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쿤과 월릭 사이…파월 의장은 어디로?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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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이 요즘 좀 헷갈리는 게 사실이다. 2023년까지 지금의 제로금리 수준을 유지하겠다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갑자기 시장에 잔뜩 겁을 주고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지난 16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 직후 2023년 두 차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그랬던 파월 의장이 22일엔 “인플레이션이 시작될 가능성을 두려워해 금리를 선제 인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살짝 다른 뉘앙스를 비쳤다. 이번엔 시장의 과도한 조기 긴축 공포를 경계하고 나선 것이다.
코로나 위기를 넘어서고 있는 경기회복세가 기대 이상으로 강력하고, 그 와중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점증하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문제는 그 속도와 강도이고, 어느 정도로 인플레와 싸울지 정책 스탠스를 정하는 일이다. 이를 둘러싼 학계 논쟁은 길게 보면 벌써 수년째 이어지고 있고, Fed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그 고민은 한국은행도 마찬가지인데, 일단 기준금리 인상의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24일 드디어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연내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이와 관련해 지난 24일자 한국경제신문 1면 톱에 걸린 '슈퍼추경·초저금리…고압경제 후폭풍이 무섭다'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오랜만에 등장한 고압경제(high pressure economy)란 용어가 최근의 논쟁을 아주 간단히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결국 그 고압(高壓)을 언제까지 유지하느냐, 어느 시점에 얼마나 압력을 낮출 거냐와 관련된 것이란 얘기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과거 Fed 의장이던 2016년 언급해 화제가 됐던 이 용어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또 강조되고, 실행돼 왔던 셈이다.
고압경제란 중앙은행이 시장에 충분한 양의 돈을 풀고, 정부도 확장적 재정정책을 동시에 추진해 성장과 고용, 적정 수준의 물가상승이란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정책 발상이다. '오쿤의 법칙'(실업과 국민총생산의 관계를 설명)으로 유명한 미국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1973년 논문에서 고압경제는 노동시장 약자들의 취업을 도와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주장하면서 처음 인용됐다. 그 주창자들이 아서 오쿤, 헨리 월릭 같은 예일대 교수들이어서 이런 정책처방을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은 경기침체와 같은 단기적인 과제 해결엔 이같은 고압경제 처방을 내놓지만, 성장과 고용 같은 장기과제는 신고전파 이론을 채용한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케인지언들과는 구별된다.
고압경제가 있다면 저압경제도 있다. 고압경제는 고용을 상대적으로 중시하고 저압경제는 인플레이션을 더 중시한다. 헨리 월릭은 1956년대 당시 거시경제학자를 이렇게 고압 그룹과 저압 그룹으로 나눠 부르기도 했다. 이런 고압경제가 50년만에 옐런과 Fed에 영향을 준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Fed는 2019년 논문에서 '오쿤의 분석은 지금도 타당하다'고 했다. 브루킹스연구소도 같은 해 '오쿤이 다시 돌아왔다'는 논문을 내기도 했다.특히 오쿤과 고압경제에 주목할 필요성은 파월의 최근 발언들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예산정책우선센터(CBPP)의 2015년 보고서를 일단 들여다보자. '고압경제는 평균 이상의 강력한 경제성장과 낮은 실업률을 가져온다. 고압경제가 아니라면 만성적 실업에 빠질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생산량을 경기침체 이전 수준으로 되돌린다. 고압경제는 인플레이션을 Fed 목표 수준 이상으로 밀어올릴 수 있지만, 이런 오버슈팅(일시적 균형 이탈)은 대단치 않고 일시적인 것이다. 고용과 생산 측면의 이익에 비하면 이런 부작용은 대단치 않을 수 있다.'
파월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지난 22일 미 하원 코로나 관련 청문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크고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면서도 “인플레의 상당 부분 혹은 오버슈팅된 부분 모두가 중고차나 트럭(가격 상승) 등 경제 재개에 따라 직접적으로 영향받는 분야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이어 “상승이 멈추고 결과적으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라고 했다. 고압경제의 부작용이라 할 인플레가 오버슈팅된 정도라면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란 얘기로 해석할만 하다.
재밌는 점은 고압경제 주창자도 언제든, 시장상황에 따라 논지를 달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헨리 월릭이 대표적이다. 그는 1974년 Fed 이사로 취임하자, 인플레 억제를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오쿤의 고압경제론에 대해 인플레 리스크를 과소평가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높은 인플레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조금 높은 수준의 실업을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럴 때 진정한 고용안정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옐런과 파월을 비교해보면 옐런에게선 오쿤의 그림자가 강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파월 의장은 어쨌든 '인플레 파이터'가 숙명인 때문인지 간단치만은 않다. 어떨 땐 오쿤, 또 어떨 땐 월릭의 모습이 문득문득 비친다. 50년만의 인플레 시대 도래를 앞둔 상황에서 '세계 경제 대통령'의 고민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한편으론 노련한 시장 대응이기도 할 것이다.
