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가슴살에 대한 지나치게 상세한 이야기 [문정훈의 푸드로드]

한경 DEEP INSIGHT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가슴살 부위가 오버쿠킹이 되지 않도록 하면서 닭 한 마리 전체를 제대로 익히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4년 전 프랑스 최고의 토종닭 전문 셰프로 알려진 조르주 블랑을 만나 닭이라는 식재료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가 내게 던진 답이다. 한평생을 토종닭 요리 연구에 바친 백발의 명장(名匠)의 입에서 나온 답치고는 너무 사소하고 단편적인 것이어서 당혹스러움을 숨기기 어려웠다. 적어도 그날 저녁 그의 이름을 딴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조르주 블랑’에서 그의 토종닭 요리를 먹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닭가슴살에 누명을 씌운 흉악범 요리사를 처단하라

프랑스 최고의 토종닭 셰프 조르주 블랑.
조르주 블랑은 프랑스 동부 브레스(Bresse) 지역 출신 요리사로 집안 대대로 브레스에서 지역의 식재료로 요리해온 가문의 장자이며, 브레스에서 존경받는 어른이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그 지역 토종닭의 명성이 자자했는데, “프랑스 국민에게 주말마다 닭을 먹이겠다”고 선언한 선량왕 앙리 4세(1553~1610)가 가장 사랑했던 식재료가 바로 이 브레스 토종닭이다. 지금도 전 세계 최고급 식재료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브레스 토종닭의 붉은 볏, 흰 몸통, 푸른 다리는 프랑스 삼색 국기와 같은 색을 가졌다는 이유로 프랑스의 상징으로 자주 언급된다. 늠름하게 서서 싸우는 삼색 수탉(Le Coq)은 프랑스 국민의 정서를 대표하는 상징적 동물이며, 프랑스 축구 대표팀 유니폼의 가슴에도 엠블럼으로 박혀 있다. 이런 닭의 나라 프랑스에서 닭 요리계의 자타공인 일인자가 바로 조르주 블랑이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닭 요리의 가장 어려운 점이 ‘가슴살 부위가 오버쿡되지 않게 닭 한 마리를 제대로 요리하는 것’이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식당에서 2㎏은 족히 돼 보이는 브레스 토종닭 한 마리가 통으로 노릇하게 구워져 나왔고, 그 가슴살을 한 점 잘라 입에 넣었을 때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하나는 닭에서도 꽤 풍부한 육향이 느껴진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뻑뻑살’로 알고 먹었던 닭가슴살이 실은 너무나 부드러운 식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가든 식당’이라는 곳에서 토종닭 백숙을 먹을 때 서로 눈치보다 남기는 푸석하고 뻑뻑한 가슴살 부위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올랐고, 지금까지 나는 잘못 조리된 닭가슴살을 먹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닭가슴살은 본디 죄가 없으며, 이를 오버쿡해 육즙을 완전히 제거해 ‘뻑뻑살’이라는 누명을 씌운 흉악범 요리사만 처단하면 될 일이었다.

훌륭한 요리사는 과학자에 가깝다

미국 농무부가 제공하는 닭고기 안전 조리법에 따르면, 삶을 때 기준으로 닭가슴살은 35~45분, 닭다리살은 40~50분이 걸린다. 즉, 닭가슴살과 다리살이 푹 익을 때까지 같은 시간 조리하면 닭가슴살은 반드시 오버쿡돼 수분감이 사라진다. 이런 흉측한 사건은 상당히 많은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날지 못하는 닭은 날개보다 다리를 많이 쓴다. 그러니 닭다리에는 근육이 발달해 있고, 근육에 산소를 전달하는 헴 단백질인 미오글로빈(Myoglobin)이 많다. 백색육이라고 불리는 닭고기도 다리뼈 주위 살이 붉은 이유가 이 미오글로빈에 철분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많이 뛰어다니고 더 오래 기른 닭의 다리살이 더 검붉다.

