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거래로 피해" 과거사사건 당사자, 국가 상대 패소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과거사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당사자가 자신의 사건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를 설득하는 '재판 거래'에 이용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정철민 부장판사)는 과거사 소송을 냈던 A씨가 국가와 김용덕 전 대법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의 아버지는 1946년 발생한 '대구 10월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1949년 경찰에 강제 연행돼 사살됐고, 이에 A씨의 가족들은 2011∼2013년 모두 3차례에 걸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3건의 소송은 1·2심에서 모두 A씨 가족이 승소했으나 대법원에서 판단이 엇갈렸다.

A씨 어머니가 낸 소송은 2014년 5월 항소심의 승소 판결이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됐지만, A씨가 낸 2건의 소송은 2015년 모두 원고 패소 취지로 파기환송됐고 재상고심을 거쳐 A씨의 패소가 확정됐다. 쟁점은 A씨 아버지 사건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는지 여부였다.

소멸시효란 일정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그 권리를 소멸시키는 제도다.

대법원은 A씨 어머니가 낸 소송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으나, A씨가 낸 두 건의 소송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패소로 판단했다. 이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입법을 추진하기 위해 청와대를 설득하려고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는 판결을 선고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판사가 작성한 '현안 관련 말씀자료'에는 A씨가 패소한 사건을 언급하며 '과거사 피해자가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국가로부터 배상받을 수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A씨는 이를 두고 자신의 사건이 재판 거래에 이용된 근거라며 2018년 2억 6천여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고, 김 전 대법관이 재직 당시 어머니 사건과 자신의 사건을 모두 맡았다며 국가와 함께 배상금을 부담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해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한다는 위법·부당한 목적으로 재판하거나 법관이 준수해야 할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권한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권한을 행사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 어머니 사건과 A씨 사건들의 법리는 동일하고 단지 망인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이 있었는지 사실 확정이 달라 결론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A씨 어머니 사건은 항소심에서 '과거사위 진실규명이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A씨 사건에서는 그런 판단이 없었기 때문에 결과가 달라졌을 뿐 부당한 판결로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통상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사실심은 하지 않고 확정된 사실관계에 법규를 어떻게 해석·적용할지 판단하는 법률심만을 담당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