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동영상' 덕에 인플루언서 된 셰프, 자신만의 식당 꿈 이뤄…팔로어 수가 권력인 SNS 세상, '뒷광고' 규제 논란도 시끌

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55) 아메리칸 셰프 (下)
미국의 유명 요리사가 인터넷 요리 평론가와 갈등을 빚어 직장을 잃었다가 푸드트럭을 통해 재기한다는 내용을 다룬 영화 ‘아메리칸 셰프’(2014).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요리사 칼(존 파브로 역)은 거물 블로거 램지(올리버 플랫 역)가 자신의 요리에 혹평을 하자 트위터로 램지를 공개 저격한다. 둘의 설전은 SNS를 통해 생중계되고 칼의 팔로어가 급격히 늘어난다. 칼은 램지가 식당을 재방문하던 날 사장과의 마찰로 주방에서 쫓겨나고 만다. 요리를 계속하고 싶었던 칼은 푸드트럭에 도전하고 아내와 이혼 이후 소원했던 초등학생 아들도 방학을 맞아 합류한다. SNS에 익숙한 아들이 샌드위치 등 푸드트럭 활동을 공유하자 SNS에서 ‘인증샷 성지’가 된다.

아들이 선물한 ‘쇼트폼 콘텐츠’

아들은 요리사를 꿈꾸기 시작한다. 하지만 칼은 언제까지 아들이 자신과 함께 다니며 푸드트럭을 운영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방학이 끝나자 전 부인에게 다시 아들을 돌려보내려는 칼. 하지만 아들이 떠나기 전 선물로 보낸 ‘1초 동영상’이 칼의 마음을 돌린다. 낡은 트럭을 청소할 때부터 레시피를 고민하고,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까지 푸드트럭의 나날들을 매일 1초씩 찍어 이어붙인 것이다.
아들의 1초 동영상은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가 추구하는 ‘쇼트폼경제’를 보여준다. 5초에서 길게는 15분. 스마트폰을 이용해 틈틈이 즐길 수 있는 쇼트폼 콘텐츠가 산업 전반을 휩쓸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2019년 기준 전체 국내 광고 중 50%가 1분 이하로 제작된 쇼트폼 영상이다. 긴 호흡보다는 짧고 명징한 메시지를 선호하는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것이다.

쇼트폼 원조 격인 콘텐츠 서비스 ‘틱톡’은 지난해 기준 기업가치만 1000억달러로 추산(블룸버그 기준)된다. 유튜브는 쇼트폼 서비스인 ‘쇼츠’를 지난 3월 출시했다. 모바일 쇼트폼업체인 ‘퀴지’는 드림웍스 창업자인 제프리 카젠버그 등으로부터 18억달러(약 2조2000억원)를 투자받았다. 1초 동영상에 감동한 칼은 아들에게 다시 손을 내민다. “푸드트럭 계속하자. 대신 학교 공부엔 피해 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칼의 꿈은 이뤄진다

결말은 램지가 칼의 푸드트럭을 찾아오는 장면이다. 칼을 불러낸 램지는 사과 아닌 사과를 툭 던진다. “난 원래 그쪽 팬인데. 하지만 그 식당에서 냈던 요리는 정말 엉망이었잖아요.” 놀라는 칼을 향해 덧붙인다. “대기업에 내 블로그를 팔아 번 돈으로 땅 좀 샀어요. 식당 하나 해봐요. 메뉴는 마음대로 하고.”

램지가 칼의 음식에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망설이는 칼에게 램지는 덧붙인다. “우리 화해한 사연도 이슈감이니 손님은 몰릴 거예요. 당신은 요리만 하면 돼요. 이번 샌드위치는 정말 맛있었거든요.” SNS 때문에 직장을 잃고 힘들어했던 칼이 결국 SNS 덕에 인플루언서로 이름을 날리고,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결국엔 그토록 원했던 자신만의 식당을 갖는 데도 성공하게 된 셈이다.

인플루언서 경제는 신뢰가 바탕

“샌드위치는 내 블로그엔 안 쓸 거예요. 당신을 밀어주고 싶으니까. 내가 투자하는 사업은 글로 못 쓰거든요.”영화의 마지막 부분. 램지는 인플루언서로의 신뢰도를 유지하기 위해 직접 투자한 상품에 대한 리뷰를 쓰진 않겠다고 말했다. 램지의 발언은 ‘인플루언서 경제’의 특징을 보여준다. 인플루언서들은 솔직한 사용 경험을 대중에게 공유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반대로 신뢰가 깨질 경우 소비자들의 큰 반발을 부른다.

지난해 유튜브에서 벌어진 ‘뒷광고’ 논란이 대표적이다. 객관적인 것처럼 제품을 소개한 유명 유튜버들이 뒤로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광고비를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뒷광고인 줄 모른 채 유튜버를 믿고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 사이에선 ‘사기 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국소비자원이 2019년 10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상위 인플루언서 계정의 광고 게시글 중 경제적 대가를 밝힌 비율은 29.9%에 불과했다.

광고 생태계가 ‘인플루언서 경제’로 급변하고 있는데, 제도가 따라오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유튜브 통계분석 스타트업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개인 유튜브 채널 중 광고 수익을 올리는 채널은 5만 개가 넘는다. 이 중 3800여 개는 연 8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익이 억대에 달하는 구독자 100만 명 이상 채널만 331개나 된다.인플루언서들의 뒷광고는 해외에서도 논쟁이 뜨겁다. 프랑스는 뒷광고를 한 인플루언서에게 최대 2년의 징역이나 30만유로(약 4억2000만원)의 벌금을 물린다. 벨기에는 광고 표시가 없는 광고 영상을 당국이 강제로 삭제할 수 있고, 최대 8만유로(약 1억1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해 9월부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에 게재된 동영상 콘텐츠가 경제적 대가를 받고 제작됐다면 이를 표기하도록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정부 규제가 인플루언서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한다. 과도하게 광고 표시를 강제할 경우 ‘음지 광고’가 오히려 늘어나고, 그동안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스스로 시장을 키워온 인플루언서들의 창의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은이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

① SNS 세상에서 짧은 동영상인 쇼트폼이 MZ세대에게 가장 인기인 이유는 무엇일까.② 파워 블로거나 인플루언서의 리뷰는 얼마나 믿을만 할까.

③ 인플루언서가 창의적으로 활동하도록 놔둬야 할까, 아니면 ‘뒷광고’를 못하도록 규제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