반면에 가슴살은 미오글로빈 성분이 희박해서 하얗게 보인다. 이 검붉은 닭다리살에는 다리 운동을 돕기 위한 결합조직(Connective Tissue)이 뼈와 연골 등을 단단히 잡아주고 있는데, 이 결합조직 내에는 콜라겐 단백질이 높은 밀도의 망상구조로 채우고 있다. 콜라겐은 가열되면 젤라틴의 형태로 바뀌며 근섬유를 코팅해 수분감을 올리는데,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닭다리에 있는 다양하고 촘촘한 단백질 결합조직이 보습력을 높인다. 반면에 단순한 단백질 구조를 가진 가슴살은 보습력이 떨어져서 가열하면 수분이 쉽게 빠져버린다. 그래서 같은 시간을 조리하면 가슴살만 뻑뻑해지는 것이다.고기의 수분감은 고기 두께와 양, 함유 단백질 종류와 구조, 가열 온도와 시간, 조리 방식 등의 다양한 변수들의 복잡한 함수관계다. 이 원리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구울 때도 그대로 적용되며, ‘겉을 강하게 지져서 육즙을 가둔다’는 말은 육즙의 대부분이 수분이라는 점에서 사이비 과학에 가까운 이야기다. 육즙은 그런 식으로 가둬지지 않는다. 조르주 블랑의 고민은 과학에 대한 고민이고, 훌륭한 요리사일수록 과학자에 가깝다.

이후 프랑스에서 여러 닭 생산 농가와 레스토랑, 가정집을 방문해 프랑스 사람들의 닭 요리 레시피를 관찰했는데,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닭을 삶든, 오븐에서 굽든, 요리를 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닭의 가슴살 부위만 떼어내서 따로 바깥에 빼놓는다. 그리고 다리 쪽 조리가 끝날 때쯤 다시 가슴살 부위와 합쳐 살짝 더 가열해서 요리를 완성했다. 즉, 닭 한 마리 전체를 요리할 때 가슴살의 조리 시간만 줄여서 수분감을 유지하는 방법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 했을 때 닭의 모양은 한 마리의 온전한 상태가 아닌 조각난 상태가 된다는 점은 감수해야 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조르주 블랑의 고민이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프랑스에만 멋진 토종닭이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갖고온 생산성 좋은 서양 품종의 닭들에 의해 빠르게 대체돼 사라졌지만, 골든 시드 프로젝트(Golden Seed Project)로 명명된 국가 유전자원 복원 프로젝트 등을 통해 토종닭을 비롯한 다양한 토종 작물을 복원하고 품종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전체 국내 시장 점유율의 대부분은 프라이드치킨에 더 적합한 수입 품종 닭이 차지하고 있고, 복원된 토종닭 품종은 5% 정도의 점유율로 시골 지역 백숙 메뉴의 주요 식재료로 활용되고 있다.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오랫동안 푹 삶은 토종닭은 그 국물은 일품이지만 수분이 빠져버린 닭가슴살의 뻑뻑함은 의도치 않게 저작(咀嚼) 운동에 관여하는 인간의 안면 근육을 강화하는 훈련을 하게 한다. 이런 경험을 한두 번 하고 나면 토종닭은 질기다는 선입견이 딱 생긴다. 억울한 누명이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닭가슴살은 죄가 없다. 잘못된 조리만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닭 한 마리를 제대로 조리해서 먹는 그런 식문화가 없을까? 그래서 전국을 돌며 찾았고, 관련하여 흥미로운 식문화를 가진 세 지역을 발견했다.

해남: 매운 가슴살 주물럭

먼저 해남 지역의 닭 한 마리 문화를 살펴보자. 해남읍 연동리에 ‘해남 토종닭 요리촌’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1970년대 ‘장수통닭’이라는 가든 식당이 그 원조다. 이어서 여러 식당이 이 마을에 들어와 해남식 닭 한 마리 코스 요리가 완성됐고, 12개의 전문 식당이 성업 중이다. 해남 방식 닭 한 마리 코스 요리는 원래 첫 번째 음식으로 닭 육회를 냈는데, 최근에는 위생 문제로 토종닭 달걀을 삶아서 대신 낸다. 이 달걀이 한 마리 코스의 전식인 셈이다.

