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안 커디 "타인과 자연 배려하는 서핑…안창호 정신과 통해"

Cover Story

1세대 한국계 서퍼 '도산 외손자' 필립 안 커디
지난달 18일 웨이브파크에서 서핑 체험을 하러 간 한국경제신문 기자들이 서핑 교육을 받고 있다. 김영우 기자
“하와이 서퍼들의 ‘알로하(aloha)’ 정신과 ‘도산 안창호 정신’은 궤를 같이합니다. 서핑은 타인과 자연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배울 수 있는 스포츠죠.”

도산 안창호 선생의 외손자이자 ‘레전드(전설적) 서퍼’로 알려진 필립 안 커디(66·사진)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올림픽 경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을 계기로 국내 서핑의 인기가 더 높아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안창호 선생의 장녀이자 동양계 여성 최초 미국 해군 장교를 지낸 안수산 씨의 아들이다. 1960년대 하와이에서 서핑을 시작한 1세대 한국계 서퍼인 커디는 최근 경기 시흥 웨이브파크의 고문을 맡았다. 그는 서핑을 통한 교육 및 치료 프로그램 개발과 서핑 비즈니스 컨설팅 등도 하고 있다.

커디에 따르면 ‘알로하’ 정신은 ‘도산 정신’과 비슷한 점이 많다. 알로하는 하와이의 인사말이자 서퍼들의 정신을 대표하는 단어로, 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일컫는다. 커디는 “할아버지는 미국으로 항해하는 동안 바다에서 산처럼 솟아난 하와이를 보고 도산(島山)이라는 아호를 정했다”며 “스스로 산처럼 강하게 서서 자유를 쟁취하자는 마음은 서퍼들의 정신 그 자체”라고 말했다. 서퍼들은 거친 파도 속에서 스스로 일어나 물살을 가르면서도 타인과 자연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는 설명이다.그는 최근 한국의 서핑 붐에 대해 고무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커디는 “1991년 서핑 보드를 들고 한국에 왔을 때 공항에서 세관원들이 놀라며 보드를 빼앗아 가기도 했다”며 “머리를 기르거나 자유롭게 꾸미는 서퍼들의 외형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이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자 산업이 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서핑이 첫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서핑 마니아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커디는 “서핑은 익스트림 스포츠면서도 아주 세부적인 규칙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골프 못지않게 시청자로서도 즐길 만한 운동”이라고 했다.

일흔을 목전에 둔 나이지만 그는 아직도 1주일에 5~6일은 파도 위에 오른다. 일평생을 서핑에 바쳐온 그가 말하는 서핑 시 주의할 점은 뭘까. 커디는 “서핑하는데 중요한 두 가지는 ‘끈질김’과 ‘겸손함’”이라면서 “파도는 사람보다 강하며,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늘 경계를 늦추지 말고 주변 환경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