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만의 무공훈장]⑥ 훈장은 받았지만…예우와 보상은 못 받은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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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사자 유해 찾으면 1천만원 지급하지만, 무공훈장은 보상도 없어
70년 만에 뒤늦게 훈장 주면서도, 그간 못 받은 무공영예수당엔 '함구'
2019년 조사단 출범도 너무 늦어…"조사 기간 연장해 수훈자 최대한 많이 찾아야"
70년만의 무공훈장 / 연합뉴스 (Yonhapnews) 탐사보도팀 =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경제적 풍요는 6·25 전쟁 참전용사 100만 명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
특히 혁혁한 무공을 세워 무공훈장 수훈자가 된 17만9천331명의 참전용사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합뉴스 탐사보도팀은 이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과연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응분의 보상을 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영웅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보상을 우리가 제공하는 데 너무 미진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년이 가까워지는 시점이지만, 이제라도 이들에 대한 보상과 혜택 제공에 있어 아낌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았다.
그것이 전장에 몸을 던져 나라를 지키고자 한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의 의미를 되살릴 길이라는 제언이었다. ◇ 무공훈장 보훈제도는 있지만…보상도, 형평성도, 예우도 부족했다
훈장 및 포장 등의 서훈 기준을 명시한 상훈법에 따르면 무공훈장은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서 전투에 참가하거나 접적(接敵) 지역에서 적의 공격에 대응하는 등 전투에 준하는 직무수행으로 뚜렷한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한다.
대한민국 최고 등급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은 '생명의 위험을 불구하고 임무를 수행하여 비상한 무공을 세워 타 장병의 귀감이 된 사람'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태극무공훈장의 무공영예수당은 월 42만원에 불과하다. 미군 최고의 영예인 명예훈장 수당 1천406달러(약 160만원)의 4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한국전쟁 당시 수여했어야 할 훈장을 7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수여하지만, 지금껏 지급하지 못한 무공영예수당에 대한 보상은 없다.
매월 42만원을 70년간 받았다면 3억5천여만원에 달한다.
명백히 국가의 잘못으로 지급하지 못한 수당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함구'할 뿐이다.
지난 2019년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이 창설된 후 2년 동안 조사단은 1만1천여 명의 무공훈장 수훈자 또는 그 유족을 찾아냈다.
수훈자 대부분이 80대 후반에서 90대의 고령인만큼, 이들이 무공영예수당을 받을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훈자의 사망으로 유족이 대신 훈장을 받게 되면 수당은 전혀 지급되지 않는다.
3년 전 무공훈장을 받은 한 수훈자 유족은 수십 년에 걸친 무공영예수당의 미지급, 그리고 무공훈장 수훈자의 가족이라는 긍지를 누리지 못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물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은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당시의 낙후된 인적정보 관리체계에 비춰보면 국가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 등에 관한 법률'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법은 한국전쟁 전사자의 신원 확인을 위해 제공한 DNA 시료로 전사자 유해를 찾으면 시료 제공자에게 최대 1천만원을 보상하도록 했다.
무공훈장 수훈자 유족에게 일말의 보상도 없는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모든 것을 재정적인 문제로 환산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이 무공훈장 수훈자들의 헌신과 희생 위에 성장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유족에게 현실적인 위로와 합당한 예우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왜 이제서야 찾아줬나"…정전 66년 후 조사단 꾸려졌다
만약 정부가 그동안 무공훈장 수훈자를 찾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면 이 같은 비판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이 꾸려진 것은 2019년 7월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으로부터는 69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으로부터는 66년의 세월이 흐른 뒤이다.
물론 그동안 무공훈장 수훈자에게 훈장을 찾아주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군은 정전협정 체결 2년 뒤인 1955년부터 군에 남아있던 현역 장병 중 무공훈장 대상자를 찾아내 훈장을 수여하는 사업을 벌였다.
1961년부터는 전역 장병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국가 예산이나 근거 법규 없이 군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개인정보 이용을 위한 법적 근거도 없어 시간이 흐를수록 무공훈장 수훈자를 찾는 일이 어려워졌다.
사업에 투입한 인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는 전군에서 단 2명만이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에 투입됐다.
당시 국방부는 무공훈장을 모두 찾아주기까지 30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고 한다.
인력·예산·제도 그 무엇 하나 없었기에 사업이 진척될 리 없었다.
그사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청춘의 나이에 참전했던 대부분의 참전용사는 90살 안팎의 노인이 됐다.
