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영의 AI 티키타카 <1> 우리가 인공지능에 기대하는 것

오순영 한컴그룹 전무
오순영 한컴그룹 전무
1967년 체스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2011년 IBM 슈퍼컴 왓슨과의 퀴즈 대결, 장기 대결 등이 이어졌다. 2011년 IBM 슈퍼컴 왓슨과 퀴즈 챔피언 켄 제닝스, 브래드 루터와의 대결은 왓슨의 우승으로 끝났다. 그리고 2016년 3월. 드디어 대한민국 국민의 머릿속에 ‘인공지능’, ‘알파고’를 심어 넣는 빅 이벤트가 등장한다.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과 이세돌 9단의 대국이다. 서울에서 열린 총 5회 대국의 결과는 4승 1패, 인공지능 알파고의 완승이라는 충격의 역사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대결할 수 있는 존재라고 대중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기억되기 시작한 시점이 이때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대회가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치 세계계산대회에서 주판을 주느냐, 계산기를 주느냐, 암산으로 하느냐와 같이 도구의 문제처럼 보인다. 해당 분야 선수들과 인공지능 개발자 즉, 인간과 인간의 대결 같은데 말이다.

언어지능으로 잘 상품화된 인공지능 스피커

2015년 세계적인 온라인 쇼핑몰 업체인 아마존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즉 언어지능을 갖춘 ‘아마존 에코’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기존 애플과 구글처럼 스마트폰에서 음성을 인식하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것이 아니라 스피커에 인공지능을 적용한 것이다. 날씨나 뉴스, 일반 상식에 대한 답변이 가능하고, 집 안의 전등을 켜고 끄는 등의 가전제품 조작도 할 수 있다. 인간을 넘어서는 능력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던 체스, 퀴즈, 바둑, 포커 경기 등 인공지능 대상이 어느덧 거실과 주방의 스피커같은 일상의 사물로까지 빠르게 스며든 것이다.왜 인공지능 중에서도 음성인식, 챗봇과 같은 언어지능 관련 서비스가 먼저 나왔을까. 그건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로 비교적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하이프 사이클이란 기술의 성숙도를 표현하는 도구로 미국의 IT 컨설팅 회사인 가트너가 개발한 도구다. 이 하이프 사이클은 곡선 형태로 보이는데 X축은 시간의 흐름, Y축은 시장의 기대치로, 시간에 따른 시장의 흐름을 잘 볼 수가 있다. 가트너는 다양한 시장을 주제로 이 하이프 사이클을 매년 소개했다. 매년 뜨는 신기술과 지금 한참 장밋빛으로 어쩌면 거품도 살짝 낀, 그런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기술, 그러다가 한 번 꺾이고 사업화에 실패하고, 또 그것을 견디고 살아남은 기술들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여기서 선택된 게 바로 음성인식이었다. 챗봇은 그 중에서도 장밋빛 전망으로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기술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생활 속에서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구현하기에는 인공지능 스피커가 제격이었던 셈이다.

대중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인공지능

바둑을 알파고에 졌고, 조만간 인간의 직업도 모두 로봇에게 빼앗길 거라는 기사들도 많았지만, 인공지능과 연관된 산·학·연들은 무수히도 많이 인공지능의 순기능을 증명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사람이 하기 어려운 많은 일을 인공지능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연구하고, 발표하고, 다양한 서비스로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인공지능이 아주 정확하게 해낼 수 있는 작은 영역보다는 보편적으로 인공지능에 맡겨서 해낼 수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서비스 형태의 방향도 그렇게 설정됐다. 여기에 가장 많이 언급된 문구는 아마도 ‘사람 같은 AI’였고, 관련된 서비스들은 AI 상담사, AI 아나운서, AI 교사 등이었다. 인공지능의 정의가 무엇인가. 인터넷에서 ‘인공지능’이란 단어로 뉴스 검색을 오래된 뉴스 순으로 해 보면, 놀랍게도 1990년도부터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가전, 시스템들이 언급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요즘 시대로 정의를 하자면,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인데 결국은 ‘지능’이란 부분에 집중돼 있다. ‘감성’이란 부분은 흉내를 낼 뿐이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정신’은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정신’이란 부분, 예를 들면 인간의 희생정신은 인공지능으로 구현 가능한 게 아니니 ‘사람 같은’이란 문구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그 서비스 자체에 도덕성과 윤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각각의 인공지능으로 해결하려 했던 효율성이 ‘사람 같은’이란 프레임으로 포장되면서 어찌 보면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와 비즈니스가 위축되거나, 인공지능에 대한 다양한 고민의 기준에 혼돈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인공지능에 대한 윤리의 테두리도 같은 맥락이다.

