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꺼리던 장미 그림, 선입견 버리니 아름다움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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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협 '장미시대2'展1980년대 국내 한 미술대학 강의실. 실기 강사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부모님이나 친구가 장미를 그려달라고 하면 그리겠나.” 추상미술과 민중미술이 대세였던 때라 화단에는 통속적인 꽃 그림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강사의 위세에 눌린 수강생들은 “절대 그리지 않겠다”고 답해야만 했다.
서울 토포하우스서 18일까지
김순협 작가(60)의 이런 미대생 시절 경험은 전업작가가 된 뒤에도 그의 생각을 지배했다. 그는 수십 년간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환갑을 맞은 올해 그의 눈에 장미가 들어왔다. “새삼 장미가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억누르고 있던 선입견을 버리고 꽃 그림을 그려 보니 정말 즐겁더군요.”이렇게 올해 초부터 그린 장미 그림 등 신작 15점을 포함한 김 작가의 작품 18점을 소개하는 전시가 7일부터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 대표작인 ‘장미(Gold leaf)’(사진)를 비롯한 신작 중 대부분(13점)은 장미 그림이고, 모란 그림도 두 점 있다.
그의 작품 주제는 꽃이지만 정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화면을 빼곡히 수놓은 하얀 점이다. 꽃을 볼 때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이나 종소리 등 공감각적 심상을 점으로 리듬감 있게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과감하면서도 독특한 색 표현과 반짝이는 그림 표면도 시선을 끈다. 캔버스에 금박이나 은박을 접착제로 붙여서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다양한 색의 꽃을 그려 연출했다. “한국인이 백의민족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우리만큼 화려한 색을 사랑하는 민족도 없어요. 한복이나 노리개의 오방색을 봐도 그렇지요. 우리 안의 색채에 대한 사랑을 상기시키고 싶었습니다.”김 작가는 한성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쾰른대에서 6년간 유학하며 회화와 미술사를 공부했다. 1992년 귀국 후에는 한성대 목원대 김천대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강의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독일의 판화 거장 캐테 콜비츠(1867~1945), 《양철북》으로 199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귄터 그라스의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수십 년간 다양한 화풍을 시도해 봤고 갤러리도 운영해 봤어요. 그렇게 내린 결론이 미술은 작가와 관객 사이의 소통이라는 겁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얘기를 혼자 떠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릴 때도 즐겁고 볼 때도 즐거운, 알기 쉽고 아름다운 꽃 그림을 계속 그리렵니다.” 전시는 오는 1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