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드러누워 저항하는 중국 청년들

강현우 베이징 특파원
“올해 경기는 지난 10년 중 가장 나쁘다. 앞으로 10년 중에선 가장 좋은 해가 될 것이다.”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음식 배달 등 몸으로 뛰는 직종의 청년들에게 요즘 경기를 물어보면 이런 관용적인 답변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작년보다 올해가 더 힘들다는 이가 대다수다. 중국이 수년 후면 미국을 넘어선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된다고 하지만, 서민 청년들은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다음달 1일 창당 100년을 맞는 중국 공산당은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갈수록 커지는 빈부격차와 여기서 비롯된 청년들의 무기력증을 미국 등 외부의 견제보다 더 큰 위협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중국 정부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2017년 지니계수는 0.467이다.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빈부격차가 상당하다는 의미다.

당원 1명과 비당원 14명의 계층

중국 공산당 당원 수는 2019년 말 기준 9200만 명이다. 14억 명의 인구를 감안하면 15명 중 한 명이 공산당원이다. 얼핏 보면 많아 보이지만 ‘출세의 보증수표’로 통하는 당원이 되기 위해선 치열한 선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당원이 되려면 학창시절엔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야 하고, 14세 무렵부터는 공산주의청년단에서 경력을 쌓아야 한다. 18세가 넘어 정식 당원이 되려면 기존 당원의 추천서를 포함한 입당원서를 낸 뒤 3년에 걸쳐 20여 단계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선발된 당원들은 국민들이 공산당의 능력을 인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당원 중에서 공산당이나 국가 업무를 하는 이는 8%뿐이다. 대부분은 민간 기업에서 ‘당원 프리미엄’을 안고 승승장구한다. 중국에선 공산당원이 3명 이상 있는 조직은 당조(黨組)라는 당위원회를 결성해야 한다. 민간 기업에서도 공산당원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이런 독특한 시스템이 중국인을 당원 1명과 비당원 14명으로 구분하는 ‘계급 사회’를 고착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富)의 상당 부분은 당원들에게 쏠려 있다. 당원이 되면 최소한 먹고사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중국 청년들 사이에선 수년 전부터 상대적 박탈감을 표현하는 ‘네이쥐안(內卷)’이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노동생산성의 퇴보를 뜻하는 학술 용어였는데 이제는 장시간 노동으로도 치솟는 대도시 집값과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상황을 가리키는 단어가 됐다.

계급 갈등에 세대 갈등까지

올해 들어선 ‘탕핑(平)주의’가 새롭게 떠올랐다. 탕핑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평평하게(平) 드러눕는다()는 뜻이다. 젊은이들이 탕핑을 선택하는 것도 노동과 그에 따른 대가가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도 성장기에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을 수 있었던 기성세대와 자신들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세대 갈등도 커지고 있다.국가의 통제에 맹목적으로 따라야 하는 소시민의 삶에 회의를 느끼는 정서가 탕핑주의에 반영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산당은 이들이 사회 불만 세력으로 커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지만 딱히 뚜렷한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탕핑은 부끄러운 일이다’ ‘1자녀 가정에서 나약하게 자란 소황제들이 탕핑에 빠지고 있다’는 식의 훈계만 반복하고 있다.

빠른 경제 발전은 공산당이 100년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불거진 극심한 불평등 문제는 공산당의 최대 숙제가 됐다. 공산당의 주무기인 통제와 선전이 탕핑 세대에게도 통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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