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 논술길잡이] "해석은 겉보기를 통해 파악할 수 없는 심층적 의미에 도달해보는 것"
입력
수정
지면S16
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오늘은 지난 시간에 다뤘던 비교와 비판 유형에 더해 해석하기까지 다룰 수 있는 문제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비교는 공통점과 차이점 등에 대해 분석하고, 그 이유를 고찰해보는 사유입니다. 비판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며, 해석은 현상의 이면에 담겨 있는 의미를 추론하면서 대상이 시사하는 바를 밝혀보는 작업입니다. 특히 ‘해석’은 겉보기를 통해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심층적 의미에 도달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수험생 여러분에게 가장 낯설거나 거리감 있게 다가올 유형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대상을 바탕으로 반복적 훈련을 해야 두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에는 ‘국가’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지문이 들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생글생글 독자 여러분의 답안 응모를 기다립니다. 선정된 답안은 다음 호에 첨삭과 함께 우수답안으로 등재됩니다. 제한시간은 100분이며, 응모는 문서파일로 아래 메일 혹은 카카오톡을 이용하세요. (메일 : imsammail@gmail.com, 카카오톡ID : imsammento, 마감 : 6월 24일)
<문제>1. ‘국가’를 중심으로 [가]와 [나]를 비교하시오. (800자 내외)
2. [다]의 관점에서 [가]의 주장을 비판하시오. (800자 내외)
3. [라]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가 함의하는 바를 말하시오. (800자 내외)
[가] 자연은 인류를 육체적, 정신적 능력에서 평등하게 창조했다. 따라서 남보다 더 강한 육체적 능력을 지닌 사람도 이따금 있고, 두뇌 회전이 남보다 빠른 경우도 더러 있지만, 모든 능력을 종합해보면, 인간들 사이의 능력 차이는 거의 없다. 이런 능력의 평등에서 목적 달성에 대한 희망의 평등이 생긴다. 누구든지 똑같은 수준의 기대와 희망을 품고 목적을 달성하고, 그 목적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한다. 두 사람이 서로 같은 것을 원하지만 그것을 똑같이 누릴 수 없다면 그 둘은 서로 적이 되어 상대편을 무너뜨리거나 굴복시키려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서로 불신하는 상황에서 누구나 닥쳐올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보존하려면 선수를 치는 것 외에는 타당한 방법이 없다. 곧 폭력이나 계략을 써서 되도록 모든 사람을 오랫동안 지배하여 더 이상 자신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무력화하는 일이다. 이런 일은 오로지 자신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범위를 넘어서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허용되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선 정복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안전하기만 하다면 일정한 범위 안에서 만족하려는 사람들조차도 힘을 증대시키지 않고 수비만 해서는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 또한 인간은 자기를 경멸하거나 과소평가하는 낌새가 보일 때, 그럴 마음만 먹으면 자기를 경멸한 사람을 공격하여 해를 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하나의 본보기로 삼음으로써 더 큰 평가를 강제로 얻으려 노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본성 속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세 가지 주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경쟁이며, 두 번째는 불신이고, 세 번째는 공명심이다. 인간은 첫째, 이득을 위해 침략하고, 둘째 안전을 바라서, 셋째, 공명심 때문에 명예 수호를 위한 공격자가 되는 것이다. 이로써 인간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권력이 없이 살아갈 때는 전쟁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전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다. 이러한 혼란상태에서 개인이 평화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개인이 가지는 모든 권리를 국가에 양도하여, 자연 상태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나] 가장 단순하고 자연적인 공동체는 번식을 위한 수컷과 암컷의 결합과 자기 보존을 위한 치자와 피치자의 결합이다. 예컨대 암컷과 수컷은 번식을 위해 결합해야 한다. 타고난 치자와 피치자도 자기 보존을 위해 결합해야 한다. 지성에 의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자는 타고난 치자이자 주인이지만, 남이 계획한 것을 체력으로 실현할 뿐인 자는 피치자요 타고난 노예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결합에서 맨 먼저 생겨난 것이 가정이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이렇듯 가정이며, 날마다 되풀이되는 필요 이상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가정으로 구성된 최초의 공동체가 마을이다. 그리고 여러 부락으로 구성되는 완전한 공동체가 국가이다. 