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갈등' 늪에 빠진 대한민국

기업·학교·정치권…
곳곳서 충돌하는 남과 여
“쌤 페미(페미니스트)죠. 와, 페미다!”

중학교 여교사 A씨는 요즘 쉬는 시간이면 일단의 남학생들로부터 이런 놀림을 받는다. 그가 이런 공격을 받게 된 데는 학교에서 성평등 수업을 맡은 게 발단이 됐다. “여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경력 단절을 겪는 것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내용에 남학생들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A교사는 “2030 남성이 많이 가입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영향을 받아 요즘은 10대 중에도 여성 혐오 성향을 보이는 남학생이 상당수”라며 “그 강도가 20대보다 더 세다”고 설명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터넷 공간에 국한됐던 ‘젠더 갈등’은 이제 우리 사회가 그 심각성을 직시하고 해결해야 할 이슈로 떠올랐다. 학교와 기업 등 곳곳에서 노골화해 더 이상 그 파장을 외면하기 힘든 수준이 됐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여기에 휘말린 기업들은 최고경영자(CEO)가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다. 특히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는 B2C 기업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남녀는 각각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정치적으로도 뭉치고 있다. “지난 4·7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되고, ‘0선 중진’ 이준석이 제1야당 대표가 된 데는 ‘문재인 정부의 친여성주의에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이대남(20대 남성)’의 결집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런 기류는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한국경제신문이 정치 스타트업 옥소폴리틱스와 함께 지난 17~19일 실시한 설문조사(747명 대상) 결과 응답자의 86.6%(647명)는 “한국 사회의 남녀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3분의 1(32.3%)은 아예 “젠더 갈등이 앞으로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 내집 마련 등이 어려워져 남녀가 과거보다 더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서로 간의 이해와 양보는 사라지고 있다”며 “그 사회적 비용이 너무 커 이제는 갈등 치유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길성/김남영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