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독서 큐레이션] 대중이 바꾸는 세상

현대사회에서 대중(大衆)이 지니는 의미는 절대 작지 않다. 하지만 대중은 그 자체만으로 역량을 충분하게 발휘하지 못한다. 이념과 종교, 기술과 접목됐을 때 사회에 제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아갈 방향이 달라지고, 역사의 평가도 갈린다. 대중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살피고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책 세 권이 새로 나왔다.

《미슐레의 민중》(쥘 미슐레 지음, 교유서가)은 역사와 혁명의 주체로서 ‘대중’ ‘민중’을 처음으로 분석한 19세기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의 주저를 번역한 것이다. 보편적 인권이라는 프랑스 혁명의 신념을 복원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농민과 노동자, 상인, 하급 공무원 등 사회의 기층을 구성하는 이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200년 전 프랑스 대중의 삶을 파헤친 책이지만 삶의 양태는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층민의 삶은 누추하기 그지없다. 땅에 얽혀 땅을 떠날 수 없는 농민들은 누더기를 입고 굶는 상황에서도 한 뼘의 땅뙈기를 사는 데만 골몰한다. 그러면서 부자를 증오하고, 세상을 저주한다. 노동자의 삶도 그다지 나을 게 없다. 기계가 막 도입되던 시기, 도시로 노동자들이 몰릴수록 임금은 낮아지고 삶은 더 비참해졌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역동성이 대중과 결합하면서 세상이 바뀌었다. 노동자들이 싸게 만든 상품을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되면서 민주주의를 배태했다. 사회변동도 대중의 역동성을 키웠다. 목수가 공장주가 되고, 일용 노동자가 지주가 되면서 민주주의가 생활 속으로 성큼 다가섰다. 대중이 오늘의 세계를 낳았다.
《이슬람과 민주주의》(김형준 지음, 눌민)는 10여 년간 인도네시아 이슬람 단체를 현지 조사한 문화인류학자가 상극처럼 여겨졌던 이슬람과 대중 민주주의의 접목 가능성을 살펴본 작업이다.

저자가 접촉한 무함마디야라는 종교단체는 100년이 넘는 역사, 3000만 명의 지지자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수만 개의 교육, 의료, 복지, 경제기관을 운영하는 큰 조직이다. 하지만 조직 운영은 ‘민주적’이다. 5년에 한 번 선거를 통해 다수의 지도자를 선출하고, 집단지도체제로 조직을 운영한다. 단체의 의사결정은 협의와 합의에 기반을 둔다. 격식을 따지지 않고 평등하고 실용적인 면을 중시한다.정교분리가 안 됐고, 1인 지도체제를 강조한 탓에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힘들다고 알려진 이슬람 사회에 대한 편견이 무색해지는 모습이다. 저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무슬림의 태도는 고정돼 있지 않다”고 일갈한다. 대중은 결코 종교와 이념에 흔들리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데모테크가 온다》(김경록 지음, 흐름출판)는 증권업계의 유명 투자전문가가 인구구조 변화가 불러올 ‘부의 이동’을 전망한 책이다. 인구구조 변화로 “한국은 식어가고, 세계는 늙어간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금리와 소득, 인구의 성장이 멈추는 ‘제로 모멘텀’ 사회가 각국에서 시차를 두고 진행된다. 이런 변화를 맞아 세상을 바꾸는 혁신은 고령화와 궤를 같이해야만 한다. 인구와 기술이 만나는 ‘데모테크(Demo Tech)’가 부상할 수밖에 없다. 바이오, 헬스케어, 자율주행, 로봇과 가상현실 관련 제품의 최대 수요자는 고령층이 될 수밖에 없는 만큼 고령자 시장은 유망시장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세계가 늙어가는 것은 대중이 나이 들기 때문이다. 대중을 바라보는 시선이 언제나 똑같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