국가는 이미 완전한 자급자족이라는 최고 단계에 도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국가는 단순한 생존을 위해 형성되지만 훌륭한 삶을 위해 존속하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임이 분명하다. 또한 국가는 본성상 가정과 개인에 우선한다. 전체는 필연적으로 부분에 우선하기 때문이다.[다] 애덤 스미스가 발견해낸 인간의 공통적 욕구는 “모든 인간은 보다 잘 살고 싶어 한다”라는 꽤 초보적인 명제다. 두 번째로, 스미스는 인간의 교역 본능을 지적한다. “자기가 가진 것을 남의 것과 바꾸고 싶어 하는 욕구는 모든 인간에게 내재하는 공통된 성향이다”라고 말한다. 스미스는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들을 사회가 억누르기보다 오히려 이용하는 것이 부에 이르는 첩경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이기심은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기에 정부는 이기적 인간들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관용, 인정, 동포애 따위에만 의존하다가는 사람들은 바보가 되고 국가는 빈곤해질 것이다. 시장 경제는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좇아 생산, 교환, 소비, 직업 선택, 계약 등 경제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의 보장이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 이러한 경제적 자유를 기반으로 각 경제 주체들이 가격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좇아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하도록 내버려 둘 때 오히려 사회의 자원 배분이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라] 유학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을 통해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학문으로 성학(聖學)이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유학의 이념을 적극 수용했던 율곡 이이는 수기치인의 도리를 밝힌 《성학집요》(1575)를 지어 이 땅에 유학의 이상 사회가 구현되기를 소망했다. 율곡은 수기를 위한 수양론과 치인을 위한 경세론을 전개하는데, 그 바탕은 만물을 ‘이(理)’와 ‘기(氣)’로 설명하는 이기론이다. 존재론의 측면에서 율곡은 ‘이’를 형체도 없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존재하는 만물의 법칙이자 원리로 보고, ‘기’를 시간적인 선후와 공간적인 시작과 끝을 가지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작동하는 물질적 요소로 본다. 대사상가인 동시에 탁월한 경세가였던 율곡은 많은 논설에서 법제 개혁론을 펼쳤는데, “때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은 법제이며, 시대를 막론하고 변할 수 없는 것이 왕도요, 어진 정치요, 삼강이요, 오륜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법제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율곡의 법제 개혁론은 조종성헌을 변혁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는 성종을 이은 연산군 때 제정된 조세 법령이 여전히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데도 고쳐지지 않는 실정을 지적하는 등 폐단이 있는 여러 법령을 거론한다. 이런 법령들은 고수할 것이 아니라 바꾸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야 오히려 조종성헌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기론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세상을 이루려 했던 율곡 이이의 노력은 수기치인의 실천이라 할 만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18학년도 6월 모의평가 국어 기출지문)
[마] 6·25 전쟁 첫해인 1950년 11월 육군 일병으로 전사한 김모씨(당시 18세)의 유해가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여동생이 국가보훈처에 유족보상금을 청구한 것은 2008년 12월이었다. 하지만 보훈처는 ‘전사 후 5년 이내’로 정해진 청구시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부했다. 전후의 극심한 혼란상을 생각하면 이 ‘청구시한’이란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행정편의적 발상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동생 김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청구시한’의 무효를 인정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보훈처는 법원 판결로 ‘청구시한’이란 방패를 잃게 된 이후 김씨에게 ‘보상금’으로 단돈 5000원을 지급하였다. 1974년 폐지된 옛 군인사망보상금 규정의 보상액 ‘5만환’에다 1962년 화폐개혁 당시 교환비율(구권 10환=신권 1원)을 그대로 적용해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고 ‘5000원’으로 단순 환산한 것이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정부가 6·25참전 국군의 사망보상금을 1인당 400만원 정도로 올린다고 한다. 400만원이란 금액은 수십 년 전 폐기된 군인사망보상금 규정의 ‘5만환’을 금값 상승률과 법정이자를 고려해 환산한 것이라고 한다. 액수만 보면 보상금이 800배가 됐다. 하지만 국군 전사자 ‘예우’는 고사하고 ‘현실화’란 평가도 받기 어려울 것 같다.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고귀한 희생을 돈으로 다 보상할 수 있을까. (연합뉴스, 2011년 10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