해남에서도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해야 닭가슴살을 뻑뻑하지 않고 맛있게 먹도록 하느냐였다. 해남 셰프들의 결정은 가슴살을 저며내 잘게 치고 고추장 양념으로 무쳐서 매운 닭가슴살 주물럭을 내는 것이었다. 달걀을 먹은 뒤 불판 위에 주물럭을 올려 구워 먹는다. 해남 토종닭 요리촌에 들어와 있는 각 식당은 자기들만의 식감을 만들어 내기 위해 닭의 다른 부분 중 일부를 떼어내 가슴살과 함께 주물럭으로 내기도 한다. ‘장수통닭’과 ‘진솔통닭’은 다리살 일부를 저며서 가슴살과 함께 섞어 내는데, 얇게 저몄기 때문에 가슴살과 익는 속도가 거의 차이 나지 않는다. ‘돌고개 가든’은 가슴살로만 주물럭을 내는 대신 날개를 따로 석쇠에 구워다가 내는 변주곡을 선사한다. 매콤함에 혀가 얼얼해져 있을 때쯤이면 주요리인 백숙이 나온다. 주물럭에 쓰인 닭가슴살 등의 부위가 제거된 백숙이 들어온다. 이 백숙을 끝낼 때쯤 코스의 마지막인 닭죽이 나오는데 녹두가 기본으로 들어간다. 해남 토종닭 요리촌 코스는 기본적으로 흐름이 거의 같은데 식당별로 디테일에서 조금씩 다르고 그 차이를 즐기는 것이 매우 즐겁다.

광양: 발골·해체 후 숯불구이

전남 광양은 본디 소불고기로 유명한 곳이다. 광양 불고기는 고기를 입에 넣어 한참 씹다 보면 고기에 살짝 양념이 됐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은은한 간이 특징이다. 35여 년 전 광양의 한 어르신이 ‘광양 불고기를 반드시 소고기로만 하라는 법이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 ‘토종닭 숯불구이’ 메뉴 개발이었다. 그 식당의 이름은 ‘지곡산장’이며 이 식당을 시작으로 광양식 토종닭 숯불구이가 광양, 순천 지역에 확산됐다.

이 음식의 특징은 닭 한 마리 전체를 정교하게 발골·해체한 뒤 은은하게 양념해 숯불에 구워 부위별로 다른 식감과 육향을 즐기는 세련된 요리라는 점이다. 가슴살은 조금 덜 익혀 담백하게 먹고 다리 부위는 강하게 지져 먹으면 완벽한 닭 한 마리를 즐길 수 있다. 얼마나 정교하게 부위를 발라내고, 칼질하느냐에 따라 맛이 확연히 달라진다. 일본에 일본식 닭구이 야키도리가 있다면, 한국에는 광양식 토종닭 숯불구이가 있다.

제주 교래리: 가슴살 샤부샤부

마지막으로 제주도에서 지정한 ‘제주도 교래리 토종닭 유통 특구’가 있다. 이 교래리 토종닭 마을은 해발 450m에 있고 관광지와는 좀 멀리 떨어져 있어 관광객보다는 제주 도민들이 점심 식사 때 주로 찾는 곳이다. 영업 중인 닭 한 마리 코스 전문 식당 10여 곳 중에서 가장 오래된 원조 ‘성미가든’은 1990년대 중반에 이곳에 정착했다. 교래리에서도 역시 닭 한 마리 코스에서 가슴살을 어떻게 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고, 교래리는 부드럽고 담백한 닭가슴살 샤부샤부로 방향을 잡았다. 닭 육수에 갖은 채소를 넣고, 저며놓은 닭가슴살을 한 점씩 5~7초 익혀서 먹는다. 닭가슴살이 이토록 부드럽고 맛있는 부위라는 ‘무죄의 추정’을 여기서 확실히 할 수 있다. 이어서 육수에 칼국수를 넣어 먹으면, 주요리인 가슴살이 없는 백숙이 나오고, 마지막은 역시 닭죽이다. 이렇게 먹고 나면 속이 편한 보양식을 먹었다는 느낌이 든다.

