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스토리와 노래, 두 산을 정복한 푸치니

김희경 문화스포츠부 기자
“물러가라 밤이여. 사라져라, 별들이여. 새벽이 밝아오면 나 이기리라. 이기리라. 이기리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웅장해진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로 꼽히는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다. 이탈리아 음악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사진)에 나오는 노래다.‘투란도트’는 아름답지만 차가운 공주 투란도트, 그와 결혼하고자 하는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재밌는 수수께끼, 결혼을 둘러싼 갈등 등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와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탄탄한 스토리에 더해진 아리아 ‘네순 도르마’는 아름다우면서도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푸치니는 ‘투란도트’뿐 아니라 ‘라 보엠’ ‘나비부인’ ‘토스카’ 등 뛰어난 오페라 명작을 남겼다. 주세페 베르디에 이어 이탈리아 오페라의 화려한 영광을 이뤄낸 인물이다. 통속적인 소재도 세련된 문법으로 풀어낸 덕분에 그의 작품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재밌게 볼 수 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안드레아 보첼리 등 많은 유명 성악가가 푸치니의 아리아를 사랑하고 즐겨 불렀다.

시간과 경험을 녹인 대본의 힘

푸치니는 5대에 걸쳐 산마르티노 대성당 음악감독을 지낸 음악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여섯 살 때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푸치니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에도 푸치니에게 오르간 연주를 가르쳤다.18세가 되던 해, 그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이 발생했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보게 된 것. 티켓값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는 관심을 갖고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이 끝난 뒤엔 돈이 없어 긴 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엔 오페라 작곡가가 되겠다는 새로운 꿈이 가득 차올랐다.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첫 오페라 ‘빌리’로 공모전에 나갔지만 떨어졌고, ‘에드가’는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차근히 작품을 준비했다. 4년 뒤 발표한 ‘마농 레스코’부터 결과가 나타났다. ‘토스카’ ‘나비부인’ 등 잇달아 큰 인기를 얻었다.

이전과 다른 성공 비결은 대본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대본 작업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마농 레스코’는 푸치니를 포함해 8명이 대본 작업에 매달렸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라 보엠’엔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녹였다. 이 작품은 많은 청춘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뮤지컬 ‘렌트’로도 각색됐다.

위기를 딛고 외친 "나 이기리라"

또 다른 비결은 아리아다. ‘토스카’에 나오는 ‘별은 빛나건만’, ‘나비부인’의 ‘어떤 개인 날’ 등 그의 오페라에는 명곡이 가득하다. 그 곡들엔 서정적이면서도 애절한 감정이 담겨 있다. 그의 성격 덕분이 아닐까 싶다. 푸치니는 밝고 경쾌했지만, 약간의 우울함도 함께 갖고 있었다. 그는 “나는 멜랑콜리의 거대한 짐을 지고 태어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성기를 누리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명작을 잇달아 선보였지만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푸치니는 위기가 찾아오면 더 강인해지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모든 기법을 총집결해 대작 ‘투란도트’를 탄생시켰다. “지금까지의 내 오페라들은 다 버려도 좋다”고 얘기할 정도로 자신감도 보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작품을 다 만들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푸치니의 제자 등이 ‘투란도트’를 함께 완성해 세상에 널리 알렸다. 스토리와 노래, 반복되는 위기에도 이 높은 두 산을 정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푸치니. 마침내 정상에 오른 그의 환희의 외침이 ‘네순 도르마’에 담겨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가사를 되뇌어 본다. “새벽이 밝아오면 나 이기리라. 이기리라. 이기리라!”○‘7과 3의 예술’에서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큰 감동을 선사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철학을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