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쁘게 돌아가는 M&A 시장 [딜 리뷰]
입력
수정
[한경 CFO Insight]3조4400억원을 들여 인수한 이베이코리아는 신세계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까요? 네 차례의 공개입찰, 두 차례의 수의계약이 모두 무산됐던 강원도의 '아픈 손가락' 알펜시아 리조트는 부동산 개발로 특화하려는 KH 필룩스 손에서 '황금알 낳는 거위'로 거듭나게 될까요? 우리나라 기업회생(구조조정) 역사상 유례없는 '스토킹 호스'(가계약 후 경쟁입찰)로 기록될 이스타항공 인수전은 어쩌다 '조건부 투자계약'에서 '투자계약'으로 바뀌었을까요? 지난 2주 동안 인수합병(M&A) 시장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이베이코리아, 요기요, 대우건설, 이스타항공, 알펜시아리조트, 한온시스템 등 진행중인 굵직한 딜만 해도 10개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간의 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1. '유통 공룡' 신세계 품에 안긴 이베이옥션과 G마켓을 보유하고 있는 이베이의 한국지사는 결국 신세계그룹의 이마트 품에 안겼습니다. 올 초 쿠팡이 미국 시장에서 100조원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을 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충격(?)을 받고 적극적으로 매물을 찾아나선 결과라고 하죠. 초반에만 해도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네이버와 신세계그룹이 손을 잡기로 하면서 롯데는 일찌감치 빠져 약간 싱거운(?) 결과가 예측됐죠. 그리고 네이버. 지난해부터 동맹을 공고히 다지고 있던 네이버와 신세계그룹은 이번에도 이베이를 함께 인수하기로 했지만, 이베이 본사가 '현금 거래'를 주장하면서 네이버는 손을 떼기로 했습니다. 대신 이베이코리아의 지분 80%만을 팔기로 하죠. 그렇게 옥션과 G마켓의 한국사업은 이마트 손에 들어간 것입니다.
평가는 엇갈립니다. 이베이코리아의 국내 사업 노하우와 구매 데이터, 정보기술(IT) 인프라, 인력 등이 이마트의 사업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가하면 쿠팡, 네이버 등과 달리 옥션, G마켓은 '목적구매' 유입이 적기 때문에 예상보다 시너지가 적을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목적구매란 처음부터 해당 사이트나 앱(응용프로그램)에 접속하는 소비행태를 말하는데요, 옥션이나 G마켓은 주로 포털 등에서 최저가 검색을 통해 연결되는 경우가 많죠. 이마트가 얼마나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는 물론 지켜봐야 알 수 있겠습니다만, 올해 유통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빅딜'을 따냈다는 건 일단 시작이 좋다고 볼 수 있겠죠. 이베이 본사가 직접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까지는 매각 작업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만큼, 클로징까지 별 탈 없이 잘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2. 강원도의 '앓던 이' 알펜시아 리조트, 결국 매각에 성공스키점프대로 유명한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가 10년 만에 새 주인을 찾았습니다. 조명업체 필룩스를 필두로 하는 KH그룹이 그 주인공인데요, 바이오, 부동산 개발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KH 필룩스가 7100억원을 적어내 알펜시아 리조트를 품에 안는 데 성공했습니다. 무려 네 차례의 공개입찰과 두 차례의 수의계약이 무산된 끝에 성사된 딜이죠.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직접 계약식에 참석할 정도로 강원도가 신경을 많이 썼던 딜인데요, 마치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일 것 같습니다. 애초 공개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던 세아상역은 기사가 나간 뒤 고심 끝에 입찰을 포기했다고 하네요. 글로벌세아를 통해 미국 골프장 등 부동산 투자를 공격적으로 해오던 세아상역이 유력한 원매자로 손꼽혔었는데요, 높은 가격을 적어낸 사람이 인수하게 되는 공개입찰의 성격상 '입찰 참여'가 알려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는 후문입니다. 아무튼, KH 필룩스가 알펜시아리조트 인수를 위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 KH강원개바ㅏㄹ은 골프장과 야외수영장, 아이스링크 등을 조성하고 인접부지를 추가로 매입해 아울렛 유치를 추진하는 등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강원도의 '앓던 이' 알펜시아 리조트가 과연 필룩스의 '황금알 낳는 거위'가 돼줄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3. '조건부 투자계약'이 '투자계약'으로 변해버린 이스타항공 인수전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스타항공의 본계약이 지난 24일 체결됐습니다. 기업회생 절차를 발고 있는 이스타항공은 우선매수권을 가진 가계약자를 한 곳 두고 공개입찰을 받는 '스토킹 호스' 방식으로 매각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스토킹 호스는 '조건부 투자계약'으로, 가계약자 A가 적어낸 금액보다 높은 가격을 써낸 B가 있을 경우 A가 B의 가격조건대로 인수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이스타항공이 딱 그랬습니다. 