올해 휴가철 가족 여행 목적지로 많은 사람이 제주도를 꼽고 있는데, 이번 휴가 제주의 먹거리 후보 리스트에 제주 도민의 보양식 성지, 교래리 마을을 올려보는 건 어떨까? 한 마리면 3~4인이 먹는 양이다. 그리고 10여 곳의 전문 식당 콘셉트와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 내 취향에 맞는 곳을 골라 보자.

원조인 ‘성미가든’은 교래리에서 가장 회전율이 높은 식당인 만큼 재료가 신선하다는 느낌이 든다. 백숙과 죽에 마늘, 녹두를 많이 넣어 삶아서 향이 풍부한 것이 특징인데, 전체적으로 음식의 간이 분명하다. 바로 옆집인 ‘오름가든’은 횟집 주방장 출신 사장님이 주방을 맡고 있는데, 고급 횟감처럼 떠놓은 샤부샤부용 가슴살이 매우 정교하다. 가슴살 끝에는 껍질을 확실히 붙여서 토종닭의 강점 중 하나인 껍질 식감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샤부샤부 육수에 넣는 칼국수도 주방에서 직접 제면하고 있고, 특이하게 백숙에 녹두와 함께 팥을 써서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아름 가든’은 전복이 함께 들어간 백숙이 특징이다. 물론 가격은 더 비싸다. 한식뿐만 아니라 양식까지 공부한 사장님의 손맛이 아주 세련돼 반찬류가 정갈하다. 무릇 보양식은 닭만으로는 좀 심심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제안할 만하다.

요리사의 사회적 책임은 비선호 부위에 대한 연구

가축 한 마리 전체를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현재 외식업계의 화두이자 동시에 축산업계의 중요한 과제다. 예컨대 튀김 옷을 입혀 튀기는 프라이드치킨도 그 해결책 중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프라이드치킨에서 치킨은 텅 빈 캔버스 역할만 하고 있으며, 어떤 튀김 옷과 어떤 양념을 쓸 것인가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프라이드치킨에서 좋은 닭이란 무릇 저렴한 닭이 돼 버린 지 오래다. 더불어 우리나라 토종닭은 프라이드치킨의 원재료로 쓰기엔 그 가격이 비싸서 지금 당장 수요를 끌어 올리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우리 토종닭을 포기하는 것은 종자주권의 측면, 생물 다양성의 측면에서 퇴보하는 길이다. 즉, 각 식재료의 특성에 맞는 조리법과 요리가 필요하다.

돼지의 경우 전체 육량의 3분의 1이나 되는 후지 등의 비선호 부위는 냉동고에 산처럼 쌓여 있고, 선호 부위인 삼겹살은 부족해 연간 돼지 약 1000만 마리에 해당하는 삼겹살을 수입하고 있다. 소도 마찬가지로 비구이용 부위는 갈수록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 한 마리 전체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즉, 비선호 부위의 특성에 맞는 조리법과 요리를 개발하면 이렇게 많은 양의 삼겹살을 수입할 필요가 없어지고, 국내에서 사육 중인 가축의 개체 수도 줄일 수 있다. 이 역할은 요리사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이다.

■ 문정훈은
KAIST 경영과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로 푸드비즈니스랩을 이끌고 있다. 푸드비즈니스랩은 더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노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모여 흥미로운 작당을 하는 곳으로, 농식품의 가치를 발굴하고 상품화해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먹거리에 세련되고 까다로운 소비자가 이 세상을 구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연다는 믿음 아래 끊임없이 소비자와 소통한다. 자신의 취향을 모르거나 주는 대로 먹는 소비자들이 자기 주도적 소비를 하도록 도움으로써 획일화된 농식품 산업의 관행을 깨뜨리고 다양성의 세계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