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합의 없었다"…'킨텍스 소송' 반전 이끈 바른
입력
수정
지면A31
로펌 vs 로펌킨텍스는 경기 고양시에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 종합 전시장이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와 함께 국내 마이스(MICE: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산업 중심지로 꼽힌다. 제3전시장 건립을 추진 중인 킨텍스는 최근까지 제2전시장 공사 비용과 관련된 소송에 시달렸다. 제2전시장을 지은 건설사들이 킨텍스를 상대로 “추가 공사비를 달라”고 제기한 공사대금 청구소송이다. 청구금액은 300억원. 제2전시장 총공사비(3300억원)의 11분의 1 수준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제2전시장 300억 추가 공사비
1심 완패 후 바른에서 소송 맡아
바른, 공사비 재감정·절차 확인
항목별 검증해 258억으로 낮춰
국가계약법 근거해 적정성 지적
지급 금액 총 88억까지 줄어
킨텍스 제2전시장은 2011년 9월 개장했다. 이후 2013년 4월 시작된 공사 대금 청구소송은 작년 말 대법원 판결까지 7년 넘게 이어졌다. 1심은 킨텍스 측의 완패. 2심부터 킨텍스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바른은 반격에 나섰다. 원고 측이 주장하는 추가 공사 비용에 의문을 제기하고 재감정에 나섰다. 이와 함께 원고 측이 주장하는 ‘설계변경 요구’에 대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서면 합의 절차가 없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그 결과 항소심 재판부는 바른이 대리한 킨텍스 측 손을 상당 부분 들어주는 이변이 일어났다.
건설사들 “추가 공사비 300억원 달라”
제2전시장 시공은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맡았다. 현대건설과 한화건설, 동부건설, 계룡건설 등 총 네 개 건설사다. 이들은 2013년 4월 총 304억원 규모의 공사대금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컨벤션 시설 및 지하층 통로 개설 및 전시장 공조 방식 변경, 준공 시기 단축 등 킨텍스 측이 기본설계와 다른 설계안을 요구해 추가 공사 비용이 발생했다는 주장이었다.킨텍스는 1심에서 법무법인 KCL을, 건설사들은 태평양을 각각 법률 대리인으로 각각 선임해 소송에 나섰다. 1심 결과는 4년 뒤인 2017년 1월에 나왔다. 원고 측의 승소였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 측 주장을 대부분 인용해 킨텍스 측에 “추가 공사대금을 모두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바른, “‘설계 변경’과 ‘설계 오류’ 구분 필요”
300억원은 킨텍스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코로나19 이전 킨텍스의 한 해 매출은 800억원대, 영업이익은 100억원대다. 3년치 영업이익을 모두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킨텍스는 항소심부터 로펌을 바른으로 교체했다.1심에서 완패했기에 ‘뒤집기’엔 부담이 큰 상황. 이에 바른은 공사 비용을 재검증하고, 설계 변경 절차의 적정성 여부를 확인하는 ‘투트랙 전략’을 사용하기로 했다. 소송을 맡은 손흥수 변호사는 “먼저 원고 측이 주장한 건축연면적 증가 등 추가 공사 비용이 과도하게 산정됐다는 점을 지적했다”며 “공사비 재감정을 통해 설계 오류로 인한 공사비와 설계 변경으로 인한 추가 비용을 구분하는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1심 추가 공사비 감정 과정에서 비용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2015년 1월에는 케이터링 주방통로, 부전기실 및 중앙기계실 등 9개 항목에 대해 총 12억원의 추가 비용이 산출됐다. 이후 추가 감정보완 과정에서 항목별 구분 없이 총액으로 339억원에 달하는 감정액이 나왔다. 최초 감정액의 27배에 이르는 수치다. 바른 측은 이런 감정액이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판단했다. 손 변호사는 “항소심에선 재감정신청을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재감정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며 “재감정신청이 받아들여진 뒤에는 항목별로 비용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산출하도록 했고, 그 결과 금액을 258억원까지 낮췄다”고 말했다.
“국가계약법상 서면합의 절차 필수”
이와 함께 바른은 킨텍스 측의 설계 변경 요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따졌다. 국가계약법 중 일괄입찰 등의 공사계약특수조건 24조에 따르면 계약 체결 후 계약 금액을 조정하겠다는 의사를 발주처와 시공사가 서면으로 합의하도록 규정돼 있다. 바른은 이 조항을 근거로 “킨텍스와 시공사가 서면 합의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으므로 설계 변경에 따른 계약 금액을 증액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공사는 건설사가 설계부터 시공까지 도맡아 하는 ‘턴키공사’(일괄수주계약)이기 때문에 설계 오류로 인한 추가 비용을 건설사 측에서 추가 부담하는 게 맞다고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원고 측은 “발주처의 요구 없이 설계 변경과 추가 공사가 이뤄질 수 없다”고 맞섰다.항소심 재판부는 바른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원고 측이 요구한 설계 변경과 그로 인한 건축면적 및 연면적 증가 항목 중에선 케이터링 주방통로, 다목적홀과 전시장 지원시설, 컨벤션 동시통역실 층수 조정 등 일부만 받아들였다. 이로 인한 추가 공사비로 총 8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1심보다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수치다.
이후 대법원이 작년 12월 항소심 판결을 재인용하면서 7년여간 이어진 소송도 마무리됐다. 긴 소송이었다. 막대한 비용 부담을 덜어낸 킨텍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손 변호사는 “관급공사를 저가로 수주한 뒤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건설업계의 이 같은 관행에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박철 변호사는 소송을 총괄했고, 손 변호사는 소송 전략을 수립했다. 박 변호사가 2019년 바른의 경영총괄 대표변호사로 임명된 뒤에는 손 변호사가 소송을 이끌었다. 김다연 변호사는 근거자료 수집을 맡았다. 킨텍스는 지난 1월 바른 측에 감사패를 전달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