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그게 뭐에요?" 기업들 상반기 거침없이 달렸다

[한경 CFO insight]
2021년 상반기가 어느새 지나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는 백신의 보급에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산업별 전망 속에서 기대했던 업황 회복이나 우려했던 위험 요소가 현실화됐는지 중간 점검했다.

리스크로 지목된 변수들은 상반기에 대부분 현실화하지 않았고, 장미빛 전망들은 맞아떨어졌다. 증권가에선 반도체 호황과 조선 해운을 비롯해 철강 산업 등 한동안 부진했던 업종 기업들이 2분기에 대거 '어닝 서프라이즈' 수준의 실적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항공업과 관광·호텔업을 비롯해 면세점 유통업은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예상대로 호황
글로벌 반도체 업계 안팎에선 올해 '슈퍼 사이클'(장기호황)이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 잇따랐다. 국내 신용평가사들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선 DRAM 판매가격 하락폭이 완화되면서 업계 영업이익이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고, 낸드 플래시의 경우에도 2019년 업계 증설로 인한 공급과잉 이 일부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증권가에선 상반기 SK하이닉스의 상반기 매출은 약 18조원으로 전년 15조8000억원대비 크게 늘었고 영업이익도 6000억원대로 소폭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도 상반기 약 41조원 매출에 10조원 영업이익을 냈을 것으로 보고있다. 작년 매출 35조원, 영업이익 9조4000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지난 2분기에는 영업이익률이 30%를 넘어선 것으로 분석된다. 협력 업체를 비롯해 시스템 반도체 기업 역시 경기회복의 수혜를 봤을 것으로 분석되며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실적이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어닝 서프라이즈 기대하는 철강·자동차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2분기 어닝서프라이즈 수준의 실적 발표가 예상된다. 전방산업인 자동차와 조선 등의 활황으로 철강 수요가 예상보다 많이 늘어나면서 가격 협상력이 높아졌기 때문에 수익성이 급격히 높아졌다. 포스코는 상반기 개별기준으로 15조원 초중반대의 매출에 2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등 올해 사상최대 이익을 낸다는 전망도 나온다. 작년 상반기엔 약 12조원 매출에 영업이익은 3000억원에 그쳤다.현대제철 역시 10조원이 넘는 매출에 8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다보고 있다. 작년 상반기 110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반전됐다. 당초 신평사들은 철광석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봤으나, 수요가 예상을 뛰어넘어 철강재 값을 대폭 올려받았다.

자동차 산업 업계도 예상을 뛰어넘는 수익성 회복이 이뤄졌다. 당초 한국신용평가는 "내연기관차 수요 감소 추세(친환경차 확대)와 코로나19 확산세 지속 등으로 회복세는 완만한 수준일 것" 이라고 예상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분기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205%와 767% 급증한 1조8031억원, 1조260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기아차가 타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 대비해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생산 타격을 덜 받았기 때문이다. 유진투자증권은 "재고 부족으로 고객 인센티브 비용과 재고 관리 부담이 급감하면서 생산이 느려진 것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조선업 경기도 활황이다. 다만 재무에 반영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한국조선해양(옛 현대중공업 그룹 조선사) 계열 조선사들은 상반기에 123억달러 규모 선박 수주를 쓸어담아 연간 목표치에 82%를 달성했다. 삼성중공업도 올들어 59억달러 규모의 선박을 수주해 지난해 전체(51억 달러) 수주 물량을 넘어섰다. 대우조선해양 경쟁사 대비 상대적으로 부진한 25억달러 수준의 수주로 목표대비 35%에 그쳤으나, 경쟁사 도크의 포화로 하반기에 인상된 가격으로 일감을 따낼 것을 기대하고 있다. 업황이 예상보다 나아진 상황이다.

