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재고 동나…골판지·백판지 못 만들 지경"

중소 제지공장 가동중단 위기
폐지값 年 70% 올라 ㎏당 220원
수출까지 연쇄 차질 조짐

중국이 글로벌 수요 '블랙홀'
정부 규제 강화로 수입은 격감
폐지 재고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영세 제지업체들이 공장을 가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폐지 분류작업을 하고 있는 충청지역의 한 폐지 압축장. /김병근 기자
충청권에 자리한 제지업체 A사는 6월 들어 몇 차례 공장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원료인 폐지 재고량이 채 하루치가 안 될 정도로 줄어 정상적인 공장 가동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폐지가 없어 설비를 세웠다 돌리기를 반복하면서 근근이 버티는 중”이라고 푸념했다. 충청 이남의 또 다른 제지업체 B사는 오는 7월로 예정된 공장 개보수 시점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폐지 재고가 부족해 어차피 공장 가동이 어려워진 탓이다. B사 관계자는 “30년 가까이 이 업계에 있으면서 이런 공급난은 처음”이라고 하소연했다.

폐지 재고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폐지를 원료로 골판지와 백판지를 비롯한 각종 종이 제품을 생산하는 제지업계가 시름하고 있다. 영세한 업체 중에는 아예 공장 가동을 부분적으로 중단하는 곳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폐지업계에 따르면 6월 현재 폐지 평균 재고량은 1~2일치 정도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지난 2월 평균 약 3일에서 넉 달여 만에 절반 수준으로 더 줄었다. 수도권 이외 지역은 인구가 적은 영향으로 폐지 발생량이 더 적고 그만큼 수급난도 심하다는 평가다.

가격도 급등세다. 제지사에 입고되는 폐지 가격은 작년 6월 ㎏당 약 130원에서 최근 220원가량으로 1년 만에 70% 정도 뛰었다. 한 폐지업체 구매 담당자는 “통상 판매는 을이고 구매는 갑인데 판매보다 구매가 더 어려운 상황이 심해지고 있다”며 “원가 상승 부담이 있긴 하지만 해외에서 비싼 폐지를 사와 국산 폐지와 섞어 쓰는 방안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폐지 수급난이 가속화되면 포장대란과 수출대란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골판지는 100% 폐지로 제조하는 데다 백판지도 화장품 등 고급용을 제외하면 대부분 폐지가 핵심 원료기 때문이다. 과자 포장상자의 안쪽면 색상이 회색인 것도 폐지를 사용해서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폐지가 부족해진 건 정부가 수출은 가만히 둔 채 수입만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제지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올 4월 폐지 수출량은 7만2700t으로 1월 3만1600t에서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작년 월평균 수출 규모(3만4500t)의 두 배를 넘는다. 반면 수입은 1월 10만2500t에서 4월 8만1800t으로 약 20% 감소했다.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중국 등이 폐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지만 수입 가능한 폐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부는 폐지 재고가 일시적 과잉 상태이던 지난해 1분기부터 수입폐지 통관 전 전수조사(3월), 폐지 수입신고제(7월), 혼합폐지 및 폐골판지 수입규제 포함(12월) 등 공급 축소에 초점을 둔 정책을 연이어 시행하거나 확정했다.

까다로운 수입 규제에 기업들이 되레 폐지 수입을 꺼리는 풍조도 나타나고 있다. 작년 1분기 환경부 수입 폐지 전수조사 때 이물질이 기준치(3%)를 살짝 넘은 기업 대표가 검찰에 고발된 이후부터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작년 10월 대양제지 공장 화재로 골판지 수급이 꼬인 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사소한 실수로 구매기업 대표가 감옥에 갈 상황에 처해지는 건 심한 처사”라고 지적했다.제지업계는 폐지 재고 부족 문제가 만성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올해 4월 폐기물처리업자의 폐지 수입만 허용하는 법이 시행에 들어간 데다 내년 1월에는 분류되지 않은 혼합폐지의 수입을 제한하는 새로운 규제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한 제지업체 대표는 “폐지가 일단 국내에 있어야 재활용될 수 있는데 수입은 줄고 수출만 늘어나면 재고가 감소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폐지 재고를 모으기 어려운 장마철이 닥치기 전에라도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