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퀸' 임진희 "퍼트 12개 한 번에 성공해야 연습 끝…살아남으려 이 악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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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퀸' 임진희 인터뷰1998년 US오픈에서 박세리의 맨발 투혼은 국민들의 마음을 울렸다. 물속에서 샷을 날린 맨발 투혼 때문만은 아니었다. 구릿빛 종아리 아래 숨어 있던 흰 발은 그가 흘린 땀의 무게를 대변했다. 28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 우승자 임진희(23)가 대회 관계자들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로 찾아와 인사를 할 때였다. 주먹 인사를 하려고 손을 내밀자 소매가 들리면서 그을린 손등과 선명히 대조되는 손목 위 뽀얀 살이 드러났다. 화들짝 놀라며 급히 소매를 내린 그는 “시간이 없어 선블록을 하루 한 번밖에 안 발라서 탔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제주서 초등학생 때 취미 활동
함평골프고 입학 후 본격 훈련
고생하는 부모 위해 마음 다잡아
하루 12시간씩 지독한 연습벌레
"믿고 도와준 후원사 대표에 감사
두고두고 마음의 빚 갚아 나갈 것"
제주 서귀포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임진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방과 후 활동으로 골프를 처음 접했다. 하지만 골프를 본격적으로 배울 정도로 집안 사정이 넉넉지는 않았다. 골프는 취미 활동 정도로만 여겼다. 중학교에 가서도 골프를 종종 했으나 하루 1시간 하던 취미가 3시간 정도로 늘어난 정도였다. 그러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코치가 전문적으로 골프를 배워보라고 했다.“처음에는 망설였죠. 줄넘기 한 개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몸치’라서요. 검도도 배우고 있었는데 코치님이 당장 그만두라고 했어요. 도 주최 골프대회에 나갈 때마다 우승하니 제가 정말 잘하는 건가 싶었어요. 제주에선 골프를 전문적으로 배우기가 힘들어 함평골프고로 ‘유학’ 갔으니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건 고1 때부터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평범한 선수인지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갑내기인 박민지가 국가대표로 뛸 때 그는 상비군 근처도 못 갔다. 남들보다 두세 배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그가 처음 느낀 이유다. 돈을 벌어야 하는 아버지는 제주에 남았고, 어머니가 함평으로 올라와 딸 뒷바라지를 했다. 주말엔 천안에 있는 골프아카데미를 오갔다. 하루 6시간 운전도 어머니의 몫이었다.
“주니어 시절에는 천안에 원룸을 잡고 어머니와 생활했어요. 10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 때 제가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고 느낀 것 같아요. 아버지도 제주에 남아 힘들게 돈을 버시고…. 더 이상 골프를 취미로 여길 수 없었던 거죠.”임진희는 연습벌레가 됐다. 고등학교에선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잠들기 전까지 클럽을 휘둘렀다. 성인이 돼선 연습 시간을 늘렸다.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밥 먹는 시간과 이동하는 시간을 빼고는 24시간의 절반을 연습에 투자했다. 파3 골프장에서 어프로치를 익혔고, 퍼팅 그린에선 눈칫밥을 먹으며 두세 시간씩 연습했다. 하얗던 그의 피부는 빠르게 그을렸다. 오직 연습, 또 연습…. 친구들은 다 있는 SNS 계정이 임진희에겐 없는 이유다.
“지금도 꼭 지키는 저와의 약속이 있습니다. 1m 거리에서 6개, 2m 거리에서 6개씩 총 12개의 퍼트를 한 번에 성공하기 전까지 계속 연습하는 거죠. 중간에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요. 빠르면 1시간이 걸리지만 길면 두세 시간도 걸립니다. 하지만 해야 했어요. 가장 집중하면서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지난 27일 경기 포천시 포천힐스CC에서 열린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은 그런 노력의 결실이었다. 모두가 ‘깜짝 우승’이라고 했지만 임진희는 누구보다 준비된 우승자였다. 17번홀(파4)에서 11m 버디 퍼트, 챔피언 퍼트가 된 18번홀(파5) 버디 퍼트는 그가 흘린 땀방울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장면이다.“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 무명 선수인 저를 믿고 후원해 주신 1577-1577 코리아 드라이브의 김동근 대표님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아나가고 싶습니다. 당초 목표인 첫 우승이 빨리 나왔으니 다음 목표인 시즌 상금 3억원을 위해 계속 달려나갈 것입니다.”
"퍼팅도 손맛 있어 때리고 끊어쳐라"…임진희의 퍼팅 꿀팁
27일 경기 포천시 포천힐스CC에서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에서 임진희(23)의 우승을 이끈 건 퍼팅이다. 17번홀(파4)에서 11m 버디 퍼팅, 18번홀(파5)에서 약 1.5m의 버디 퍼팅 등 결정적인 순간마다 퍼터가 마법을 부렸다. 임진희는 올해 평균 퍼팅 21위(29.93타)를 기록 중이다.그의 퍼터 헤드는 검은색이다. 그런데 페이스 중앙 부분은 칠이 벗겨져 하얗다. 하루 3시간 가까이 퍼팅 연습만 해 페인트가 견디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의 퍼팅 스트로크가 특별한 이유도 있다.일반적으로 선수들은 밀어치는 또는 굴리는 스트로크를 선호한다. 라인을 본 대로 공이 굴러가기 때문에 성공률이 높고 안정적이다. 하지만 임진희는 때리는 느낌의 스트로크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공이 끝까지 힘있게 굴러가는 느낌이 좋다”며 “공이 퍼터 헤드를 빨리 떠나기 때문에 직진성도 좋다”고 설명했다.
임진희는 퍼팅에서도 ‘손맛’이 전해진다고 했다. 공이 퍼터 헤드 정중앙에 맞을 때 나는 느낌이다. 그는 “공을 때린다는 생각으로 퍼팅하면 손으로 임팩트 순간의 느낌이 전달된다”며 “왼손으로 그립을 쥘 때도 다른 골퍼들보단 더 단단하게 쥐는 편”이라고 했다.임팩트 이후 클럽이 앞으로 나가는 동작인 폴로스루에선 헤드 이동에 급격히 제동을 건다. 이 때문에 피니시에서 끊어 치는 듯한 동작이 나온다. 임진희는 “퍼터 헤드가 끝까지 앞으로 나가면 공이 헤드에 오래 머물고 결국 굴리는 스트로크와 비슷해진다”며 “스트로크를 간결하게 가져간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퍼팅은 방향성과 세기가 일정할 때 나온다. 때려치더라도 나만의 리듬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