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랑Ⅱ…' 연출한 박본 "완벽 추구하는 K팝 산업, 사랑으로 풀었죠"

백성희장민호극장 내달 18일까지
청룡, 주작, 현무 등 3명의 아이돌 준비생은 멋진 아이돌이 되고 싶었지만 실패하고 자살한다. 죽으면 끝인 줄 알았으나 ‘지구의 핵’이란 공간에서 삶이 연장된다. 이들은 이곳에서도 또 아이돌에 도전한다. 완벽한 아이돌 그룹을 만들기 위해 네 번째 멤버 이무기를 발굴해 1년간 훈련시킨다.

지난 23일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사랑Ⅱ LIEBEⅡ’다. 국립극단이 한국계 독일인 작가 겸 연출가 박본(34·사진)과 함께 올린 신작이다. 지난 24일 극장에서 만난 박본은 “하루 15∼16시간씩 연습하는 아이돌의 훈련 문화를 보며 그들이 음악적인 독창성을 추구하기보다 완벽한 아이돌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걸 알게 됐다”며 “한국의 연예산업을 통해 한국 사회와 정신에 대해 고민하고 접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박본은 유럽 공연계에서 각광받는 연출가다. 베를린예술대 극작과 출신으로, 2010년 첫 작품 ‘젊은 2D 슈퍼마리오의 슬픔’으로 하이델베르크연극제에서 희곡 부문 상을 받았다. 2017년엔 ‘으르렁대는 은하수’로 베를린연극제 희곡상을 수상했다. 이번 공연은 3년 전 국립극단 제안으로 올리게 됐다.

“꿈이 이뤄진 것 같아 매우 행복합니다. 매년 한 번씩 한국에 왔지만 언어 문제로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이 공연을 계기로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전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작품 제목은 K팝, K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사랑’에서 가져왔다. ‘사랑Ⅱ’는 ‘사랑의 후속편’이라는 의미다.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후속편을 찾자는 의미와 K팝을 연결지어 재해석했어요. 한국 연예산업이 완벽을 추구하는데, 그렇다면 사랑보다 더 완벽한 사랑은 뭘까 생각했죠.”구성은 K드라마의 특성을 접목했다. “K드라마에는 여러 장르가 혼합돼 있어요. 로맨틱 코미디·공포·액션 등이 섞여 있죠. 그 점이 신기해 공연에도 K드라마 특성을 접목했습니다.”

작품에선 캐릭터 이름뿐 아니라 세계관에서도 동양 설화와 전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공연 준비 과정에서 알게 된 이무기 설화가 특히 흥미로웠다고 했다. “용이 되기 위해 1만 년 동안 훈련한 뱀이 있는데, 누군가 그 존재를 부정하면 다시 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이 한국의 연예산업을 떠올리게 했어요. 아이돌을 준비해도 막상 존재가 부정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 설화와 닮았고, 한국의 모습도 담고 있다고 생각했죠.” 공연은 다음달 18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