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 벌어지면 재무구조 좋아도 높은 신용등급 못 받아 [마켓인사이트]

앞으로 노사관계가 나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불매운동이 벌어지면 아무리 사업·재무구조가 우수한 기업이라도 높은 신용등급을 받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 결정 과정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인을 갈수록 적극적으로 반영할 방침이라서다.

지금까지는 ESG 경영 성과와 신용등급을 구분해 평가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ESG가 기업의 사업·재무 상태에 미치는 영향이 빠르게 커지면서, ESG 요인을 공식적으로 신용등급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1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ESG 신용평가 방법론'을 제정했다. 국내 신용평가사 중 ESG가 신용평가 과정에 어떻게 반영되는 지를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명문화한 곳은 한국기업평가가 처음이다.

김정현 한국기업평가 전문위원은 "ESG 관련 법규·정책 변화를 포함한 제반 환경이 빠르게 진화 중"이라며 "ESG 위험요인이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도 점차 커질 수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김 위원은 "ESG 신용평가 방법론 제정을 계기로 신용등급 결정 과정에서 ESG 요인이 미치는 영향을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SG 이슈의 중요도와 신용도 연관성 간 변화에 따라 신용등급 결정 때 ESG 요인이 반영되는 정도를 넓히겠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 산정 때 ESG를 고려하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반영해왔다. 기업의 중장기적인 사업·재무 상태를 점검하고 전망하는데 ESG가 미치는 영향을 부수적인 요인으로 여겨왔다. 아직까지 ESG 신용평가 방법론이 구축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기업들의 ESG 채권 발행이 활발해지면서 각 신용평가사들이 ESG 인증 평가방법론을 앞다퉈 발표했지만 기존 신용평가 방법론과는 별개의 부수 업무 평가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ESG 인증 등급이 기업의 신용등급과 연계되는 것이 아니라 ESG 채권 발행 자금으로 투자하는 사업에 대한 프로젝트의 적합성이나 기업의 ESG 관리 시스템, 외부 공시 등을 독립적인 관점에서 평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ESG 인증 등급과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연관짓는 데 보수적인 입장을 거듭 밝혔다.이에 비해 이번 한국기업평가가 제정한 ESG 신용평가 방법론은 일반적인 회사채 등에 대한 신용평가 과정에서 ESG 요인이 기업의 신용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ESG 인증 평가방법론과 구분된다.

최근 자본시장에선 기업들의 ESG 성과는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기업들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연금공단을 비롯해 이런 비(非)재무적 요소를 투자 의사 결정에 반영하려는 기관투자가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ESG가 기업에 대한 투자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기업의 신용위험을 분석하는데 ESG 요인이 어떻게 고려되는 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김태현 한국기업평가 실장은 "ESG 위험요인 분석이 특정 업종이나 기업의 신용도 측면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며 "ESG 위험요인에 대한 노출도가 높은 기업의 경우 ESG 관련 법규나 정책 변경, 사회적 인식 변화로 인해 미래 수익 기반이나 수익성·현금흐름, 자금조달·유동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중장기적인 신용도 변화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이와 관련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는 "ESG 요인이 신용등급에 명확하게 반영이 되면,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상대적으로 더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이 기사는 06월14일(14:0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