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한풍루'·'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보물 됐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관아 건물·왕실 불교미술품
조선시대 관아(官衙, 관원들이 정무를 보던 곳) 건물인 '무주 한풍루'와 조선 왕실 불교미술품인 '조선 회암사지 사리탑'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은 전북유형문화재 '무주 한풍루'와 경기도유형문화재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22일 밝혔다.

무주부 관아가 사용한 이층 누각인 한풍루(寒風樓)는 남원 광한루(廣寒樓), 전주 한벽당(寒碧堂)과 함께 호남 삼한(三寒)으로 알려진 건축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팔작지붕을 얹었다. 현판은 명필로 이름난 석봉 한호가 썼다고 한다.

조선 중기 문신인 백호 임제(1549∼1587)는 한풍루를 삼한 중 으뜸으로 꼽았고, 이후에도 많은 묵객이 이곳에서 글과 그림을 남기며 풍류를 즐겼다고 전한다.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5세기에 활동한 문신인 성임과 유순이 한풍루를 보고 쓴 시와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을 보면 조선 초기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왜군 방화로 소실됐고, 1599년 복원이 이뤄졌다.

17∼18세기에도 여러 차례 보수 작업이 진행됐다.

일제강점기에는 불교 포교당과 학교 건물 등으로 이용되다가 일본인에게 팔렸고, 조선인에게 다시 소유권이 넘어간 뒤 충북 영동으로 이전되는 비운을 겪었다. 1960년대 무주 주민들이 복구를 추진해 1971년 11월 원위치 인근으로 옮겨졌다.

최근 진행된 목재 분석 조사에서는 16∼17세기 중수할 당시 나무가 확인되기도 했다.

건축학적으로는 구조적 안정감과 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풍루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중층 관영 누각으로 17세기 시기적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며 "진정성 있는 복원이 이뤄졌고, 무주군민의 애환이 담겼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은 조선 전기 석조미술의 정수이자 대표작으로 꼽힌다.

사리탑이 있는 회암사는 고려시대부터 명성이 있는 스님이 머무른 절로, 조선시대에는 왕실 인물이 방문하면서 권위 있는 사찰이 됐다.

절터 북쪽 언덕에 있는 사리탑은 석가모니 몸에서 나온 사리(부처나 고승의 유골)인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탑(佛塔)이다.

조선 전기에 왕실에서 발원(發願, 신에게 소원을 빎)해 조성했으며, 규모가 장대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사리탑은 아래쪽부터 여러 층의 기단부, 동그란 공 모양의 몸돌, 꼭대기 부분인 상륜부로 구성된다.

팔각형 평면을 한 기단부에는 용과 기린, 초화(草花),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인 팔부신장(八部神將) 등이 조각됐다.

전체적인 양식과 조성 기법, 세부 장식이 조선 전기 조선왕릉을 비롯한 왕실 관련 석조물과 비슷하고, 규모나 돌을 다듬고 짜 맞춘 수법에서 당대 최고 장인이 설계하고 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리탑이 보물로 지정되면서 양주 회암사지에 있는 보물은 선각왕사비, 무학대사탑,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을 포함해 4건으로 늘어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