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4년간 집값 상승률 17%를 믿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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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93% 올랐다"93% 대 17%.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 4년 동안 집값 상승률을 놓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현 정부가 보이는 견해차다. 두 기관 간 격차가 5배를 넘어 어느 것이 사실이냐를 놓고 ‘통계 조작’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 주장과 5배 차이
'통계 조작' 논란 불거져
소득 대비 집값 상승률
OECD 회원국 중 최고
통계가 '권력의 시녀'
안되도록 중립성 지켜야
통계 조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대부분 통계 조작은 정량적 통계의 작성 단계에서 발생한다. 작성 조작은 각각의 통계당 세부 구성항목 선정과 가중치 설정 문제로 귀결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국민 경제 생활에 민감한 항목을 제외하거나 가중치를 낮게 설정하면 늘 안정된 것처럼 나온다.요즘 들어서는 통계 선택과 해석 등 넓은 의미의 통계 조작이 자주 문제가 되고 있다. 최고통수권자의 정치적 야망 등과 같은 특정 목적에 부합하는 통계만 골라 발표하는 것이다. 같은 통계라도 특정 목적에 맞게 해석하고, 반대로 해석하는 시각을 무시하거나 위기 조장론자로 몰고 가는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벌써 문제가 되고 있는 설문조사의 경우 특정 목적에 부합하는 대상만 추출해 조사하면 ‘표본 오차’가 발생한다. 표본에 추출된 대상도 후에 찾아올 후폭풍을 우려해 의도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비표본 오차’가 발생해 결과치가 왜곡된다. 두 오차가 일정 허용범위를 넘으면 통계 조작에 해당한다.통계 조작 여부를 판단하는 데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항목은 ‘지난 4년간 집값 상승률을 산출하는 데 어떤 통계를 근거로 했느냐’는 점이다. 경실련은 자체 통계(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KB부동산에 가깝다)를 사용한 데 비해 정부는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현 정부의 태도도 문제다. 백번 천번 양보해 현 정부의 시각대로 4년 동안 집값 상승률이 17%로 안정됐다 해도 경실련의 시각대로 국민이 불안해할 때, 프레이밍 효과를 중시하는 미국은 국민의 입장을 감안하려고 노력하지만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국의 일부 각료와 여당 국회의원은 경실련을 ‘통계를 조작하는 가짜 세력’으로 몰아붙인다.
더 이해되지 않는 것은 현 정부 출범 초기엔 서울 강남 등 수도권 집값 상승률이 ‘세계 최고’라는 점을 근거로 25차례에 걸쳐 강도 높은 부동산 대책을 펴왔다. 결과는 문재인 대통령조차 부동산 대책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고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일 정도로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집값 상승률이 17%에 그쳤다면 부동산 대책이 성공적이었다는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경실련과 정부 중 누가 통계를 조작했는가’에 대한 논쟁의 결론을 맺어보자. 최근 한국은행은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한국의 집값 상승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가장 보편적인 집값 평가지표인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 Price to Income Ratio) 상승률을 보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온다.
특히 현 정부 부동산 대책의 표적이었던 서울의 집값 상승세는 장기 추세를 웃돌고 PIR도 2017년 이후 가장 가파르게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올해 들어서도 전국 집값 상승을 주도한 서울은 PIR이 17.8배에 달해 중위소득 가구가 서울에서 중간 가격대의 집을 사려면 17년8개월 동안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한다.
경제의 생명은 통계다. 현실이 왜곡된, 조작된 통계는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간 괴리를 발생시킨다. 그 결과 정책당국과 정책 수용층 간 인식 격차가 생기고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와 효과가 떨어진다.
현 정부 출범 초 일자리와 분배 통계가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통계청장을 교체하거나 경제정책 효과에 부합하는 통계만 골라 발표하는 사례가 문제가 된 데 이어 집권 말기에는 부동산 통계 조작 문제로 시끄럽다. 고위 권력자일수록 통계가 ‘권력의 시녀’가 되지 않도록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