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은 파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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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신간 서적 저자 기고■ 「나 코치의 파는 기술」저자, 나유업
(서울벤처스 CMO, 16년차 이커머스 전략가)이커머스 MD라면 지겹도록 들었을 말이 단독 가격과 단독 디자인, 단독 브랜드다. 이커머스에서 높은 매출을 올리는 최고의 방법은 단연 ‘단독(exclusive)’이다. 우리 쇼핑몰에서만, 우리 사이트에서만 파는 제품이니 당연히 매출이 오를 수밖에 없다.
물론 단독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모든 이커머스가 제조역량을 갖춘 것도 아닌 데다, 남이 만든 제품을 독점하고 가격을 통제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방법은 있다. 단독판매에서 ‘단독’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다.
쇼핑몰을 운영할 때의 일이다. 모든 제품을 독점할 수는 없으니, 제품을 남들보다 먼저 공개함으로써 그 시간만큼 단독으로 파는 전략을 택했다. 당장 모든 제품을 당일에 업로드하겠다는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겼다. 마음 같아서는 어울리는 모델도 신중하게 섭외하고 상세페이지도 누구보다 완성도 있게 만들고 싶었지만, 모든 욕심을 접고 대신 속도를 택했다.
고객들은 신속한 선공개의 가치를 알아봐주었다. ‘신상품이 가장 빨리 업로드되는 곳’으로 인식되면서부터 다른 곳보다 비싸게 내놔도 물건이 팔렸다.
나아가 거래처에서 기획 중인 제품 정보를 한발 먼저 입수해 늘 먼저 달라고 찜해두고, 그 제품을 우리 고객들에게 가장 먼저 선보이게끔 했다. 나중에는 진짜 단독, 우리만 파는 제품을 만들어주기도 했다.이 정도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단독’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신속함이라 하면 빠른 배송을 떠올리지만, 빠른 공개도 신속함을 파는 방법 중 하나다. 나는 그렇게 거래하는 업체들을 넓혀가면서 고객들에게 신속함을 팔았다.
가령 시간과 경험도 단독이 될 수 있다. 영화 제작사는 개봉 전에 VIP 고객들을 상대로 영화 시사회를 여는데, 이는 특별한 혜택이라는 ‘경험’을 파는 것이다.
예전에는 홍보력 있는 기자들이나 매체에 먼저 공개했던 프리미엄을 지금은 고객들에게 혜택이라는 이름으로 제공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판다. 고객은 기꺼이 그 경험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애플이 신제품을 출시하면 다들 줄을 서서 구매하고 언박싱 리뷰를 올리며 자랑하는 것처럼, 시키지 않아도 돈을 내고 독점적 경험(experience)을 구매하며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시간을 파는 방법은 이밖에도 매우 다양하다. 신규회원이 가입과 동시에 정기배송을 신청하면 다음 달에는 일주일 무료 정기배송 혜택을 준다든지, 6개월을 신청하면 2개월을 무료로 주는 시스템들이 그러한 예다.
단기적으로 손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고객을 붙잡는 데 쓰는 리텐션(retention) 비용을 낮춰 이익으로 돌아온다
어디에나 있는 제품을 세상에 없는 제품으로 만드는 것은 판매자의 ‘기획력’이다. 가장 먼저 업데이트를 하면 짧은 기간이나마 단독이 된다. 남들이 다 파는 물건이라도 우리만 재고를 갖고 있다면 단독이 된다.
유니크한 디자인만 단독이 되는 것이 아니다. 5만 원 미만인데 무료배송을 하거나, 남들도 파는 제품에 사은품을 붙이면 단독상품이 된다.
물론 생산처와 협력사가 협의해 단독을 만드는 작업이 메인이 되어야겠지만 판매기간을 확보하거나 특정 컬러를 확보하거나 수량을 확보하는 것, 나아가 유명인이나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까지, 이 모두가 단독을 만드는 방법이다
‘왜(why)’에서 접근하면 모든 것을 팔 수 있다. 관점만 바꾸면 모든 것을 팔 수 있는 시대를 살면서 아이템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분들이 많다.
나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기에 그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관점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관계를 맺고 신뢰를 얻고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외부의 경험을 자신의 교훈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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