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 제쳤다…'서버 D램', '직원 초봉' 1위 이끈 '석희형'[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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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보다 높아진 SK하이닉스 초봉지난 8일 SK하이닉스 블라인드(직장인 익명게시판)에 '석희형'이란 단어가 들어간 글이 여러 건 올라왔다. '석희형'은 SK하이닉스 공동 대표(CEO)를 맡고 있는 이석희 사장(56)을 지칭한 것이다. 글을 쓰고 댓글을 단 SK하이닉스 직원들은 하나같이 '석희형'에게 "약속을 지켜줘서 고맙다", "자존심 세워준다는 말 지켜줘서 감사하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직원들은 "석희형을 인정한다"는 댓글을 100개 이상 달았다. 이석희 사장은 직원들의 반응을 전해듣곤 흡족해했다는 전언이다. SK하이닉스에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직원들 자존심 세워주겠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 4월 약속 지켜
직원들, 이 사장을 '석희형'이라고 부르며
블라인드 등에서 '감사함' 표시
이 사장의 '형님 리더십' 빛 발해
인텔 10년 근무한 최고 엔지니어
기술에 대해선 양보 없어
지난해 삼성 제치고 '서버 D램 첫 1위'
HBM2E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서 두각
수원 갈빗집(삼성) 때문에 이천 쌀집(하이닉스) 무너진다(?)
SK하이닉스는 올 초부터 '고난의 시기'를 겪었다. 실적 때문이 아니었다. 지난 2월부터 대기업을 강타한 '성과급 대란'의 발원지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석희 사장 등 그룹 총수·최고경영진들이 연이어 직원들에게 유감을 표명했다. 최 회장은 "직원복지를 위해 써달라"며 임금을 반납하기도했다. 사태가 수습됐지만 한 번 떨어진 사기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 경쟁사 삼성전자 반도체부품(DS)부문이 대규모 경력직 채용 공고를 내면서 SK하이닉스 분위기는 다시 술렁였다. "갈비집(경기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를 지칭) 때문에 쌀집(경기 이천에 있는 SK하이닉스)이 무너진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급기야 지난 4월28일 공동 CEO가 임직원 대상 '온라인 미팅'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이 자리에서 이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답게 기술사무직(대졸 공채)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엔지니어의 성장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육성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라며 “활발하게 직원들과 소통해 ‘자존심’을 세워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착 상태인 연봉 협상에 대해서도 “5월 중 교섭이 진행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그리고 최근 SK하이닉스 노사는 연봉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SK하이닉스 노조는 지난 11일 올해 임금협상 관련 노사 잠정 합의안을 수용하기로했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올해 기본급을 평균 8.07% 인상한다. 대졸 신입사원 초임은 '5040만원'으로 올라갔다.임금협상 타결 특별 격려금으로 전 직원에게 250만원을 오는 15일 일괄 지급한다.
신입사원 초봉만 놓고보면 삼성전자 대졸 신입 연봉(4800만원)보다도 많은 액수를 책정했다. 최대 성과급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신입 연봉은 8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에선 "석희형이 '자존심을 세워줄 것'이란 약속을 지켰다"며 이 사장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한다. 가라앉았던 분위기도 진작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BTS 인용하며 '형님 리더십'으로 위기 극복
이석희 사장은 2018년 취임 이후 꾸준히 '형님 리더십'을 이어왔다. '글로벌 2위 반도체 기업의 CEO로서 카리스마가 약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 사장은 본인만의 장점을 앞세워 SK하이닉스의 입지를 굳건하게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직원들과의 미팅에서 경영 전략과 각오를 밝힐 때 BTS의 최신 히트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의 가사를 인용할 정도로 직원들과의 '소통'에 주력한다. 그는 "다 준비됐어. 다이아몬드가 되어 빛나겠어.(I’m good to go. I’m diamond, you know I glow up.)"라고 말하며 '이제 SK하이닉스는 성공할 일만 남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이 사장이 주재하는 '올핸즈미팅'은 CEO가 모든 회사 구성원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전사 회의다. 누구나 손을 들어 발언 기회를 얻을 수 있어 ‘올핸즈’라는 이름이 붙었다. 평소 소통을 중시하는 이 사장은 2018년 취임 직후 성과발표 위주의 경영설명회를 올핸즈미팅으로 바꿔 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SK하이닉스 직원들이 이 사장을 ‘큰형님’으로 여기는 배경이기도 하다.
인텔 출신 기술전문가...임원들은 보고 때 '진땀' 흘려
다만 '반도체 기술'과 관련해선 이 사장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엔지니어로서 일가를 이룬 그의 배경 영향이다. 그는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은 뒤 SK하이닉스 전신인 현대전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가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세계 최대 반도체기업 인텔에 취직했다. 10년을 일하는 동안 인텔 기술상(IAA)을 세 번 받았다.2010년 이 사장은 한국에 돌아왔다. KAIST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여러 번 고사 끝에 2013년 미래연구원장으로 부임했다. 2018년부터 CEO를 맡고 있다.
임원들은 이 사장에 반도체 기술을 보고할 때 제일 긴장한다고한다. 이 사장의 송곳질문을 피할 수 없어서다. 임직원들이 간과했던 부분을 파고드는 이 사장의 질문에 식은땀을 흘리는 임원들도 많다.
2020년 서버 D램에서 삼성전자 제치고 '첫 1위' 달성
이같은 이 사장의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SK하이닉스는 최근 '만족스러운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의 주력 사업인 서버 D램 시장에서 터줏대감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1위'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서버 D램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애플과 중국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이 데이터센터를 증설할 때 필요한 필수 제품이다. 일반적으로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D램보다 20%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어 팔리기 때문에 '효자 제품'으로 꼽힌다.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207억달러(약 23조원) 규모 글로벌 서버 D램 시장에서 '1위'는 SK하이닉스였다. 매출은 80억8000만달러(약 9조2000억원)로 2위 삼성전자(75억6900만달러, 8조4500억원)을 제쳤다. SK하이닉스가 서버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누른 건 사상 처음이다. 다만 서버 뿐만 아니라 모바일, 그래픽 등 전체 D램 시장을 놓고 보면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41.7%로 SK하이닉스(29.4%)를 앞선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서버 D램에선 1위를 차지했고 고부가가치 D램이라고 불리는 HBM2E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와 격차가 상당한 1위"라고 설명했다. HBM2E는 초고속·고용량·저전력 특성을 지닌 D램 솔루션의 하나다. 고도의 연산력을 필요로 하는 딥러닝 가속기, 고성능 컴퓨팅 등 차세대 인공지능(AI) 시스템에 최적화된 메모리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낸드플래시 시장의 차세대 제품으로 꼽히는 SSD(데이터저장장치) 분야에서도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2020년 SK하이닉스의 SSD 매출은 23억2500만달러(약 2조6000억원)으로 삼성전자(106억8100만달러, 약 11조9000억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SK하이닉스는 이 사장의 진두지휘 아래 인텔의 낸드사업부 인수를 결정하는 등 격차 좁히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이석희 사장은 SK하이닉스가 2등이 아닌 '1등'을 할 수 있는 제품을 여러 개 만드려고 한다"며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 등이 마무리되면 가시적인 성과가 더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