가계약자인 성정보다 쌍방울그룹의 광림컨소시엄이 약 70억원가량 높은 1100억원을 적어냈는데 성정이 이를 수용, 즉 우선매수권을 행사키로 한 겁니다. 그 이후는 사실 뉴스거리가 될 게 없었습니다. 성정과 이스타항공이 정밀실사, 본계약, 회생계획안 제출 등을 거쳐 M&A를 진행하면 되는 일이었죠. 하지만 광림컨소시엄이 '차순위 인수예정자'로 들어가는 허가신청서가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되고 법원이 이를 승인하는 요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스토킹 호스는 가계약자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면 그걸로 끝인데 차순위라니 이건 뭔가 싶어 알아보니, 광림컨소시엄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의견을 법원측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광림 입장에선 사실 가격도 큰 차이가 안 나는데다, 이스타항공의 전 대표를 영입해 회생계획안까지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던 터라 이대로 놓치기엔 아깝다고 생각했을 법도 합니다. 저비용항공사(LCC) 중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전망이 밝다고 평가받고 있는 이스타항공을 일단 정상화만 시켜놓으면 알짜배기 회사로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도 깔려있는 것 같고요. 물론 시장에선 "성정의 자금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이 내려졌겠지만요. 이스타항공측은 "성정이 인수할 의지도, 자금도 충분하기 때문에 잘 마무리될 것"이라면서도 "이번에 반드시 이스타항공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성정이 중도 포기할 경우, 빠르게 광림컨소시엄이 바통을 이어받아 인수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이례적인 스토킹 호스 방식으로 계약을 했다는 설명입니다. 아, 정밀실사도 생략했죠. 이 딜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저도 궁금해집니다.
4. 이베이 때문에 흥행 실패한 요기요?
이베이 딜이 생각보다 시시하게(?) 끝난 반면 요기요 딜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이베이, 요기요의 원매자로 처음부터 신세계그룹이 포함돼있었기 때문인데요, 요기요의 본입찰 일정을 당초 17일에서 25일로 연기했던 요기요 최대주주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한 번 더 입찰 일정을 연기했습니다. 생각보다 관심을 보이는 후보군이 적어서죠. 이베이가 3조원대에 거래되는 상황에서 배달의민족(66.0%)보다 점유율이 훨씬 낮은 요기요(17.9%)가 2조원대라는 게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인식도 줬을 테고요. "사실상 공개 경쟁입찰이 실패한 것이다", "원매자가 들어올 때까지 문 열고 기다리는 상황이 돼버렸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흥행은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이 딜이 시작된 배경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DH의 배민 인수 조건에 요기요 매각을 전제로 단 것)이었기 때문에 공정위의 통지대로 8월2일까지 매각하려면 늦어도 7월 초에는 인수 후보자가 나타나야 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경우엔 최대 6개월가량 시한을 연장할 순 있습니다만,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 매각 기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이유를 댄다면 그야말로 흥행실패를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니 가격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DH의 고민은 깊어졌을테고, 시장에선 "이러다 MB파트너스 같은 사모펀드가 싸게 '줍줍'(주워간다는 비속어)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죠. 한편에선 이베이 인수전에서 빠진 롯데그룹이 요기요를 싸게 살 수 있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오지만 M&A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는 점. Nobody knows.
이밖에도 대우건설 인수전은 호반건설이 불참하기로 결정하면서 중흥건설과 DS컨소시엄의 '2파전'으로 진행되고 있고, 아웃백은 bhc와 대신컨소시엄이 경쟁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또 미국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 업체 시놉시스가 국내 스마트팩토리 소프트웨어 업체 비스텔을 인수키로 했고, 프리미엄 골프용품 브랜드 마제스티골프는 스마트스코어-스트라이커캐피탈매니지먼트 컨소시엄의 품에 안겼습니다. 카카오게임즈는 광고기술 스타트업 애드엑스를 인수하고, 티몬은 피키캐스트 운영업체인 아트리즈를 인수하는 등 수많은 딜이 진행된 숨가쁜 2주였습니다. 다음번 딜 리뷰에선 또 얼마나 많은 M&A건이 등장할지 궁금해집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