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도서관으로 떠나는 북캉스 ① 의정부미술도서관

미술, 음악 등 독서 그 이상을 도서관에서 경험하다

요즘 도서관은 조용히 책만 읽는 곳이 아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독특한 공간에서 책 읽는 것 이상의 경험을 누릴 수 있는 이색 도서관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무더운 여름 인파로 붐비는 관광지 대신 쾌적한 도서관에서 색다른 피서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 미술관을 품은 도서관…공간에 가치를 담다
2019년 11월 개관한 의정부미술도서관은 의정부 끝자락, 하늘능선 근린공원 안에 있다. 도서관 정문으로 들어서니 1층부터 3층까지 뻥 뚫린 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중앙의 나선형 계단을 통해 1∼3층이 하나로 연결된 독특한 구조다.

칸막이 없이 개방된 내부 공간은 바깥으로도 열려 있다. 전면 유리창으로 마감된 벽면 너머로 녹음이 우거진 공원 풍경이 가득 들어온다.

원형 계단 끝 둥근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은 도서관 내부를 한층 밝고 환하게 해준다.

계단을 따라 3층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1층 중앙의 원형 테이블과 의자, 책장이 만들어낸 곡선이 인상적이다.

마치 책을 펼쳐 놓은 듯한 모습이다.
반투명 아크릴판을 이용해 만든 책장들은 키가 작아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책도 공간을 두고 여유 있게 꽂아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했다.

듬성듬성 놓인 책장 사이 사이에는 감각적인 디자인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열람실을 따로 만들지 않고 서가에서 뽑아 든 책을 바로 옆에 앉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사서 어성욱 씨는 "공간의 변화가 도서관 문화를 바꾸고 시민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모토를 갖고, 연결과 융합, 개방과 소통의 개념을 기획부터 설계까지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하나로 연결된 1∼3층은 각기 다른 콘셉트로 구성되어 있다.

1층 '아트 그라운드'는 미술도서관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건축, 패션, 공예, 회화, 디자인 등 미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 분야 책과 자료들로 서가가 채워져 있다.

도서관이 보유한 장서 4만3천여권 가운데 이런 예술 분야 서적이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아트 그라운드 입구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책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들을 모은 '호크니 빅북'(DAVID HOCKNEY : A Bigger Book)이다.

전 세계에 단 9천부 제작된 한정판 에디션으로 판매가가 500만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처럼 쉽게 구하기 힘든 고가의 해외 원서와 국내외 주요 미술관 도록이 1층 서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 도록도 물론 볼 수 있다.

의정부 시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도서관 회원으로 가입하기만 하면 이런 희귀 자료와 도서를 최대 10권까지 무료로 대출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이 관내 주민으로 회원 가입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획기적인 정책이다.

2층 '제너럴 그라운드'는 예술 이외 분야의 책들로 채워진 공간이다.

어린이를 위한 서가와 성인을 위한 서가를 한 공간에 담아 온 가족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4만여권이 넘는 수많은 책 가운데 어떤 것을 골라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큐레이션' 코너로 가보자. 매월 주제를 정해 도서관이 추천하는 책들을 따로 뽑아놨다.

지난 6월에는 '죽음'을 주제로 '죽음을 그린 화가들, 순간 속 영원을 담다'(박인조 지음), '죽음과 부활, 그림으로 읽기'(유성혜 지음),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로라 프리챗 지음) 같은 책들이 추천 목록에 올라와 있었다.

도서관에서는 매월 선정된 주제와 연계한 강좌도 열린다.
'사서가 사서 읽은 책'이라는 코너도 눈길을 끈다.

이 역시 '결정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유용한 코너다.

도서관 사서들이 매월 직접 사서 읽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추천해 준다.

이 코너에서 '우연히, 웨스 앤더슨'이라는 책을 골라 들었다.

"웨스 앤더슨(미국 영화감독) 스타일로 촬영된 세계 여러 곳의 사진을 보며 눈이 즐거운 여행을 떠나보자"는 추천 문구가 마음을 끌었다.

2년 가까이 꾹꾹 눌러왔던 해외여행 욕구를 채워줄 것 같은 책이다.

3층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사 들고 1층으로 내려와 반쯤 누운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소파에 자리를 잡은 뒤 책을 펼쳤다.

알래스카의 글레이셔만 국립공원부터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호수, 스위스 벨베데레 호텔, 인도 라자스탄의 아메르 요새에 이르기까지 웨스 앤더슨 특유의 색감과 구도를 빼닮은 세계 곳곳의 사진들로 눈 호강을 하며 언제일지 모르는 다음 해외여행 후보지를 추려본다.

에곤 실레의 그림을 모아놓은 포스터북처럼 가볍게 볼 수 있는 책들을 몇 권 더 골라 훑어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책 읽기가 지루해질 때쯤이면 1층 아트 그라운드 옆에 마련된 미술 전시관으로 가보자. 도서관이 운영하는 교육 과정을 거친 '시민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주기적으로 교체된다.

지난 6월에는 '도서관 속 작업실'이라는 주제의 전시가 열렸다.

도서관 3층에 마련된 '오픈 스튜디오'에 입주했던 작가들의 작품 80여점을 모아 보여주는 전시다.

'오픈 스튜디오'는 의정부미술도서관이 운영하는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다.

매년 6개월 단위로 개인전 이력이 없는 작가 2명을 선발해 작업 공간과 재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큐레이터 지망생을 위한 '청년문화 아카데미'도 운영된다.

대학 재학생 혹은 갓 졸업한 이들을 대상으로 전문 큐레이터와 함께 미술관 전시 기획부터 진행까지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음악과 책의 융합…의정부음악도서관
국내 최초의 공공 미술도서관을 설립해 주목받은 의정부시는 지난 6월 또 하나의 특화 도서관을 열었다.

경전철 발곡역 인근 발곡근린공원 내에 들어선 의정부음악도서관이다.

이름 그대로 책과 음악이 융합된 공간이다.

의정부라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재즈, 블루스, 힙합 등 '블랙 뮤직'에 특화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도서관 1층과 2층에는 5천권의 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음악도서관답게 팝, 재즈, 힙합, 오페라, 뮤지컬, 클래식, 국악 등 음악 관련 도서와 자료가 분야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그룹 '퀸'과 관련된 도서와 사진집 등을 모아 놓은 공간, 재즈와 관련된 국내외 잡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 등이 눈길을 끈다.
음악 전공자나 입문자를 위해 다양한 악기의 악보 2천여점도 비치했다.

책과 마찬가지로 악보도 누구나 무료로 열람하고 대출할 수 있다.

3층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공간이다.

CD는 물론,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LP와 고화질 DVD까지 약 1만점의 음반을 갖추고 있다.

곳곳에 턴테이블과 CD플레이어가 비치되어 있어 마음에 드는 음반을 골라 들을 수 있고,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해 대출할 수도 있다.
오디오룸은 프랑스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인 드비알레의 7채널 스피커를 갖춘 공간이다.

도서관에서 선곡한 음악을 헤드폰 없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방음 시설을 갖춘 공간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연습실과 '큐베이스 프로'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작곡·편집을 할 수 있는 작곡·편집실까지 있다.

모두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들이다.

1층에 마련된 오픈 스테이지와 3층의 뮤직홀에서는 수시로 크고 작은 공연이 열린다.

지상 3층, 연면적 1천691㎡의 그리 크지 않은 도서관이지만,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종일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