많은 이들이 세월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둘째 큰아버지의 무공훈장을 전달받은 권오희(48) 씨는 "노고를 인정해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진 뒤 70년이나 지났는데 왜 더 빨리 이런 활동을 하지 않았느냐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다수의 무공훈장 수훈자를 찾는 데 기여한 전북 고창군 신림면 정재진 민원행정팀장은 "이 사업을 너무 늦게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지금은 수훈자들이 대부분 돌아가셔서 안 계시는데, 20년 전에 시작했다면 많은 수훈자가 영광을 찾고 보람을 느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 무공훈장은 고맙지만…"훈장 왜 받는지 공적도 안 알려줘"
연합뉴스 탐사보도팀은 취재 과정에서 또 하나의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무공훈장 수훈자나 유족들이 무공훈장을 왜 받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훈장을 수령한다는 점이다.
연합뉴스가 취재한 무공훈장 수훈자와 유족 10명 중 1명을 제외하고는 무공훈장을 받는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영문도 모르고 훈장을 받는 셈이다.
형과 함께 참전했다가 혼자 살아 돌아온 안택봉(89) 씨는 "지난해 형님의 무공훈장까지 함께 받았는데 형은 돌아가셔서 무공훈장을 받은 이유를 전혀 모르고, 저도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전투로 인해 받았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는 수훈 사유와 전투 당시의 상황을 수훈자와 그 가족에게 상세히 알려주는 미국과 뚜렷이 대조된다.
미군은 수훈자와 그 가족의 긍지를 드높여줄 공적(功績) 조사에 심혈을 기울인다.
물론 전쟁 중에 기록이 유실되거나 누락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육군군사연구소, 육군기록정보관리단 등 여러 기관에는 상당 분량의 전투상보(전투의 구체적인 형편, 상태에 대한 상세 보고)와 개인정보기록물 등이 보관돼 있다.
이들은 어떤 전투 상황에서 누가 어떤 공훈을 세워 훈장을 받는지, 전쟁 중 장병 개개인의 인사와 행정 처리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을 알게 해주는 자료들이다.
문제는 이런 자료들의 전산화가 더디다는 점이다.
전투상보의 경우 이제 막 한문으로 쓰인 자료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이 끝나 전산화 작업을 하고 있다.
개인정보기록물은 2012년부터 데이터베이스(DB)화를 시작했지만, 이제야 절반을 조금 넘는 분량의 전산화가 완료됐다.
이로 인해 불과 20명으로 이뤄진 조사단 규모로는 일일이 관련 기록까지 찾을 수 없어, 수훈자나 그 유족에게 수훈 사유를 알려주기 힘든 상황이다. ◇ 아직도 수훈자 4명 중 1명 못 찾아…"조사 기간 연장해 수훈자 최대한 많이 찾아야"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조사단은 약 2년의 활동 기간에 무공훈장을 전달받지 못한 5만7천여 명 중 1만1천여 명의 수훈자와 유족에게 훈장을 전달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내년 말이 되면 이마저도 할 수 없다.
'6·25전쟁 무공훈장 수여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한 3년의 조사단 활동 기간이 끝나 조사단이 해체되기 때문이다.
4만6천여 명의 무공훈장 수훈자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사단 해체는 아직 이르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체 무공훈장 수훈자(17만9천331명) 가운데 4분의 1에 달하는 수훈자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조사단이 해체된다면, 이는 참전용사에 대한 또 다른 결례라고 할 수 있다.
안규백 의원은 "아직 (조사단 활동 연장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고 있지 않지만, 참전 유공자들이 고령이고 국가를 위한 이들의 희생을 예우하기 위한 사업인 만큼 법 개정을 통해 활동기간을 연장하고 예산 지원도 늘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재진 팀장은 "내년까지 남은 분들을 모두 찾아드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사 기간을 연장해야 할 것이며, 짧은 시간 내에 마치려면 충분한 예산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공훈장 수훈자 찾기 사업이 더욱 진전을 이루려면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행정관서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을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업무가 과중해진 일선 지자체가 조사단 활동에 잘 협조하지 않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조사단 1팀장 최재원 소령은 "지난해 우리 팀은 총 32곳을 방문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12곳을 가지 못했다"며 "한시적인 조직인 만큼 시간과 싸움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지자체 공무원들은 이 사업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데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애로사항이 있다"고 했다.
