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조선전기 모습·출토 유물 원산지, 우선 연구해야"

복원 30주년 맞아 흥복전서 기념식·학술대회 개최
1991년부터 복원이 진행 중인 경복궁 연구의 핵심 과제는 조선시대 전기 모습 추정과 출토 유물의 원산지 확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최인화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24일 "경복궁 발굴조사 과정에서 고종 중건 이전의 유구(遺構·건물의 자취)가 다수 나왔는데, 과학적 방법으로 만들어진 시기를 알아내고 임진왜란 이전 시기 궁의 모습을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제일의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인 경복궁은 1395년 창건됐고,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됐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많은 건물이 훼손돼 옛 모습을 잃었다. 정부가 30년 전 시작한 복원 작업을 통해 36동에 불과하던 경복궁 건물은 146동으로 늘었다.

고종 시기 경복궁 모습으로 되돌리는 복원은 2045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경복궁 복원 30주년을 맞아 이날 오후 흥복전에서 기념식과 학술대회를 연다. 최 연구관은 학술대회 발표문에서 "발굴조사 유구는 고지도나 사료와 같은 문헌 기록과 일치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며 "건축학·미술사학·역사학 등 여러 학문을 활용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발굴조사를 통해 많은 석재와 유물이 발견됐는데, 당시 물자 이동·수급·폐기 등을 알려주는 단서"라며 "19세기 이후 유구에서는 중국이나 일본 도자기도 있는데, 어떻게 궁궐 기초에 쓸려 들어갔는지 밝히면 도자사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왕희 전 문화재청 수리기술과장은 "경복궁은 조선 초기부터 수난을 겪었다"며 "궁궐 문화재의 진수인 경복궁 복원은 궁궐의 기본 법식을 되찾는다는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전 과장은 경복궁 복원에 얽힌 다양한 뒷이야기도 소개했다.

그는 2000년 경복궁에서 오수 때문에 악취가 발생했는데, 오수가 나오는 곳이 경복궁 북쪽 청와대 식당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박 전 과장은 "당시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를 경회루에서 치르려는 계획이 있었다"며 "결국 경복궁 밖으로 관을 설치해 오수 유입을 차단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2000년 7월 1일에는 엄청난 비가 내렸는데, 마침 흥례문 앞 땅을 파내 큰 웅덩이가 있었다"며 "웅덩이가 저수지처럼 변했는데, 그동안 막혀 있던 지름 30㎝인 관이 뚫려 물이 빠져나갔다"고 했다.

그에 앞서 1998년에는 흥례문 앞쪽에 길이 191m, 폭 2.4m, 높이 3.75m인 지하 통로가 설치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기 전 현재 국립고궁박물관 자리에 있을 때 수장고를 오가기 위해 땅 밑으로 길을 낸 것이다. 박 전 과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제3공화국 무렵 국가 비상시 사용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흥례문 동쪽 지하 시설을 수장고로 활용했고, 찬반 논란에도 지하 통로를 뚫었다"며 "용산 이전이 결정된 상황에서 왜 무리하게 지하 통로를 설치했는지 의문스럽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