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탄으로 그려낸 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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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1
소나무든 산길이든
뭐로 보이든 어떠한가
당신이 보는 게 정답인 것을
황인기 목탄 그림 전시
7일부터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서
추상과 구상 넘나드는 그림에
자유분방한 글·여백의 미 조화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황 작가(70)의 드로잉 등 작품 30여 점을 소개하는 ‘황인기 목탄 그림’ 전시가 7일 개막한다. 황 작가는 크리스털과 실리콘, 레고 블록과 홀로그램 필름 등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다양한 매체로 고전 산수화를 재해석해 표현한 ‘디지털 산수화’로 유명하다.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2003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해 ‘국가 대표’로 인정받는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대작을 주로 발표하던 그가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그린 드로잉을 들고나왔다. 떠오르는 상념이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자유롭게 그린 뒤 생각나는 글귀를 덧붙인 문인화 형식의 작품들이다. “큰 작품을 할 때는 자식 키우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에요. 먹이고 입히고 버르장머리 가르치느라 애도 먹고 힘도 들지요. 드로잉을 그릴 때는 손주를 보는 기분입니다. 졸리다면 재우고 놀자면 같이 놀아주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작가는 “아무렇게나 그렸다”고 하는데 작품들은 균형과 여백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재치있게 그림과 어우러지는 글귀도 미소를 자아낸다. ‘무제’(1999)에는 ‘소나무면 어떠하리 山길이면 어떠하리…’로 시작하는 글이 적혀 있다. 그 표현 그대로 그림은 소나무로도, 산길로도 보인다.
작품이 걸린 방식도 독특하다. 가로 110㎝, 세로 80㎝ 크기의 드로잉 작품들이 여백 없이 격자 모양으로 서로 붙어 있어 소박한 조화를 이룬다. 황 작가가 직접 요구한 방식이라고 한다. 황 작가를 상징하는 디지털 산수화를 감상하고 싶은 관객들을 위해 전시장에는 드로잉 외에 대작 두 점도 마련돼 있다. 가로 270㎝, 세로 180㎝의 홀로그램 필름에 실리콘으로 그린 디지털 산수화 ‘나이 칠십’과 가로 370㎝, 세로 166㎝의 광목천에 먹으로 그린 ‘무제’다.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