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하청업체 될 판"…'대출 갈아타기' 플랫폼에 은행 반발

사진=뉴스1
금융위원회 주도로 준비 중인 대환대출 서비스(대출 갈아타기 서비스)를 두고 은행들과 빅테크(대형 IT기업) 및 핀테크 업계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양측은 수수료와 운영 시간 등을 놓고 이견을 보였고, 은행들이 은행권 공동의 플랫폼을 별도로 만들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10월 서비스를 시작하고 연말까지 2금융 대출도 쉽게 갈아타게 만들겠다는 정부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환 플랫폼 출범에 암초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6일 대환대출 인프라 구축과 관련해 은행들을 모아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 최근 은행들이 대환 서비스를 구현할 은행 별도의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밝힌 것에 대한 의견을 직접 들어보겠다는 계획이다. 금융위는 2금융권과 핀테크 업체, 금결원 등을 대상으로 ‘릴레이 간담회’를 벌이기로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업계간 이해가 첨예하게 부딛치고 있다”며 “정해진 일정 내에 서비스를 시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정부는 은행과 카드사, 캐피털, 저축은행 등의 모든 대출 상품을 모바일 앱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한눈에 비교하고 손쉽게 갈아탈 수 있는 ‘대환대출 서비스’를 구축하고 있다. 그동안 개인이 기존 대출을 갈아타려면 일일이 금융사별 금리를 비교하고, 복잡한 서류 작업도 거쳐야 했다. 금융위는 금융결제원을 통해 대환 인프라를 만들어 은행, 핀테크 업체의 플랫폼과 연결해줄 계획이다. 앞으로 금융소비자는 각자가 보유한 대출을 은행 앱, 핀테크 앱 등에서 쉽게 조회하고 낮은 금리의 상품으로 쉽게 갈아탈 수 있다. 대환 대출 서비스는 이런 편리함 때문에 1700조원 규모의 개인 대출 시장의 격변을 가져올 ‘게임 체인저’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대로라면 빅테크, 핀테크 업체에 ‘종속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강하게 제기해왔다. 업권별로 대환 서비스를 출시하더라도 금융 소비자들이 편리하고 강력한 플랫폼을 구축한 빅테크, 핀테크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판매 역량이 대형 은행에 못 미치고, 업체와 업권별로 대출 금리차가 큰 2금융 업체들의 걱정은 더 컸다. 특히 카드사들은 중도상환수수료가 없는 카드론의 특성 상 다른 업권에 대출 고객을 단숨에 빼앗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수료도 문제다. 금융사는 플랫폼 업체에 판매 대행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대출 상품을 제공할 금융사에게는 적절한 보상을 마련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은 ‘재주는 곰(금융사)이 넘고 돈은 주인(플랫폼 업체)이 챙기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대로 핀테크 업체들은 금융사의 이런 반발이 과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핀테크 업체의 고위 관계자는 “대환 플랫폼 간 경쟁이 벌어지면 수수료가 점차 낮아질 것”이라며 “오히려 은행들이 대환 중도상환수수료를 크게 높여 대환 서비스 자체를 무력화하지 않을지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시장 주도? 관 주도? 첨예한 이해 관계

양측은 플랫폼의 운영시간을 놓고도 갈등을 벌였다. 금융사들은 은행 영업점 운영 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서비스를 하자는 반면, 핀테크사들은 대부분의 금융업무를 24시간 볼 수 있는 가운데 ‘소비자가 상품 조회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은행들은 은행연합회를 통해 금융위에 ‘은행들 연합해 별도의 대환 플랫폼을 만드는 건’에 대해 검토해달라고 의견을 묻기도 했다. 은행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빅테크 업체에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은행들이 중지를 모은 것”이라며 “금결원이 운영하는 계좌이동서비스 등과 같은 플랫폼을 소비자가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환 서비스 구축을 정부가 주도하고 민간 업체의 참여를 강요해 이런 갈등이 증폭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자를 위한 대환 서비스’라는 명분만으로는 각 업계의 이해관계를 포괄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정부 주도 서비스로는 편의성에서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민간 기업들이 참여하는 대환 서비스를 기획한 것”이라며 “이견을 조율해 정해진 일정대로 서비스를 시작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대훈/정소람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