조사단장인 신기진 대령은 "많은 행정관서에서 협조해주고 있지만, 대도시로 갈수록 민원 업무가 많기 때문에 비협조적으로 되는 문제가 있다"며 "저희 자료와 제적 자료가 상이한 경우 등이 많으므로, 참전 유공자를 찾기 위해서는 조사단과 일선 지자체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탐사보도팀: 권선미·윤우성 기자, 정유민 인턴기자]
/연합뉴스
70년 만에 뒤늦게 훈장 주면서도, 그간 못 받은 무공영예수당엔 '함구'
2019년 조사단 출범도 너무 늦어…"조사 기간 연장해 수훈자 최대한 많이 찾아야"
70년만의 무공훈장 / 연합뉴스 (Yonhapnews) 탐사보도팀 =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경제적 풍요는 6·25 전쟁 참전용사 100만 명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
특히 혁혁한 무공을 세워 무공훈장 수훈자가 된 17만9천331명의 참전용사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합뉴스 탐사보도팀은 이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과연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응분의 보상을 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영웅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보상을 우리가 제공하는 데 너무 미진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년이 가까워지는 시점이지만, 이제라도 이들에 대한 보상과 혜택 제공에 있어 아낌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았다.
그것이 전장에 몸을 던져 나라를 지키고자 한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의 의미를 되살릴 길이라는 제언이었다. ◇ 무공훈장 보훈제도는 있지만…보상도, 형평성도, 예우도 부족했다
훈장 및 포장 등의 서훈 기준을 명시한 상훈법에 따르면 무공훈장은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서 전투에 참가하거나 접적(接敵) 지역에서 적의 공격에 대응하는 등 전투에 준하는 직무수행으로 뚜렷한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한다.
대한민국 최고 등급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은 '생명의 위험을 불구하고 임무를 수행하여 비상한 무공을 세워 타 장병의 귀감이 된 사람'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태극무공훈장의 무공영예수당은 월 42만원에 불과하다. 미군 최고의 영예인 명예훈장 수당 1천406달러(약 160만원)의 4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한국전쟁 당시 수여했어야 할 훈장을 7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수여하지만, 지금껏 지급하지 못한 무공영예수당에 대한 보상은 없다.
매월 42만원을 70년간 받았다면 3억5천여만원에 달한다.
명백히 국가의 잘못으로 지급하지 못한 수당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함구'할 뿐이다.
지난 2019년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이 창설된 후 2년 동안 조사단은 1만1천여 명의 무공훈장 수훈자 또는 그 유족을 찾아냈다.
수훈자 대부분이 80대 후반에서 90대의 고령인만큼, 이들이 무공영예수당을 받을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훈자의 사망으로 유족이 대신 훈장을 받게 되면 수당은 전혀 지급되지 않는다.
3년 전 무공훈장을 받은 한 수훈자 유족은 수십 년에 걸친 무공영예수당의 미지급, 그리고 무공훈장 수훈자의 가족이라는 긍지를 누리지 못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물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은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당시의 낙후된 인적정보 관리체계에 비춰보면 국가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 등에 관한 법률'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법은 한국전쟁 전사자의 신원 확인을 위해 제공한 DNA 시료로 전사자 유해를 찾으면 시료 제공자에게 최대 1천만원을 보상하도록 했다.
무공훈장 수훈자 유족에게 일말의 보상도 없는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모든 것을 재정적인 문제로 환산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이 무공훈장 수훈자들의 헌신과 희생 위에 성장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유족에게 현실적인 위로와 합당한 예우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왜 이제서야 찾아줬나"…정전 66년 후 조사단 꾸려졌다
만약 정부가 그동안 무공훈장 수훈자를 찾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면 이 같은 비판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이 꾸려진 것은 2019년 7월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으로부터는 69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으로부터는 66년의 세월이 흐른 뒤이다.
물론 그동안 무공훈장 수훈자에게 훈장을 찾아주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군은 정전협정 체결 2년 뒤인 1955년부터 군에 남아있던 현역 장병 중 무공훈장 대상자를 찾아내 훈장을 수여하는 사업을 벌였다.
1961년부터는 전역 장병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국가 예산이나 근거 법규 없이 군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개인정보 이용을 위한 법적 근거도 없어 시간이 흐를수록 무공훈장 수훈자를 찾는 일이 어려워졌다.
사업에 투입한 인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는 전군에서 단 2명만이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에 투입됐다.
당시 국방부는 무공훈장을 모두 찾아주기까지 30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고 한다.
인력·예산·제도 그 무엇 하나 없었기에 사업이 진척될 리 없었다.
그사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청춘의 나이에 참전했던 대부분의 참전용사는 90살 안팎의 노인이 됐다.
