를 결정해야 한다.
개별 증권사 단위에서 보이지 않는 전체의 쏠림 현상, 이른바 '부분의 함정'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개별 증권사들이 유동성 채권을 충분히 보유하고, 운용규모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여도 이를 합산한 시장 전체의 규모는 여전히 무시무시할 수 있다.
2015년 HSCEI 지수가 급락할 때 금융감독원과 증권업계가 함께 HSCEI 운용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한 경험이 있다. HSCEI 지수 선물·옵션시장은 다른 해외지수 시장보다 유동성이 훨씬 낮았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혹시 모를 위기를 피해갔었다. 부분의 함정을 피하려면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볼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위에서 상황을 조망하는 감독 당국과 업계 간의 소통이 중요한 이유다.
혹자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ELS를 지목하고 국내 증권사들이 ELS 운용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니 ELS 자체운용을 금지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증권사들의 운용능력은 이미 해외증권사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경험이나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다. 앞으로 해외투자가 확대되며 해외자산 운용과 달러 유동성 관리는 피할 수 없는 이슈인데, ELS트레이더들은 이러한 이슈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그 동안 ELS를 통해 국내 투자자와 증권사들이 벌어들인 수익도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다만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혼란은 예측하기 어렵고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미국 금융당국은 단기적인 대책이 아닌, 수년에 걸친 금융시장과의 논의를 통하여 금융시스템에 중요한 거대 금융기관의 신용보강체계를 구축했다. 우리도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유동성 관리체계를 개선하고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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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혜실, 비즈니스워치 2020년 3월 25일자, ELS 시한폭탄에 투자자도, 증권사도 노심초사
2 최필우, 더벨, 2020년 3월 20일자, 증권사 ‘ELS 마진콜’ 5조 추정…A사 1.2조 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