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변이 퍼지는데…일상 회복 조급증에 '방역둑 붕괴' 자초한 정부

"한국도 곧 델타변이가 지배종"

美·英 델타 변이 비상 걸렸는데
너무 일찍 방역완화 신호
정부 관계자 발언도 오락가락
한주 새 델타감염 두 배 늘어
김부겸 국무총리가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강화된 수도권 방역 조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방접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코로나19 위험도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던 지난달 20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해 “방역과 일상의 균형점을 찾자”며 이같이 말했다. 열흘 뒤엔 완화된 방역 조치를 시행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영국 독일 등이 입국 제한 조치 등 방역의 끈을 조이는 상황에서 한국만 거꾸로 간 것이다.최근의 코로나19 확산세는 정부의 섣부른 방역 완화 조치 영향이 크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졌다는 자신감에 너무 일찍 ‘일상 회복’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왕좌왕한 정부

정부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한국에서 점차 퍼지고 있던 지난달 20일 완화된 거리두기 조치를 발표했다. 새 지침에선 사적 모임 인원을 수도권에서 7월 1~14일 6명, 이후엔 8명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비수도권에서는 아예 1일부터 사적 모임 인원 제한을 없앴다. 김 총리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사회적 피로감과 백신 접종률 상승 등을 거리두기 완화의 이유로 들었다. 당시 한국의 백신 접종률은 29.2%였다.
하지만 미국 영국 독일 등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다.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백신을 맞은 영국은 경제 정상화 조치를 한 달 뒤로 미뤘다. 독일도 델타 변이가 유행하는 영국민에 대한 입국을 제한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달 내내 “영국과 인도를 (격리 면제 대상국에서) 제외하는 방안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지난달 26일이 돼서야 영국과 인도 등을 방역강화국가로 지정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델타 확산 방치 논란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이런 정부의 느슨한 방역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지난달 26일 기준으로 직전 1주일 동안 263명이었던 델타 변이 확진자는 이후 1주일 동안 461명으로 불었다. 역학적 관련 사례(547명)까지 더하면 국내 델타 변이 관련 확진자는 1000명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정부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지난달 24일 “델타 변이 유입 차단과 국내 확산 방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정부의 새 거리두기 완화 조치 시행 방침은 지난달 30일까지 변하지 않았다. 30일 오전까지만 해도 방역당국은 “예정대로 1일부터 새 개편안을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따라 우려감을 보이자 이날 오후 기존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1주일간 연장하기로 했다고 입장을 바꿨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방역 수위를 높이자는 정 청장과 다른 정부 관계자들의 말이 계속 엇갈렸다”며 “방역 피로감이 높은 국민들은 거리두기 완화 시그널(신호)만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백신 인센티브 재검토”

백신 접종 완료자에게 ‘사적 모임 인원 제한 면제’란 인센티브를 준 점도 섣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외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에 이달 초부터 밤 10시 이후 공원 등 야외 음주가 크게 늘어난 게 대표적이다. 또 식당 등에서 5인 이상 모임을 가질 경우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7일 “백신 접종자 인센티브 부여 문제를 다시 한번 검토해볼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의료계에선 정부가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너무 일찍 거리두기 완화 카드를 꺼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6월 말에라도 방역 완화 기조를 바꿔 확산세를 저지했어야 했는데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김우섭/이선아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