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가 한국 반도체 기업 '매그나칩' 中 인수 막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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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미국 금융당국이 국내 반도체 기업 '매그나칩반도체' 측에 인수 거래를 위한 심사가 끝나기 전까지 모든 매각 작업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바이든 정부가 무역갈등 국면에서 중국을 얼마나 견제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韓매그나칩 매각 중지 명령 분석
"美에 영향 없는 반도체 기업 인수도 막아"
"해외기업 인수해 반도체 기술 취하려는 中시도에 경고"
오바마·트럼프·바이든까지, 中 반도체 인수 제동
매그나칩, 중국 자본으로의 매각 무기한 연기
TV·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구동칩을 만드는 기업인 매그나칩은 지난 3월 중국계 사모펀드 '와이즈로드캐피털'에 14억달러(1조6000억원)에 인수됐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선 OLED 핵심 기술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매그나칩은 그동안 미국 규제당국으로부터 매각 심사를 받아왔다.미국 외교정책전문지 '포린폴리시'는 22일(현지시간) "미국 기업에 부품을 공급하지도 않고, 기술의 직접적인 군사적 영향도 없으며, 미국 노동자와 지적재산권(IP)에도 관련이 없는 연매출 5억달러(약 5600억원)에 불과한 이 작은 한국의 반도체 기업에 대한 '매각 중지 명령'은 바이든 행정부가 경제 관계에서 중국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포린폴리시는 "바이든 행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아무리 작고 미국과 상관 없는 회사라도 그들이 칩(반도체)을 다루고 있다면 중국 자본에 넘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본보기' 같은 행동"이라며 "앞으로 중국이 자체 개발 대신 해외 반도체 기업을 인수해 기술을 확보하려는 시도에 안 좋은 소식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증권거래소는 최근 매그나칩 측에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가 검토 후 결정을 내리기 이전까지 와이즈로드와 체결한 지분 매각 계약의 모든 절차 진행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중간 명령'을 내렸다. 이는 미 재무부가 매각 절차와 관련해 CFIUS 측에 검토를 받도록 요구했던 종전 조치보다 훨씬 강력한 행정적 명령이다.사실상 미국 규제당국이 중국계 자본의 매그나칩 인수를 위한 절차를 견제하는 셈이다.
당초 매그나칩은 지난 3월 와이즈로드와 1조6000억원 규모의 지분 매각 계약을 체결하고 지난 15일 주주총회에서 해당 안건을 처리해 매각 작업을 완료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국 규제당국이 매각 작업 중지를 명령하면서 모든 일정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미국 정부는 최근 몇 년 동안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려는 중국의 발목을 잡아왔다. 2015년 CFIUS는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과 같은 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가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 등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를 인수하려고 하자 "정밀 조사를 하겠다"면서 인수를 막았다. 2016년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 펀드가 독일 반도체 회사 '아익스트론'을 인수하려 하자 미국에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매각 작업을 중지시킨 바 있다.2017년엔 CFIUS는 중국 자본이 오리건에 본사를 둔 '래티스반도체' 인수를 시도하자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차단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싱가포르계 회사인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하는 것도 반대했다. 브로드컴은 중국 자본이 아니지만 외국 기업이 퀄컴을 인수할 경우 5G 주도권을 중국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매그나칩은 2004년 10월 경영난에 시달리던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가 비메모리 사업부를 분리하면서 만들어진 회사로, 그해 미국 시티그룹 벤처캐피털에 인수됐다. 약 900명에 가까운 임직원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사업장(구미 공장, 서울·청주 연구소)도 모두 국내에 있다.
LED 패널을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DDI(구동칩)와 자동차용 반도체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매그나칩 OLED용 DDI 반도체 점유율은 삼성전자에 이어 전 세계 2위 수준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선 매각이 완료되면 매그나칩이 보유한 OLED 칩 관련 핵심 기술이 중국에 유출돼 액정표시장치(LCD)처럼 국내 산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