인공지능을 하는 회사란

요즘 인공지능 관련 회사들을 보면 사실상 인공지능을 하지 않는 회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전통 사업을 하다가 빠른 시대 변화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DX(디지털 전환)를 시도하는 회사도 인공지능 회사라 칭한다. 다양한 빅테크 기업의 AI 자원을 클라우드 상에서 활용해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도 인공지능 회사다. 즉, 인공지능 엔진을 내재화해 갖고 있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에 필요한 데이터 학습이나 정제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모두 자신들은 인공지능 회사라고 분류한다. 이런 부분에서는 학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엔진을 내재화하고 자체 연구개발을 하는 회사만이 인공지능 회사일까. 과거는 그랬을 수 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진 것 같다.
요즘 모든 학교와 기업, 기관들이 다 같이 외치는 구호가 ‘상생’이다. 인공지능 회사냐 아니냐, 엔진을 가지고 있냐 아니냐는 이제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부족한 것은 누군가와 협력하는 것이 요즘 모두의 생각이다.
즉, 예전에 우리가 인터넷과 관련된 기업, 인터넷상에서만 운영하는 기업을 인터넷 기업이라 했지만, 지금은 인터넷 기업이 아닌 회사가 없듯, 인공지능도 이제 조금씩 전기와 같이 잘 사용하는 데 집중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느낌이다. 물론 독보적인 기술을 위해 연구개발하고,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을 선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회사와 학교들은 여전히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아무튼,대부분은 인공지능 회사로 변화하려고 애쓰고 또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보니 요즘 매일 새로 생기는 AI 스타트업이나, 기사로 계속 접하는 인공지능 연관된 기술, 비즈니스 등에 대해서는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이 조금은 건조하고도 담백하게 받아들이게 된다.‘사람을 위한 인공지능’ 다시 고민할 시점

대중에게 인정받기 위한, 잘 보여줄 수 있는 인공지능, 그리고 기술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인공지능을 지금까지 했다면 이제는 정말 사람을 위한 인공지능을 담백하게 고민할 시점이 됐다. 광범위하게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기술 자체, 그리고 기술을 적용한 기능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이젠 정말 꼭 필요한 곳에 인공지능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존에 다양한 운영체제의 단말들은 그래픽 위주의 동작을 했기 때문에 GUI/UX에 관한 연구가 많았다. 이에비해 지금은 Voice에 대한 UX, VUX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음성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들을 어떻게 사용자가 시행착오 없이 쉽게 활용할 것인지에 관한 연구도 많이 하고 있다.
인공지능 서비스를 고도화하기 위해서 인공지능 엔진도 데이터 학습을 하듯, 사람도 인공지능 스피커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질문을 단문으로 짧게 하고, 목소리도 또박또박 명확하게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어찌 보면 인공지능 서비스를 잘 사용해 보려고 사람이 노력하는 부분도 적지 않은 셈이다. 정말 사람을 위한 인공지능이 되려면 어떤 효율성을 제공해야 하고, 어떻게 사용상 소외되는 사람 없이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은 서비스가 중단된 ‘이루다’ 역시 특정 전문분야를 잘 아는 제한적인 기능으로 사람을 돕는 챗봇이 아닌 대중에게 ‘사람 같은’ AI 친구를 만들려다 보니 ‘사람 같은’대응 자체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학습데이터 관련 기본적인 윤리적 테두리를 고려하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학습하고 편향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결국은 사회적인 이슈의 중심에 있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다. 물론 이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구현 전략이나 인공지능 윤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다시 시작되기도 했으니 순기능도 없지는 않았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가 인공지능에 기대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정의와 분야와 범위는 상당히 복잡하게 혼재돼 있다. 인공지능 회사들도 분야, 기술, 규모, 특징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기에 지금 막 언급되고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나 인공지능 윤리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바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섣부르다는 생각이다. 그보다는 먼저 정의하고 정돈할 사항이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인공지능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사람의 형태든, 아니든 분명한 건 기업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이윤 창출이나 비용 절감 등 어떤 효율성을 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일반 대중들은 각자의 삶에서 불편한 무엇인가를 인공지능이 좀 더 편리하게 해 줄 것을 기대할 것이다. 그것이 꼭 ‘사람 같은’ 인공지능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을 ‘사람 같은’무언가로 정의하고 규칙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에 대해 인공지능 관련 학계, 산업계가 일종의 답답함이나 불편함을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인공지능 분야와 연관된 주체들을 일차적으로 분류하고, 각각에 맞는 점검표와 윤리 교육 등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을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현재 인공지능 비즈니스들은 대부분 비슷한 기술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기술을 어떻게 다양하게 적용해 볼 것인지, 그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공유하는 게 가장 먼저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