많은 이들이 세월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둘째 큰아버지의 무공훈장을 전달받은 권오희(48) 씨는 "노고를 인정해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진 뒤 70년이나 지났는데 왜 더 빨리 이런 활동을 하지 않았느냐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다수의 무공훈장 수훈자를 찾는 데 기여한 전북 고창군 신림면 정재진 민원행정팀장은 "이 사업을 너무 늦게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지금은 수훈자들이 대부분 돌아가셔서 안 계시는데, 20년 전에 시작했다면 많은 수훈자가 영광을 찾고 보람을 느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 무공훈장은 고맙지만…"훈장 왜 받는지 공적도 안 알려줘"
연합뉴스 탐사보도팀은 취재 과정에서 또 하나의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무공훈장 수훈자나 유족들이 무공훈장을 왜 받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훈장을 수령한다는 점이다.
연합뉴스가 취재한 무공훈장 수훈자와 유족 10명 중 1명을 제외하고는 무공훈장을 받는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영문도 모르고 훈장을 받는 셈이다.
형과 함께 참전했다가 혼자 살아 돌아온 안택봉(89) 씨는 "지난해 형님의 무공훈장까지 함께 받았는데 형은 돌아가셔서 무공훈장을 받은 이유를 전혀 모르고, 저도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전투로 인해 받았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는 수훈 사유와 전투 당시의 상황을 수훈자와 그 가족에게 상세히 알려주는 미국과 뚜렷이 대조된다.
미군은 수훈자와 그 가족의 긍지를 드높여줄 공적(功績) 조사에 심혈을 기울인다.
물론 전쟁 중에 기록이 유실되거나 누락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육군군사연구소, 육군기록정보관리단 등 여러 기관에는 상당 분량의 전투상보(전투의 구체적인 형편, 상태에 대한 상세 보고)와 개인정보기록물 등이 보관돼 있다.
이들은 어떤 전투 상황에서 누가 어떤 공훈을 세워 훈장을 받는지, 전쟁 중 장병 개개인의 인사와 행정 처리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을 알게 해주는 자료들이다.
문제는 이런 자료들의 전산화가 더디다는 점이다.
전투상보의 경우 이제 막 한문으로 쓰인 자료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이 끝나 전산화 작업을 하고 있다.
개인정보기록물은 2012년부터 데이터베이스(DB)화를 시작했지만, 이제야 절반을 조금 넘는 분량의 전산화가 완료됐다.
이로 인해 불과 20명으로 이뤄진 조사단 규모로는 일일이 관련 기록까지 찾을 수 없어, 수훈자나 그 유족에게 수훈 사유를 알려주기 힘든 상황이다. ◇ 아직도 수훈자 4명 중 1명 못 찾아…"조사 기간 연장해 수훈자 최대한 많이 찾아야"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조사단은 약 2년의 활동 기간에 무공훈장을 전달받지 못한 5만7천여 명 중 1만1천여 명의 수훈자와 유족에게 훈장을 전달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내년 말이 되면 이마저도 할 수 없다.
'6·25전쟁 무공훈장 수여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한 3년의 조사단 활동 기간이 끝나 조사단이 해체되기 때문이다.
4만6천여 명의 무공훈장 수훈자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사단 해체는 아직 이르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체 무공훈장 수훈자(17만9천331명) 가운데 4분의 1에 달하는 수훈자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조사단이 해체된다면, 이는 참전용사에 대한 또 다른 결례라고 할 수 있다.
안규백 의원은 "아직 (조사단 활동 연장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고 있지 않지만, 참전 유공자들이 고령이고 국가를 위한 이들의 희생을 예우하기 위한 사업인 만큼 법 개정을 통해 활동기간을 연장하고 예산 지원도 늘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재진 팀장은 "내년까지 남은 분들을 모두 찾아드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사 기간을 연장해야 할 것이며, 짧은 시간 내에 마치려면 충분한 예산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공훈장 수훈자 찾기 사업이 더욱 진전을 이루려면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행정관서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을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업무가 과중해진 일선 지자체가 조사단 활동에 잘 협조하지 않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조사단 1팀장 최재원 소령은 "지난해 우리 팀은 총 32곳을 방문하려고 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12곳을 가지 못했다"며 "한시적인 조직인 만큼 시간과 싸움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지자체 공무원들은 이 사업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데다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애로사항이 있다"고 했다.
조사단장인 신기진 대령은 "많은 행정관서에서 협조해주고 있지만, 대도시로 갈수록 민원 업무가 많기 때문에 비협조적으로 되는 문제가 있다"며 "저희 자료와 제적 자료가 상이한 경우 등이 많으므로, 참전 유공자를 찾기 위해서는 조사단과 일선 지자체의 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탐사보도팀: 권선미·윤우성 기자, 정유민 인턴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