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라는 대항해 시대의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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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민 KT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한 시대의 패러다임이 전환될 때, 기존 강자는 몰락하기도 하고 신생 기업들이 부상하기도 한다. 가장 흔히 언급되는 사례 중 하나는 ‘범선과 증기선’의 사례이다. 15세기 중반부터 18세기까지 대항해 시대에는 바람을 타고 항해하는 범선들의 시대였다. 그러던 중 산업혁명으로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이를 활용한 증기선이 19세기 초반에 출현하였다. 분명 증기선은 범선에 비해 효율적인 항해방식이었다. 상식적으로 기존 범선 회사들이 앞 다투어 기술적으로 우월한 증기기관을 도입하여 더 긴 항해를 이어 나갔을 것만 같았으나, 결과적으로는 기존 범선 회사는 증기기관을 채택하지 않고 몰락한 경우가 빈번했다. 기존 범선에 맞는 조직, 인력, 예산 구조로 운영되기엔 증기기관이라는 신기술을 전격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대를 주름잡던 범선들은 20세기 초반 사라졌고, 증기기관과 함께 시작하여 태생적으로 모든 것이 새롭게 설계된 신생 회사들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20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형태의 범선과 증기선이 존재한다. 증기기관처럼 우리는 AI라는 혁신 기술을 맞이하고 있다. AI를 통하여 기업들은 기존 방식을 탈피한 ‘디지털혁신(DX, Digital Transformation)’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 원격수업, 비대면 구매 등 온라인방식이 확산되면서 기업들의 디지털혁신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디지털혁신을 수용하는 방식은 과거 범선과 증기선처럼 기업의 상황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먼저 아예 처음부터 디지털혁신으로 탄생한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들은 철저하게 제로베이스에서 디지털 관점으로 사고하고 사업모델을 설계하고 운영한다. 몸집이 가볍기에 기존 사업과 다른 서비스와 상품 개발이 가능하다. 전 산업계에 걸쳐 이러한 기업들은 속속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터넷 은행이다. 인터넷은행들은 오프라인 유통망 등 고비용 요소는 배제하고 소액/단기 적금, 간편 대출 등 본질적인 고객 서비스 향상에 집중하며 가입자를 확장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소상공인 사업모델에도 디지털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요식업이 대표적이다. 기존에는 식당 창업 준비를 할 때, 해당 지역의 유동인구, 주요 고객 계층에 맞는 메뉴 및 가격, 식당 테이블 수 등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었다.
하지만 요즘 창업방식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요식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주요 ‘배달앱’의 사용법과 활용방안부터 알아본다. 영업점을 굳이 비싼1층을 고집하지 않고 영업 상권을 넓게 잡고 고객과 연결시켜줄 라이더를 확보하고 실시간 고객 반응에 따라 메뉴 개발과 수정이 이루어진다. 아예 배달앱 전문 식당도 등장하고 있다. 다만, 이들 유형에는 인터넷은행처럼 충분한 자본력을 확보하고 출발한 기업도 있지만 작게 출발한 스타트업처럼 자본력이 부족한 기업들도 많다. 디지털 관점에서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지만 디지털화에 필요한 기술을 활용하기에 제한이 있을 수 있다. 데이터의 수집과 전송, 저장, AI 분석 등 디지털혁신 기술과 장비들은 고가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혁신적인 디지털기업들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신생 기업들이 디지털혁신에 필요한 요소들을 저렴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기존 오프라인에 기반을 둔 레거시 기업들이다. 이제까지 안정적인 사업모델을 만들어 왔으나, 디지털혁신이라는 큰 파도에 직면하고 있다. 증기기관을 도입하지 않고 기존 범선 사업모델을 고수할 경우, 향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이들 기업이 디지털혁신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필요하다. 인력, 조직, 예산 등 기존 시스템에 최적화된 구조를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자만 디지털전환은 기존 기업이 반드시 넘어야 할 숙제이다. 디지털 전환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행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글로벌 소비재 제조기업 P&G가 대표적이다. P&G는 아예 전통적인 생산방식과 다른 공장, 즉 스마트팩토리를 별도로 짓고 생산함으로써 디지털혁신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미국 이동통신사업자 Verizon도 새로운 판매방식을 도입하였다.
기존 Verizon 브랜드와는 분리된 ‘Visible’이라는 브랜드와 조직을 별도 설립하고 완전히 디지털에 적합한 운영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에 적합한 전산시스템도 새롭게 구축하였다. 온라인에 익숙한 MZ세대를 대상으로 기존의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복잡한 구매 절차를 과감히 버리고 가입부터 요금납부, 고객센터까지 간편한 디지털 방식을 도입하였다. 이렇듯 디지털전환에 성공하고 있는 기업들은 기존 레거시 시스템과는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별도 조직을 만들고 디지털혁신을 적용한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들 기업들은 부족한 기술 역량을 외부에서 수혈 받기도 하였다. 앞서 언급한 P&G는 스마트공장을 설립하면서 핀란드 통신기업 Elisa의 도움을 받았다. Elisa는 통신사로서의 장점을 살려 공장에서 진행되는 공정을 라우터, 스위치, 서버 등 수백만 개의 네트워크 장치에 연결하였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공장관리자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시각화한 솔루션을 제공하였다. 레거시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현명한 조력자(Enabler)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인류역사는 항상 거대한 변혁이 있어왔고 이에 적응한 기업들만이 생존해 왔다. 증기, 전기, 컴퓨터/인터넷 등 혁신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인류의 소비 방식과 생산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기존 체계에 안주하며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레거시 기업들은 생존하지 못하고 도태된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제 AI를 통한 디지털전환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있다. 태생부터 디지털로 무장한 기업들이 배를 띄우고 있으며 기존 레거시 기업들도 새로운 방식으로 항해할 준비를 하고 있다. AI라는 대항해 시대를 맞아 각자 기업들이 현명하게 순항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