장규호 논설위원
코로나 위기를 넘어서고 있는 경기회복세가 기대 이상으로 강력하고, 그 와중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점증하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문제는 그 속도와 강도이고, 어느 정도로 인플레와 싸울지 정책 스탠스를 정하는 일이다. 이를 둘러싼 학계 논쟁은 길게 보면 벌써 수년째 이어지고 있고, Fed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그 고민은 한국은행도 마찬가지인데, 일단 기준금리 인상의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24일 드디어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연내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이와 관련해 지난 24일자 한국경제신문 1면 톱에 걸린 '슈퍼추경·초저금리…고압경제 후폭풍이 무섭다'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오랜만에 등장한 고압경제(high pressure economy)란 용어가 최근의 논쟁을 아주 간단히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결국 그 고압(高壓)을 언제까지 유지하느냐, 어느 시점에 얼마나 압력을 낮출 거냐와 관련된 것이란 얘기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과거 Fed 의장이던 2016년 언급해 화제가 됐던 이 용어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또 강조되고, 실행돼 왔던 셈이다.
고압경제란 중앙은행이 시장에 충분한 양의 돈을 풀고, 정부도 확장적 재정정책을 동시에 추진해 성장과 고용, 적정 수준의 물가상승이란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정책 발상이다. '오쿤의 법칙'(실업과 국민총생산의 관계를 설명)으로 유명한 미국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1973년 논문에서 고압경제는 노동시장 약자들의 취업을 도와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주장하면서 처음 인용됐다. 그 주창자들이 아서 오쿤, 헨리 월릭 같은 예일대 교수들이어서 이런 정책처방을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은 경기침체와 같은 단기적인 과제 해결엔 이같은 고압경제 처방을 내놓지만, 성장과 고용 같은 장기과제는 신고전파 이론을 채용한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케인지언들과는 구별된다.
고압경제가 있다면 저압경제도 있다. 고압경제는 고용을 상대적으로 중시하고 저압경제는 인플레이션을 더 중시한다. 헨리 월릭은 1956년대 당시 거시경제학자를 이렇게 고압 그룹과 저압 그룹으로 나눠 부르기도 했다. 이런 고압경제가 50년만에 옐런과 Fed에 영향을 준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Fed는 2019년 논문에서 '오쿤의 분석은 지금도 타당하다'고 했다. 브루킹스연구소도 같은 해 '오쿤이 다시 돌아왔다'는 논문을 내기도 했다.특히 오쿤과 고압경제에 주목할 필요성은 파월의 최근 발언들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예산정책우선센터(CBPP)의 2015년 보고서를 일단 들여다보자. '고압경제는 평균 이상의 강력한 경제성장과 낮은 실업률을 가져온다. 고압경제가 아니라면 만성적 실업에 빠질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생산량을 경기침체 이전 수준으로 되돌린다. 고압경제는 인플레이션을 Fed 목표 수준 이상으로 밀어올릴 수 있지만, 이런 오버슈팅(일시적 균형 이탈)은 대단치 않고 일시적인 것이다. 고용과 생산 측면의 이익에 비하면 이런 부작용은 대단치 않을 수 있다.'
파월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지난 22일 미 하원 코로나 관련 청문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크고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면서도 “인플레의 상당 부분 혹은 오버슈팅된 부분 모두가 중고차나 트럭(가격 상승) 등 경제 재개에 따라 직접적으로 영향받는 분야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이어 “상승이 멈추고 결과적으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라고 했다. 고압경제의 부작용이라 할 인플레가 오버슈팅된 정도라면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란 얘기로 해석할만 하다.
재밌는 점은 고압경제 주창자도 언제든, 시장상황에 따라 논지를 달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헨리 월릭이 대표적이다. 그는 1974년 Fed 이사로 취임하자, 인플레 억제를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오쿤의 고압경제론에 대해 인플레 리스크를 과소평가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높은 인플레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조금 높은 수준의 실업을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럴 때 진정한 고용안정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옐런과 파월을 비교해보면 옐런에게선 오쿤의 그림자가 강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파월 의장은 어쨌든 '인플레 파이터'가 숙명인 때문인지 간단치만은 않다. 어떨 땐 오쿤, 또 어떨 땐 월릭의 모습이 문득문득 비친다. 50년만의 인플레 시대 도래를 앞둔 상황에서 '세계 경제 대통령'의 고민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한편으론 노련한 시장 대응이기도 할 것이다.
장규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