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광주참사 책임 규명도 전에 중대재해법 강화하겠다는 與

총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철거공사 사고는 안전시공 원칙 무시, 불법 재하도급, 감리 부실 등 건설현장의 총체적 난맥상이 빚어낸 인재(人災)란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경찰은 광주광역시 및 동구청, 현대산업개발(시공사)을 압수수색했고, 국가수사본부장도 “철거업체 선정 과정의 비리 등 불법행위를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은 금세 무색해졌다. 재개발공사 업체 선정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문흥식 전 5·18 구속부상자회장이 미국으로 급히 출국한 사실을 경찰이 뒤늦게 확인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문 전 회장은 경찰도 강제송환 추진 방침을 밝힐 만큼 사고원인 규명의 핵심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광주 일대 재개발조합에 상당한 네트워크를 가진 조폭 출신으로 알려져 있고, 이번에도 금품수수 로비 의혹을 받고 있다. 주택정비사업의 철거·명도 등과 관련된 분쟁엔 꼭 지역 조폭이 개입된다는 업계의 상식이 또 한 번 확인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산업개발의 관리책임과는 별도로, 하청기업·재개발조합·브로커·조폭이 한데 얽힌 토착 건설비리에 적지 않은 사고 책임이 있을 것이란 합리적 의심을 충분히 할 수 있다.그런데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책임이 원청 대기업에 있다는 듯, 중대재해처벌법을 건설 및 해체 현장에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6월 국회에서 개정하겠다고 한다. 한술 더 떠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 범위에 대표이사를 명확히 포함시키는 식으로 관련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제계는 과잉금지 원칙 위배, 모호한 안전의무 등 문제가 많고, 건설업처럼 사업장이 전국에 산재한 경우 대표이사가 하청업체 안전관리까지 책임지기 어렵다고 누차 호소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오히려 인명사고 발생 시 시공사는 물론, 발주처·설계·감리 등 공사 참여자 전반에 형사책임을 묻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안도 다시 발의하겠다며 민주당은 의욕을 보인다.

내년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중대재해법의 미비점은 민주당도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할 것”(법사위 여당 간사 백혜련 의원)이라고 약속했다. 시행도 전에 법을 개정한다면 기업의 어려움을 먼저 감안해야 하는데, 거꾸로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광주참사를 기업활동을 더욱 옥죄는 기회로 삼으려는 듯한 여당의 모습은 국정을 책임지는 자세로 보기 어렵다. 참사 원인과 책임을 제대로 규명한 뒤에 제도 보완을 논의하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