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디에도 없는 종부세 과세 방식"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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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증여·재산세는 법으로 공제액 명시했는데 '상위 2% 과세'라니…종합부동산세를 상위 2%의 세금으로 만들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종부세 개편안이 구체화되면서 ‘정체불명의 세금’이란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세계 어느 국가도 시도한 적 없는 과세 방식에 대한 우려와 함께 소득세법 등 다른 국내 세법 조문에서조차 비슷한 내용을 찾기 힘들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조세법률주의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위헌 논란이 불거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과세대상을 비율로 정한 전례 없고
"헌법의 조세법률주의 위배" 지적
민주당 개편안 '깜깜이 세금' 논란
청와대도 개편안 불안정성 인정
기재부, 개편안 시행방식 고민 중
법에 공제액 써 있는 상속·양도세
한국경제신문이 22일 상속세 및 증여세법, 종합부동산세법, 지방세법, 소득세법 등 국내 대표적 자산 관련 세금의 법 조문을 분석한 결과 공제 대상이나 과세 대상을 이번 종부세 개편안처럼 특정 비율로 언급해 둔 채 시행령에 위임하는 경우는 없었다.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상속과 증여 시 받을 수 있는 각종 공제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상속세는 18조에 과세가액에서 2억원을 기초공제한다고 나와 있다. 20조에는 가족 구성원당 공제받을 수 있는 금액이 명시돼 있으며, 21조에는 상속세의 일괄 공제 조항이 있다. 18~20조에서 계산된 공제금액과 일괄공제액 5억원 중 큰 것을 납세자가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됐다. 가업승계 공제 등 세부적인 사항을 시행령에 규정한 경우는 있지만 과세의 큰 틀은 모두 법에 규정돼 있다.
증여세도 53조에서 배우자는 6억원, 직계존속은 5000만원(미성년자는 2000만원) 등으로 구체적인 공제 금액이 명시돼 있다. 소득세법에는 양도소득세의 기초공제가 250만원으로 명확히 규정돼 있다. 장기보유특별공제는 조세특례제한법을 통해 규정하고 있다. 다만 비과세 처리와 관련한 고가주택의 기준(현재 9억원)은 시행령에 담겨 있다.재산세는 별도의 공제액이 없어 이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 공시가격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해 과세표준을 바로 계산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與 종부세안 조세법률주의 위반”
종부세도 현재는 명확성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세금이다. 종부세법에서 과세표준을 정할 때 9억원이라는 공제 기준이 법에 명시돼 있어서다.종부세법 8조에 따르면 ‘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의 과세표준은 납세의무자별로 주택의 공시가격을 합산한 금액에서 6억원을 공제한 금액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한 금액으로 한다’고 나와 있다. 여기에 ‘1가구 1주택자는 합산 금액에서 3억원을 공제’한다고 돼 있다. 법 조문만 보면 1주택자는 9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하지만 2% 과세가 현실화하면 이 조문은 모호하게 바뀌게 된다. 6억원 공제에 대한 부분은 그대로 남겨두되, 1가구 1주택자 중 상위 2%에 해당하는 금액과 6억원의 차액을 추가로 공제한다는 식의 조문을 두고 구체적인 금액은 시행령에 위임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이 방식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는 헌법 38조와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59조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도 종부세 개편안의 불안정성은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상위 2%안은 정책 안정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어떤 제도든 단점이 있다. 법률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당정 간 세밀한 설계에 있어 더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기재부 세제실에서도 여당의 종부세 개편안을 실제로 어떤 형태로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는 “법의 구성은 지금과 같이 두되 ‘2%’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공제액을 상향하는 방법이 있지만 정치권에서 2%를 법에 명시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위헌 관련 논란에는 “법에서 시행령에 위임하도록 한 것만으로도 조세법률주의를 지켰다는 시각도 있다”며 “지금은 부담을 낮춰주는 방향이기 때문에 당장 위헌 청구가 있지는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