한국신용평가는 "LNG선박 수요 증가로 수주는 늘어나겠으나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회복 지연 선발 발주가격 회복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원재료 가격부담과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당분간 낮은 수익성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좋은시절 계속되는 건설업
업계에선 2021년엔 주택 등 건축수주 물량은 감소하나 부동산 가격이 강보합세를 띠면서 분양시장 호조가 지속될 것으로 기대했다. 입주물량 감소 및 전세가 상승으로 주택가격과 분양시장 견조하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  한국기업평가 등은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무리해서 추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을 리스크로 지목했다. 분양시장 호조는 계속되고 있다. 상반기 전체 주택 분양 물량은 약 16만8000가구로 전년 상반기 대비 27.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가에선 현대건설은 상반기에 약 8조7000억원의 매출로 작년 대비 소폭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전년 상반시 3200억원에서 대폭 증가한 4200억원 이상을 냈을 것으로 예상했다. 대우건설도 영업이익이 지난해 상반기 약 2000억원에서 올해 3800억원대로 대폭 상승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GS건설, HDC현대산업개발, DL이앤씨 등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주춤했으나 좋은 실적을 유지했고 하반기에 실적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가도 상승세다 . 코스피 지수가 14.7% 상승하는 동안 건설업 지수는 연초대비 30.3% 상승했다. 하반기엔 사우디 Zuluf 가스전과 UAE 가스 프로젝트 등 해외 수주도 기대된다.

유통업은 상승, 항공업 여행업 '암울'
전문가들은 오프라인 유통업의 완만한 회복을 예상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대형유통기업에 대한 신규출점 제한, 영업시간 의무휴일 등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시도하는 등 정부와 국회의 정책이 리스크"라고 지목했다. 정부 규제로 인한 매출 타격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백화점·마트와 소매점 등 주요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이 대부분 전년 대비 대폭 개선된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증권사들은 보고있다. GS리테일과 신세계가 양호한 실적을 냈고, 이마트와 현대백화점은 코로나 이전보다도 매출이 늘었다.

다만 롯데쇼핑은 상반기에 전년과 비슷한 8조원 가량의 매출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고 연간 17조원의 매출을 낸 2019년과 비교하면 줄어든 수준을 기록했다. DB금융투자 리서치팀은 "명품 이외에 수익성이 높은 패션 잡화등 전반적인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며 "오프라인 쇼핑이 정상화되고 각 기업들의 점포 효율화 노력이 전반적으로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고 전했다.

항공업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 대한항공의 상반기 매출은 3조8000억원 정도로 분석되며, 1~2월 그나마 정상 영업을 한 작년보다 줄어든 수준이다. 연초 예상대로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항공업은 2022년까지는 본격적 회복 가능성이 낮다"며 "백신과 치료제 효과 나는데는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여행업을 비롯해 호텔과 면세점 산업 역시 예상대로 부진한 실적을 기록중이다. 신평사들은 2022년 이후에나 점진적인 실적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불안한 호황 계속되는 금융산업
금융 산업은 호황이 지속됐다. 그러나 과잉 유동성과 정부 정책에 따른 리스크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들의 실적은 연초 예상과 달리 나쁘지 않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유동성장세에 힙임어 호실적 계속되고 있으나 주가지수가 언제 급락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증시 시가총액의 비율인 이른바 '버핏지수'가 100 이상을 기록한 다음해에는 어김없이 주가가 하락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 작년엔 버핏지수가 125%로 사상 최대였다.

대체투자 부실과 PF우발채무 파생결합증권 금융시장 변동성. 금리상승으로 인한 채권평가손 현실화 등도 리스크로 꼽혔다. 그러나 상반기에도 개인들의 주식 거래가 활기를 띠고 신용잔고도 늘어 꾸준한 수익을 내고 있다. 대규모 부실 등 잠재 리스크의 현실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은행권과 카드 캐피탈은 저신용자와 자영업자 등에 대한 정부 금융지원조치가 시한폭탄으로 꼽혔으나 정부 조치는 연말까지 로 연장됐다. 리스크는 지속될 전망이다. 다만 보험사들은 저금리 고착화로 인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민간소비 회복 지연, 초저금리 지속, 규제 강화 등 비우호적 사업환경 속에서 수익성 저하가 우려된다"고 내다봤다. 상반기 생명·손해 보험사들의 지급준비율(RBC)이 대폭 하락하는 등 위험 신호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