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했다" "신뢰 엿봐" 자평에도…바이든-푸틴, 냉랭했던 3시간

'핵 전쟁 반대' 원칙에 서로 공감
핵무기감축 협상·대사 복귀 합의

해킹·인권·우크라이나 놓고 충돌
바이든 "나발니 사망 땐 제재"
푸틴, 의회 난입·흑인 사망 역공

양국관계 극적 개선 없을 듯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처음으로 마주 앉았지만 양국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만한 ‘결정적 한방’은 없었다. 핵전쟁 반대라는 원칙에는 공감했지만 러시아의 해킹 의혹, 러시아 인권, 우크라이나 문제 등 민감한 현안에선 이견을 노출하며 정면충돌했다. 회담이 끝난 뒤 공동 기자회견도 잡지 않은 채 각자 따로 기자회견을 했고, 상대방을 자국에 초청하지도 않았다.

‘새 핵통제 협상 개시’ 합의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이날 중립국 스위스 제네바의 고택 ‘빌라 라 그렁주’에서 3시간가량 만났다. 당초 예상됐던 4~5시간보다 짧은 만남이었다.

가시적인 성과는 두 가지가 꼽힌다. 첫째, 2026년 종료되는 핵 통제조약 ‘뉴 스타트’(New START·신전략무기감축협정)를 대체하기 위한 협상 개시에 합의했다.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핵전쟁으로 승리할 수 없고 절대 싸워서도 안 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전략적 안전성’ 원칙을 밝히면서다. 협상을 언제 시작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둘째, 양국이 각국 주재 대사를 원대 복귀시키기로 했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는 올 3월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살인자’라고 부르고,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탄압을 이유로 러시아를 제재하자 본국으로 철수했다. 이에 맞서 존 설리번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도 모스크바를 떠났다. 두 정상은 이들을 다시 워싱턴DC와 모스크바에 내보내 경색된 외교 관계를 풀기로 했다.

관계 개선엔 한계

하지만 다른 쟁점에선 첨예한 이견을 드러냈다. 러시아의 2016년, 2020년 미 대선 개입 의혹과 미국 최대 송유관 업체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에 대한 해킹 혐의가 대표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대가가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상당한 사이버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알려줬다”고 했다. 러시아에 보복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면서 오히려 “미국에서 러시아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고 역공을 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의 정적으로 수감 중인 나발니에 대해선 “나발니가 옥중에서 사망하면 러시아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제재를 통해 외국인 투자 등을 어렵게 하겠다는 경고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유죄 판결로 당국에 출석 의무가 있는 나발니가 의도적으로 체포됐다”며 탄압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 시위대의 의회 난입 사태, 경찰의 강압적 진압에 따른 흑인 사망 등 미국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대한 군대 배치도 ‘뜨거운 감자’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위협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분쟁 해결 협정을 위반했으며 러시아의 군대 배치는 합법적 군사훈련이라고 맞섰다.회담 분위기와 관련, 바이든 대통령은 “꽤 솔직했다”며 “양국 관계를 크게 개선할 전망이 있다”고 자평했다. 푸틴 대통령도 “신뢰의 섬광이 비쳤다”고 했다. 하지만 AP통신은 “두 정상은 회담 뒤 양국 관계에 대해 ‘재설정’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며 이번 회담을 통한 양국 관계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합의된 것은 많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당초 미·러 당국자 모두 회담 전부터 이번 회담에 대한 기대 수위가 높지 않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권위주의 국가의 ‘스트롱맨(철권통치자)’ 푸틴과의 회담 자체에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미·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푸틴과 만났다. 핵심 동맹과의 결속을 통해 러시아를 압박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